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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정 Aug 18. 2023

아이 여행을 하다(5)


  아이는 지나가던 사육사에게 발견됐다. 자기 이름과 엄마, 아빠 이름을 정확히 기억했지만, 아이는 오랫동안 미아보호소에 있어야 했다. 그리고는 결국 고아원으로 가게 되었다. 고아원으로 가던 날, 아이는 아빠를 만났다. 아빠는 눈이 풀려 있었지만, 눈물을 흘리고 있진 않았다. 다만 아이의 눈을 피했다. 아이는 아빠가 자기를 만나는 자리에 술을 마시고 온 게 부끄러워서일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복지원 사람들은 아이의 손을 잡고 말했다. 좋은 곳으로 갈 거란다. 아이는 끄덕거리려다가 아빠를 한 번 보았다. 아이의 시선을 느낀 아빠는 더듬거렸다.  


  조금만…… 있으면…… 데리러 온다. 약, 약속해.

  여전히 허공에 시선을 둔 채였다. 아이는 다가가 손가락으로 제 아빠의 코를 눌러주었다.


  이러면 코가 길어지지 않아요.           


      



  그날 밤 아이는 꿈을 꿨다. 꿈속에서도 아이는 걷고 있었다. 여전히 바쁜 사람들은 아이를 밀치며 제 길을 갔다. 휘청대던 아이는 길 한가운데서 주저앉고 말았다. 아이의 분홍 토끼 머리 위로 바쁜 사람들의 그림자가 스쳐갔다. 아이는 몸을 움츠렸다. 철장 우리는 없었지만 아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얼어붙은 발이 간질거렸다. 루루처럼 코를 벌름거려 보았다. 루루의 까맣고 큰 눈을 떠올렸다. 차가운 바람이 아이의 눈을 찔렀다.


  여행은 어때?


  아이의 입에서 루루의 목소리가 나왔다. 아이는 어느새 분홍 귀 루루가 되어 있었다.


  궁금한 게 있어.


  이번에는 제 목소리가 나왔다. 아이와 분홍 귀 루루는 사이좋게 말을 나눴다.


  궁금한 게 있어.

  뭐든지.

  여행은 언제 끝나는 거야?

  네가 가야 할 곳을 알게 되면.

  난 갈 곳이 없어. 나는 여행이 싫어.

  누구나 다 여행을 해.

  너도 여행을 해? 넌 나갈 수도 없잖아.

  누구나 다 저마다의 여행을 해. 누구나 다 제가 가야 할 곳을 만들어야 하니깐.

  여행은 너무 힘들어. 다리가 아파. 배도 고프고. 춥고. 외로워.


  아이는 울었다. 아이는 제가 우는 건지, 분홍 귀 루루가 우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서글픈 제 울음소리에 아이는 잠에서 깼다. 아이의 옆자리에서 누웠던 고아원 아이가 첫날에는 누구나 그렇게 운다고 말해 주었다.           




      

  고아원에서는 아이를 학교에 보냈다. 아이는 학교에 가는 게 좋지는 않았지만,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고 했다. 아이는 고아원 아이들이 다 같은 색깔과 모양의 가방을 메고 가는 것도 의무일까 하는 의심을 품어 보았다. 그러나 달리 다른 가방이 없어 아이는 같은 색과 모양의 가방을 메고 의무교육을 받으러 갔다. 그래도 학교에 가서 좋은 날이 일 년에 딱 하루 있었는데, 소풍날이었다. 의무교육인 학교는 의무처럼 소풍날에는 동물원에 갔다. 아이는 동물원에 갈 때면, 철창 안의 호랑이들에게 개 줄에 목이 묶여 키워진 호랑이에 대해 물었다. 호랑이들은 고개를 저었다. 다섯 번의 소풍 동안, 아이는 다섯 번 호랑이들에게 물었고, 호랑이들은 다섯 번 모두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여섯 번째, 마지막 소풍날 한 호랑이가 아이를 불러 세웠다. 호랑이처럼 생긴 호랑이였다. 아이의 눈이 루루처럼 커졌다.


  아기, 아니 그 호랑이를 알아요?  

  남쪽 동물원에 있다고 들은 적이 있어.

  그럼 시베리아에는 가지 않은 거예요?


  시베리아? 시베리아 동물원 말하는 거야? 다른 호랑이들이 실룩거리며 말곁을 달았으나 호랑이처럼 생긴 호랑이가 눈살을 찌푸리자 곧 잠잠해졌다. 아이는 물었다.


  잘 지내고 있나요?


  아이는 숨을 참았다. 호랑이처럼 생긴 호랑이는 물끄러미 아이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소문이 들려오더라. 시름 앓다가 죽었다는 말도 있고, 무리의 으뜸이 되었다고도 하고, 누구는 저를 닮은 아이를 낳았다기도 하고……. 동물원 우리를 탈출했다는 소문도 들었다. 어디선가 서커스를 한다는 소문도 있지.

  그중 어떤 게 사실이에요?

  너는 무얼 믿고 싶으?


  아이는 이따금 제 꿈에 나오던 아기 호랑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꿈속에서 아기 호랑이는 언제나 눈 위를 걷고 있었다. 눈발이 날리는 길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묵묵히 걸어갔다. 성큼 내딛는 발이 눈 위에 하얀 발자국을 남겼다. 아기 호랑이는 아이를 늘 스쳐 지나갔다. 아이는 꿈속에서조차 호랑이와 마주한 적이 없었다. 어쩌면 앞으로도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아이는 서린 눈 위를 성큼 밟고 지나는 호랑이의 발을 그리는 날이 많았다. 눈길에 새겨진 길게 뻗은 아기 호랑이의 발자국을 떠올릴 때면 마치 기억을 더듬는 듯조차 했다. 아이는 길게 뻗은 발자국과 눈길을 보려는 듯 고개를 돌렸다. 하얀 봄꽃이 싸락눈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아이도, 아기 호랑이도, 누구나 다 여행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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