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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뜨기 Jan 14. 2024

벼를 아십니까?

우리가 매일 먹는 밥, 이 밥을 지을 수 있는 벼 얘깁니다.

벼 얘기를 사람들이 목숨 걸며 읽지는 않겠지만, 따지자면 목숨이 달린 얘기다. 글 읽는 이중에 벼농사를 짓는 농부는 거의 없을 게다. 그러기에 벼 얘기가 나와 상관없는 얘기라고 여길 수 있는데, 우리는 매일 밥을 먹는다. 한두 끼 정도야 굶어도 죽진 않지만 달포 간 밥을 먹지 못하면 우리는 결국 죽는다. 우리가 먹는 끼니는 쌀로 밥을 짓고, 쌀은 벼를 농사지어 얻는다. 그러므로 벼 이야기는 나와 상관없는 얘기가 아니라 상관있는 얘기가 된다. 벼는 곧 밥이니까.


아주 먼 옛날에 우리 조상들은 먹을거리를 찾아서 이동했다. 떠돌다가 농사를 지으면서 정착을 했는데 정착을 하니 마을이 생겼고 도시가 생겼고 문명이 발달했다. 오늘날의 화려한 문명은 식량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식량이 없었다면 당장 입에 풀질하기 급급했지 어찌 눈에 그림을 품으며 귀에 음악을 담을 호사를 누렸겠는가! 


우리 조상들의 주림을 근근이 달래주었던 피, 기장, 수수 등이 우리의 민족의 주식이 되기도 했었지만 한반도에서 벼가 재배되면서 쌀밥은 밥상의 주식이 되었다. 우리의 식량은 쌀이고 쌀은 벼를 도정하여 만든다.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킨 벼 이야기를 박물장수 보따리 풀어헤치듯 하나 둘 펼치고자 한다.


이름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면 서로 악수를 하며 통성명을 한다. 인간과 벼가 만났다. 만났으니 이름이나 알아보자. 생물마다 공식적인 이름을 지니는데 바로 학명이다.  학명은 생물의 종에 붙인 분류학적 이름으로 이명법으로 표기하는데 앞이 속명이고 뒤가 종소명이다. 인간의 학명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인데 속명인 호모는 인간을 뜻하고 종소명인 사피엔스는 슬기롭다를 뜻하니 호모사피엔스는 '슬기로운 인간'이라는 말이다. 벼의 학명은 오리자 사티바(Oryza sativa)인데 속명인 오리자는 벼를 뜻하고 종소명인 사티바는 재배하다를 뜻하니 오리자 사티바는 '재배벼'라는 말이다. 벼의 이름을 샅샅이 들여다보자. 


벼 학명의 속명인 오리자(oryza)는 어디서 왔을까? 그 어원은 그리스어 오루자(oruza)다. 이 오루자는 또 어디서 왔을까? 전파경로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아라비아의 우르지(urzy), 아프가니스탄 지역의 뷔리제(vrize), 인도의 고전어인 산스크리트어 뷔리히(vrihi)에 다다른다. 벼 이름인 오리자의 뿌리는 뷔리히다.

      

대한민국에서 '벼'라고 부르는 명칭은 어디서 왔을까? 산스크리트어 뷔리히가 여진족 말로 백미(白米)를 뜻하는 '베레'로 변했다가 한반도로 들어오면서 벼로 정착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한 벼 기원지인에서 유래한 말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에서 '바디(badi)'로 변형되고 우리말 벼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럼, 벼를 뜻하는 영어의 라이스(rice)는 어디서 왔을까? 이탈리아에서 왔다. 이탈리아 전통요리 중에 리소토가 있는데 리소토는 쌀을 이용하여 만든 요리다. 리소토 단어 중에 앞의 두 글자인 '리소'는 이탈리어로 벼를 뜻한다. 이탈리아어 리소(riso)가 프랑스어 리스(riz)를 거쳐 독일어의 다이스(reis) 그리고 영어의 라이스(rice)가 되었다. 이제 벼 이름을 두루 알았다. 이름을 알고 나니 벼가 한층 친근하다.

