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꿈꾸는 꿈틀이>_21
다운터를 빙 둘러보던 꿈틀이가 말했다.
“이곳은 모두가 제멋대로인 것 같아. 무질서하게 보여.”
다운터엔 농부의 손길이 별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작물로서의 가치가 별로 없는 호밀이 자라는가 하면 잡초인 토끼풀도 듬성듬성 있고 억센 아까시나무가 우람하게 자라고 있다.
“꿈틀아, 네가 말하는 질서란 뭐지?”
다운이가 물었다. 꿈틀이는 지난번에 봤던, 벼가 가지런히 심긴 논을 떠올렸다. 또 배추밭에는 배추만, 콩밭에는 콩만이 심겨 있는 것을 떠올리며 그것이 질서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응, 질서란 함께 사는 데 있어 편하고 쉬운 것이 아닐까?”
“그래, 하지만 획일적 질서를 위해 각자의 자연스러움을 망가뜨리는 것은 질서가 아닌 혼돈이야.”
“혼돈?”
“꿈틀아, 이곳 생물들은 자연의 질서를 따르지. 어느 정도는 양보하고, 어느 정도는 챙기며 각자 자기답게 살지.”
“그럼 내가 봤던 논밭의 작물들은 자기다움을 잃어버린 것이니?”
“그래, 그래서 그들에겐 획일적인 새로운 질서와 인위적인 보호가 필요해.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힘조차 상실해 버렸거든.”
“자신을 보호하다니? 움직이지도 못하는 식물들이 어떻게 자기보호를 한다는 거지?”
“식물은 달아나거나 숨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의 생존비결을 가지고 있어. 가령 공변세포는 가물면 구멍을 닫아 물의 낭비를 막고, 기동세포는 밤에 추우면 잎을 움츠려서 열의 발산을 막아. 무는 그해 겨울이 추울 것 같으면 껍질을 두껍게 하고, 뿌리를 깊게 내려. 그뿐만이 아냐.”
다운이는 계속해서 꿈틀이에게 얘기했다.
“꿈틀아, 이곳의 질서는 함께 지켜. 벌레는 식물을 먹되 죽이지는 않아. 이것은 함께 사는 방법이야. 우리가 슬퍼해야 할 것은 ‘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라지는 거야. 만약 어느 벌레가 욕심이 많아 식물의 잎을 모조리 갉아먹으면, 자신은 배부르게 살지 모르지만 그 새끼는 굶어 죽을 거야. 이것은 벌레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함께 사는 게 아니라 같이 죽는 거지.
“그렇지만 욕심 많은 벌레도 있을 텐데?”
“혹 그런 벌레가 있어서 식물을 공격하더라도 식물은 일방적으로 당하지만은 않아. 우리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리듯이 식물도 건들면 움찔거리지.”
“어떻게?”
“나약해 보이는 식물들도 나름대로 생존 대안을 가지고 있어. 벌레에 의해 손상된 부위에서 ‘재스민’이 생겨 주변으로 퍼지는데, 이 신호를 받은 식물은 곤충이 싫어할 물질들을 몸에 쌓아 벌레의 공격에 대비하지.”
“어떤 물질들이지?”
“가장 대표적인 것은 소화억제 효소인데, 벌레의 입맛을 떨어뜨려서 딴 곳으로 가도록 하지. 그래도 소화억제 효소가 든 잎을 계속 먹을 경우에는 그 벌레는 자람이 더디고 오래 살지 못해.”
“자기다움을 잃어버린 논밭의 작물들은?”
“비료나 제초제 등 화학물질로 키우는 재배 작물들은 재스민 같은 신호물질을 잘 못 만들고 방어능력도 약해”
“대신 농약이 해로운 벌레를 막아주지 않을까?”
“해론벌레를 죽이기 위해 친 농약에 이론벌레가 더 많이 죽어. 농약을 치면 해충이 잠깐 피했다가 다시 돌아오는데, 천적이 없으므로 안심하고 농작물을 갉아먹지.”
“자연의 질서를 지켜야 되겠구나.”
“작물을 유기농법으로 키우면 자기답게 자란 식물이 자체 방어력은 갖게 되어 건강하게 자라지.”
꿈틀이는 다운이와 함께 다운터를 둘러보며 흙을 살폈다. 지렁이는 흙에 살며 흙을 먹고 흙을 싼다. 지렁이는 흙이나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흙이다.”
다운이는 꿈틀이도 동의하리라고 여기며 말했다. 그러나 꿈틀이는 자신의 특별한 재주만 뽐내다가 그 재주 때문에 오히려 목숨을 잃어버린 공벌레 쥐며느리를 떠올렸다.
“다운아. 물론 흙이 중요하지만 ‘가장’이란 말은 조금 억지인 것 같아. 왜냐면 흙 말고도 중요한 것이 많이 있잖아. 우린 그런 다양성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꿈틀아. 네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알아. 넌 경험을 통해 다양성을 보았을 것이다.”
“그래. 난 여행을 통해 나와는 다른 부분도 받아들이는 관용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어. 이것이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것도.”
“맞아. 그러나 우리가 다양성을 추구하는 이유는 자신의 고유성을 더 돋보이기 위함이야.”
“다운아.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내 고유성을 살리는 길이라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특이성만 고집한다면 그것은 아집이고 교만이지만, 다양성을 인정하며 자기 특이성을 살리는 것이 겸손이고 자기다운 것이지.”
“지렁이의 특이성은 흙이고, 흙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거네?”
“그렇지. 내가 ‘흙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한 말은 틀린 말이 아냐. 지렁이에겐 흙이 가장 중요하고, 새에겐 공기가 가장 중요하고, 물고기에겐 물이 가장 중요해.”
“나도 이젠 흙이 가장 중요해라고 말할래.”
“꿈틀아, 흙이 가장 중요하다는 내 말은, 다른 것이 가치 없다는 뜻이라기보다는 내가 가진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야.”
“다운아, 그건 일종의 자존심이니?”
“긍정적인 자존심이지.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지 않고는 그 어떤 것도 사랑할 수 없는 것 같아. 내 삶의 터전인 흙은 내게 가장 소중해.”
다운이는 꿈틀이를 데리고 다운터의 귀퉁이로 갔다. 다운이는 자신이 꿈틀이에게 할 말을 다 했기에 이제는 꿈틀이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꿈틀아, 넌 흙이 될 거야. 저기 단단한 바위를 보고 누가 흙이라고 여기겠니? 지금 당장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서 안 이뤄지는 게 아냐.”
“······.”
“삶은 꿈이야. 꿈을 좇아 꿈틀대는 몸짓이지.”
“꿈을 움트는 이.”
“꿈틀아, 이곳에는 많은 꿈틀이가 있어.”
“다운아, 이젠 내가 떠날 때가 됐구나.”
“맞아. 아쉽지만 넌 떠나야 하고, 난 남아야 해.”
“잘 있어, 다운아.”
“잘 가, 꿈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