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꿈꾸는 꿈틀이>_18
옆 동네에 전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특이하게 농사를 짓는 노인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다. 그 노인에게 물었다.
“어르신, 어떻게 하면 농사를 잘할 수 있습니까?”
“흙만 살리면 되네. 그다음은 호박이 넝쿨째 굴러오는 것과 같아.”
난 참 일리 있는 말이라고 여겼다.
“어르신, 근데 어떻게 하는 것이 흙을 살리는 겁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네, 차라리.”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라뇨?”
어르신의 눈동자엔 깊음이 있었다. 나지막하면서도 울림이 있는 말씀에 개구리가 뱀에 감기듯 끌려들었다.
“젊은이, 난 ‘차라리’라고 했네. 잘못된 부지런으로 흙을 혹사하려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름이 더 났다는 것이네.”
“어르신, 전 매우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농사를 짓는데 그 무슨 말씀입니까? 전 정량대로 약을 사용했고, 적절하게 비료도 주었고, 밭도 갈아주고···”
“그러니 그만두라는 것이네!”
찔끔했다. 어르신은 내 속을 빤히 들어다 보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상황에 이끌리어 오직 다수확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것을.
어르신은 나를 자기 밭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한 줌의 흙을 퍼주었다. 난 그 흙을 집으로 가지고 와서 내가 가지고 있는 실험기구를 가지고 그 흙을 조사했다. 토양산도는(pH) 6.4로 미산성이고, 염류농도(E.C)는 1.2로 과하지 않으며, 유기물은 7%로나 되어 아주 양호하고, 토양미생물은 1g에 2억 마리가 넘는 매우 좋은 흙이었다. 어르신이 농사짓는 밭의 흙은 어느 흙보다도 좋았다.
그날 밤에 다시 어르신을 찾아갔다. 밤 깊도록 어르신으로부터 흙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흙은 ‘생명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밥 먹고 물 마시고 숨 쉬고 자라는 하나의 생명체라고 했다. 흙이 생명력을 잃어버린 것은 인간이 그 생명력을 빼앗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밤이 그 깊이를 다하고 연이은 새날은 꿈틀거리며 동틀 채비를 하는 즈음 난 밖으로 나왔다. 기분이 박하 향처럼 상쾌했다. 새벽공기는 흙내가 잔잔했다. 흙에서는 알싸한 인삼 냄새가 난다. 그것은 흙에 방선균이 있기 때문인데, 이는 흙이 건강하고 활력이 있다는 증거다.
“젊은이, 흙의 소리를 듣게!”
“어떻게 흙의 소리를 듣죠?”
“소리란 크다고 해서만 들리는 게 아냐. 애정이 있으면 들리지. 그대 나름대로 흙을 연구했고 흙에 관심도 있었지만 흙의 소리를 듣지 못했네. 왜 그렇지?”
난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난 흙에 관심이 있었지만, 그건 내 이익을 위한 관심뿐이었다. 그러니 흙이 내게 말을 할 리도 없었고, 하더라도 그냥 흘렀으니 들리지 않는 게 당연한 거다.
“젊은이가 흙의 소리를 듣지 못한 것은 흙에게 말만 했기 때문이네. 흙은 입과 귀가 하나야. 그래서 말을 할 때는 듣지 못하고, 들을 때는 말을 하지 못하지. 자네가 자꾸 말만 하니 흙은 입을 다물 수밖에.”
“내가 무슨 말을 했죠?”
“흙에 비료를 주며 잘 자라라고 말했고, 농약을 주며 병에 걸리지 말라고 말했지. 그래야 내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면서.”
“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요?”
“흙은 마음의 소리도 듣는다네.”
“······.”
“젊은이는 흙을 밟고 일하며 혼자서만 실컷 지껄이다가, 막상 흙이 말하려고 하면 뭐가 그리 바쁜지 휑하니 사라져 버렸지. 자넨 흙이 말하는 것도, 숨 쉬는 것도, 밥 먹는 것도 볼 겨를 없이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부지런히 흙을 괴롭혔네.”
그날 이후, 난 흙의 소리를 들으려고 애썼다. 쉽사리 입을 열지 않는 흙을 붙잡고 일 년을 매달린 후에 겨우 흙의 소리를 들었다. 내가 들은 흙의 첫소리는 시름에 겨운 긴 한숨이었다. 그리고 두 해가 지나서 안도의 숨소리를 들었고, 세 해가 지나서는 기대 섞인 흥분 소리를 들었고, 그 후로는 활기 있는 생생한 소리를 듣고 있다.
이전엔 어떤 곳의 흙을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많은 측정기구들을 사용했는데, 그보다 더 간단하면서도 정확히 흙의 상태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바로 얼마나 많은 지렁이가 있는가만 살피면 되는 것이다. 지렁이가 많으면 흙의 물리적 구조, 화학적 반응, 생물적 다양성이 좋아짐을 알 수 있다. 지금 내 밭에는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지렁이가 있다. 이들은 내 농사를 거드는 도움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