     

품종

현재 이천시에서 재배하는 벼 품종의 97%는 국내에서 개발한 품종이다. 당연하다. 또한 당연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이 뻔한 얘기를 왜 꺼냈을까? 당연하고 또한 당연해야 하는 대한민국 논에 대한민국 벼가 심긴 것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연하지 않았었다. 알려지는 게 부끄러워 움켜쥔 얘기를 고해성사하듯 슬며시 펼친다.  예전에 이천시에서 재배했던 벼 품종의 97%는 일본에서 개발한 품종이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추청벼는 이천시를 비롯한 경기도의 대표적인 품종이다. 지난 50년간 이천쌀로서 또한 경기미로서 명성을 날렸다. 추청은 쌀알이 작고 투명도가 높아 맑고 고우며 아밀로스 함량이 낮고 호화온도도 낮아 밥을 지으면 적당한 찰기와 풍미를 지닌다.  


추청벼를 우리나라 품종으로 알고 있는 분들도 많은데, 일본에서 개발한 품종을 1969년에 우리나라가 도입하여 지금까지 경기도를 비롯한 중부지역에서 주로 재배하는 일본 품종 벼다. 지금이야 우리나라에서도 밥맛 좋은 벼가 많이 개발되었지만 1970년대에는 밥맛을 따질 겨를이 없이 밥을 먹을 수만 있다면 감지덕지한 시기였다. 농촌진흥청은 부족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량이 많이 나오는 통일벼를 개발했고, 이 품종 덕분에 우리는 잡곡밥이 아닌 흰쌀밥을 대놓고 먹을 수 있었다. 


나이 드신 분들은 추청보다는 '아키바레'라는 말이 더 익숙할 것이다. 수량은 높지만 밥맛은 떨어지는 통일벼에 비해 추청은 매우 밥맛 좋은 쌀로 인기가 높았다. 근래에 우리나라에서도 밥맛 좋은 벼 품종들이 많이 개발되었지만 사람들의 인식에서 추청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 이천쌀 품종에 추청 말고 다른 품종이 끼어들지 못했었다. 부끄럽지만 현실이었다.


2016년 4월 12일, 이천시농업기술센터에서 이천시국립식량과학원과 이천시 농협이 '국내 육성 이천벼 품종개발을 위한 시험연구' 업무협약을 가졌다. 이천시는 지역적응 재배시험을 맡고 국립식량과학원은 우수한 품종을 제공하고 농협은 유통판매를 맡기로 했다. 이 협약은 '수요자 참여형 품종개발 연구(Stakeholder Participatory Program, SPP)’인데, 이 연구방식은 품종을 개발하는 단계부터 이해당사자인 지자체, 농업인, 판매처 등이 참여하여 연구하는 방식이다. 이 연구방식을 이천시가 처음 참여했고 이후 수원, 아산, 강화 등 6개 이상의 지자체에서 실시하고 있다. 


2016년 나는 식량작물팀장으로서 업무협약을 기획했고 2017년까지 2년간 10개의 품종을 지역적응시험을 실시했다. 10개 예비품종 중에 '수원 588호'와 '수원 600호'를 선발했으며, 이천시민을 대상으로 품종명을 공모하여 종생종인 수원 588호는 '해들'로, 수원 600호는 '알찬미'로 추천했다. 해들과 알찬미는 둘 다 대한민국의 '최고품질벼'로 선정되었다. 


2020년부터 이 두 품종을 이천에서 재배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130ha로 이천시 전체 벼 재배면적의 2% 정도였는데 3년 만에 6,700ha까지 확장하여 97%까지 확대하였다. 이제 임금님표 이천쌀은 더 이상 일본 품종인 고시히카리나 추청을 담는 게 아니라 국내육성 품종, 그중에서도 최고품질 벼인 해들과 알찬미를 담아 판매를 하고 있다. 이제 당연하게 대한민국의 논에는 대한민국의 벼가 자란다. 비단 이천의 들녘뿐만 아니라 전국의 들녘에서 국내 육성 품종들이 자라고 있다. 늦었지만 품종에서도 대한독립을 이룬 셈이다.



날씨

농사의 절반은 하늘이 짓는다는 속담이 있다. 여기서 하늘은 날씨다. 

벼는 고온성작물이다. 기온이 15도 이상은 되어야 자랄 수 있고 35도까지는 생육이 가능하다. 볍씨에서 싹이 트는데 알맞은 온도는 30~32도이고 어린모가 자라기에 알맞은 온도는 25~30도다. 모를 기르는 동안에는 온도계를 살피며 온도관리에 주의해야 한다. 


