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꿈꾸는 꿈틀이>_19
애바리는 흙살림꾼과 농대에서 학업을 같이 한 동기인데, 그는 농대를 졸업하여 식품회사에 들어갔다. 가끔은 흙살림꾼을 만나러 시골로 내려오곤 했다. 흙살림꾼은 지렁이의 가치와 역할에 대해 애바리에게 말하곤 했다. 어느 날 애바리는 좋은 사업을 진행 중이라며 이런저런 설명서와 서류를 가지고 시골로 내려왔다. 흙살림꾼을 붙잡고는 다짜고짜 동업하자고 했다.
“네가 지렁이를 돌보는 걸 보고 나도 지렁이에 대해 알아봤어. 참 많은 가치가 있더구나. 우리가 손잡으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아.”
갑자기 나타나 대뜸 동업하자는 의도가 뭔지 궁금하여 흙살림꾼은 애바리의 말을 가만히 들고 있었다.
“지렁이란 놈, 알고 보니 짭짤한 돈벌이가 될 것 같아. 지렁이를 대량으로 양식해서 화장품도 만들고 약고 만들면 돈이 될 거야. 넌 지렁이만 키워.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게.”
“지렁이로 무슨 화장품이나 약을 만드니?”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는 미용에 이용하려고 나일강에서 지렁이를 길렀어.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은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지렁이를 손으로 문질러서 얼굴과 몸에 바른데. 화장품 회사에서는 지렁이 체액으로 입술에 바르는 고급 루주를 만들고, 얼굴의 기미를 줄이고 노후 피부 각질을 없애는 화장품을 만들기도 해. 이 뿐만 아니라 약으로도 많이 개발되고 있어. 혈액의 흐름을 막아 각종 혈관 질환을 일으키는 혈전의 주성분(피브린)을 용해시키는 효소(룸부리카이네즈)를 지렁이 체액에서 발견하여 혈전치료제를 개발했고, 항암물질(룸브리신)도 개발했어. 또 있어. 지렁이똥(분변토)을 냄새를 없애는 탈취제로 쓸 수 있어. 원래 지렁이의 사료는 음식찌꺼기, 제지공장 찌꺼기, 인분뇨 처리 후의 활성오니 등 악취가 많이 나는 것들인데, 일단 지렁이가 먹기 시작하면 냄새가 나지 않아. 지렁이 배설물을 하수처리장, 분뇨처리장, 쓰레기 소각장, 축산시설에 팔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거야. 지렁이가 이렇게 가치 있는 줄은 정말 몰랐다.”
흥분에 겨워 신나게 지껄이는 애바리를 바라보던 흙살림꾼은 그 꿍꿍이셈을 알아챘다. 역시 애바리다운 치밀함과 약빠름이다 라고 생각했다.
“지렁이가 그런 가치까지 가졌구나.”
애바리의 지렁이를 대하는 태도를 보고 흙살림꾼은 슬펐다. 애바리는 흙살림꾼의 기분 따위엔 아랑곳하지 않고 들떠서 눈이 빛났다.
“흙살림꾼아, 지렁이는 우리에게 정말 가치 있는 벌레야!”
“어떻게?”
“우릴 부자로 만들어줄 거야. 넌 지렁이를 키우는데 소질 있고, 난 사업에 소질 있으니 우리 잘해보자.”
“애바리, 넌 지렁이의 가치를 ‘값어치’로만 생각하는구나. 난 지렁이의 가치를 ‘존재’로 생각하거든. 우리에게 이런 차이가 있어서 함께 할 수 없겠구나. 난 농사꾼이야. 지렁이는 내 동료이고. 난 지렁이의 ‘값어치’는 잘 모르지만 그 ‘존재’는 알아.”
당연히 자신의 말에 동조할 줄 알았던 애바리는 흙살림꾼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더니, 다시 설득했다. 그러나 흙살림꾼은 흙을 살리는데 더 치중하고 싶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결국 애바리는 설득하길 포기하고 도시로 떠났고, 흙살림꾼은 계속 시골에 남았다.
애바리는 도시로 떠나며 흙살림꾼에게 빈정거리는 투로 말 한마디를 툭 던졌다.
“지렁이와 함께 하더니 ‘무지렁이’가 되었구나.”
* 애바리 : 이익을 좇아 발밭게 덤비는 사람
* 무지렁이 :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