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꿈(16)_만물의 영장인가, 만물의 깡패인가?

단편소설 <꿈꾸는 꿈틀이>_16

by 시골뜨기

“어떤 인간이 자연스러움을 가지고 있을까?”

슬기주머니가 꿈틀이에게 물었다.

“글쎄, 어린아이가 아닐까요?”

꿈틀이가 이렇게 대답하자 아까부터 묵묵히 듣고 있던 너나들이가 씰룩거리며 말했다.

“천만에! 어린애는 너무 포악해.”


너나들이는 어린애의 장난에 몸이 잘린 지렁이다. 지렁이는 몸의 일부가 잘려도 다시 생기지만 절반 이상 잘리면 다시 재생되기 힘들어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행스럽게 이들은 두 동강 다 재생력이 왕성하여 완벽한 두 마리의 지렁이가 되었다. 둘은 서로가 자신의 살붙이임을 알기에 항상 붙어 다니므로 ‘너나들이’라고 불린다.


“너나들이야, 어린애를 왜 포악하다고 생각해?”

꿈틀이가 너나들이에게 물었다. 너나들이는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꼬마는 흙을 헤집으며 흙장난을 하다가 나를 발견했는데 처음엔 뚱하니 살피더니 꿈틀거리는 내 움직임이 재미있는지 집적거렸어. 꼬마가 막대기로 내 몸을 건드릴 때마다 살이 찢어지고 피가 나왔지. 너무 아파서 자지러지자 꼬마는 그런 꼴이 더 재미있는지 자꾸 해코지를 하더군. 결국 내 약한 몸은 두 동강이 나고 말았어. 붉은 피를 흘리며 심하게 움찔거리는 우릴 꼬마는 신기하듯 쳐다봤어. 그런 악동이의 눈에서 천진함이라곤 터럭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지. 그때 걔 엄마가 꼬마를 데리고 갔기에 가까스로 살 수 있었지.”

너나들이는 그때를 회상하며 괴로운 듯 한숨 한 모금을 쭉 내뿜었다.


“그럼, 꼬마의 엄마는 지렁이를 감싸는 마음을 가졌나 보구나.”

꿈틀이는 엄마가 꼬마를 데리고 가서 너나들이가 살았다는 말에 다행이라 여기며 물었다.

“그렇지 않아. 나에게서 꼬마를 떼어놓았던 그 엄마는 날 보더니 마치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진저리를 쳤어. 꼬마의 엄마는 아이가 내게 해롭게 한 것을 걱정한 게 아니라, 내가 아이에게 지저분할까 봐 염려하는 거였어. 날 똥 보듯 피했지. 난 인간이 너무 싫어. 왜 우릴 그렇게도 징그럽게 여기는지 몰라. 우리가 그들에게 해코지를 하는 것도 아닌데.”

너나들이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말을 계속 이었다.


“인간들은 겉모습만 가지고 평가하길 좋아하지. 특히 다리가 없이 기어 다니는 동물을 매우 싫어해.”

꿈틀이도 안다. 인간이 자기 같은 지렁이를 싫어한다는 것을. 꿈틀이는 너나들이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말이야. 보기 싫다고 해로운 건 아닌데.”


너나들이는 속마음을 다 말했다. 하소연을 들어주는 꿈틀이가 있어서 분풀이 아닌 넋두리를 했다.

“꿈틀아, 난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아. 그들에겐 생명존중은 없어. 애들에겐 곤충이란 스스로 움직이는 신기한 장난감 정도로 여기지. 그들은 생명에 대한 존중보다 자신의 흥미에 더 관심이 많아. 개미 백 마리 죽이는 것도 흥미만 있다면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겨.

“너나들이, 아이들이 왜 그럴까?”


“나중에 안 건데, 아이들은 모방을 한다는 거야. 즉 어른들의 생각과 행동을 따라 해. 어른들이 전쟁을 하니 그것을 흉내 내어 전쟁놀이하고, 어른들이 자연의 생명을 무시하니 아이들도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는 거지.”

“결국, 인간은···.”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것은 어른이나 아이나 다 같지만 둘의 차이는 있어. 어른은 알면서도 저지르고 아이들은 모르고 저지르지. 나는 애들을 좋아하지 않아. 이것은 어른을 더 싫어한다는 뜻이야.

너나들이와 꿈틀이의 말을 잠잠히 듣고 있던 슬기주머니가 너나들이의 말을 받아 말을 덧붙었다.


“인간들은 제멋대로야. 자기들이 만물의 영장이랍시고 맘대로 생물종을 선택하여 해충이라는 이유로 씨를 말리거나, 애완용이라는 이유로 모양과 습성을 바꿔버려. 바로 질서 있게 연결된 자연의 연결고리를 끊는 꼴이지. 생명의 띠는 소중한 것인데, 어느 한 생물만이 살자고 해서 다른 생물을 죽이는 것은 생명의 띠가 끊어져 나중엔 모두 죽게 돼.”


꿈틀이는 슬기주머니 어르신의 말을 들으며 저수지에서 물푸름이가 한 말을 생각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순환한다는, 즉 아래에서 위로도 흐른다는 말. 비록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물은 보이지는 않지만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게 하는 숨은 움직임이라는 것을.


슬기주머니는 계속 말했다.

“인간들은 이상한 논리를 가지고 자신들의 짓거리를 정당화시키는데 가령 빈대, 흰개미, 파리, 모기, 바퀴벌레 같은 생명체를 해충이라는 이유로 죽여야 한다고 스스럼없이 말해. 그렇지 않으면 해충들이 금방 지구를 뒤덮어서 자신들이 살 수 없을 거라고 툴툴거리지. 난 ‘해충’이 뭔지는 잘 모르지만 ‘생명을 살리고 죽이는’ 뜻에서 보자면 인간이야말로 단연 으뜸가는 해충이 아닌가?

“인간들이 왜 그런 짓을 하죠?”


꿈틀이는 한때 자신이 닮고자 했던 인간의 미덥지 못한 행동을 듣고 놀래서 물었다. 지렁이들의 얘기를 듣고 있던 흙지킴이 요정이 입을 열었다.

“그건 곁눈질하느라 제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야. 하지만 인간다운 인간도 있어. 꿈틀아, 내일은 살가운 인간을 만나러 가자.”

꿈틀이는 인간다운 인간이 있다는 말에 솔깃하여 물었다.

“그 인간다운 인간은 어디에 살죠?”


“산기슭에서 농사를 짓는 소탈한 농부야. 그는 흙살림꾼인데, 참농부지. 내일이면 흙살림꾼이 이곳의 두엄을 밭으로 옮길 거야. 그곳에 가면 미더운 흙살림꾼이 어떻게 흙을 보듬는지 보게 될 거야.”

꿈틀이는 자신이 찾고자 하는 슬기곶이 점차 가까움을 느꼈다.

umbrella-2863648_1920.jpg


keyword
이전 16화꿈꿈(15)_꿈틀이, 새로운 이름을 얻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