벼 이삭이 나온 후 수확할 때까지 40일간의 평균온도는 20~22도가 알맞다. 이때 밤낮의 기온차는 10도 이상 나는 것이 좋다. 낮에 온도가 높으면 광합성작용을 통해 양분을 만드는데, 밤에도 온도가 높으면 광합성은 하지 못하는 반면에 호흡은 증가하여 많은 양분을 소모하게 된다. 밤에 온도가 낮으면 호흡을 줄여 소모되는 양분을 줄일 수 있으므로 벼 등숙기에는 낮에는 온도가 높고 밤에는 온도가 높지 않은, 그래서 밤낮의 일교차가 많은 것이 벼 양분축적에 유리하다. 


벼의 생육단계가 영양생장에서 생식생장으로 변하는 것은 온도와 낮 길이(일장)의 영향을 받는데 생육기간이 짧은 조생종은 온도의 영향이 더 크고 생육기간이 긴 만생종은 낮 길이의 영향이 더 크다. 온대지방인 한반도에서는 벼농사를 한해에 한 번만 심지만 봄이 일찍 오고 여름이 늦게까지 이어진다면 온도의 영향이 큰 조생종은 한해에 두 번도 재배할 수 있을 것이다. 기온이 높은 동남아시아지방에서는 일 년에 두세 차례 벼를 수확하기도 한다. 


벼를 비롯해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한계는 봄과 가을의 서리다. 농작물은 봄에 끝서리가 그친 후부터 심을 수 있으며, 가을에 첫서리가 오기 전에 수확을 마쳐야 한다. 벼는 비닐하우스나 보온터널 안에서 서리의 위험을 피해 4월부터 볍씨를 뿌려 모를 기르지만 논에 모내기를 하려면 서리가 그친 5월은 되어야 안심할 수 있다.


새끼치기

모내기 후 논에서는 마법에 걸린 듯 모가 늘어난다. 자라는 게 아니고 늘어난다고?

물론 벼 키도 자란다. 신기한 것은 줄기 수가 마술처럼 늘어나는 것이다. 모내기는 한 모숨에 대여섯 줄기를 심는데 모낸 후 열흘 가량은 뿌리를 내리며 자리를 잡는다. 이때는 마법이 일어나지 않는다.

뿌리를 내리고 자리를 잡은 벼는 본격적으로 마술을 부린다. 논에 갈 때마다 줄기가 늘어난다. 한 포기에 다섯 줄기였던 벼는 열 줄기가 되고 열다섯 줄기가 되고 스물 줄기가 된다. 신기할 따름이다.

  

벼는 벼이니 식물분류상 과는 당연히 벼과 식물이다. 벼과 식물로는 밀, 보리, 옥수수 등이 있는데, 대나무도 벼과다. 벼과 식물 줄기는 대나무처럼 줄기에 마디가 있다. 대나무의 마디는 한 자 간격으로 거의 일정하고 수는 40~70개나 되며 지상으로 나와있는 부분은 눈에 잘 보인다. 하지만 벼는 마디가 잎집에 싸여있어 보이지 않으며 마디 수는 14~18개 정도인데, 이 중에서 지상의 부분은 4~5마디고 나머지 10마디 이상은 뿌리 윗부분인 땅속의 아랫줄기에 촘촘히 모여있다.


마법을 바로 여기서 일어난다. 땅속에 있는 촘촘한 마디에서 차례대로 새 줄기가 나온다. 여기서 나온 줄기는 또 새로운 줄기를 낸다. 새끼를 치는 것이다. 모내기 때 4줄기만 심어도 가을이면 40줄기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줄기를 많이 내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벼 줄기에 벼 나락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줄기가 자라 이삭이 나오고 이삭에 알이 차는데, 너무 늦게 나온 줄기의 이삭은 알이 차기 전에 추위가 찾아와 쭉정이가 되고 만다. 속 빈 강정이다.


벼 줄기 중에 일찍 새끼를 쳐서 이삭이 제대로 여문 것은 '참새끼'고 늦게 새끼를 쳐서 이삭이 여물지 못한 것은 '헛새끼'다. 벼를 수확할 때 줄기는 서른 개 가까이 되지만 실제로 이삭이 제대로 찬 것은 스무 개 정도다. 벼농사를 하면서 참새끼를 일찍 내는 것이 중요하고, 참새끼가 충분히 확보된 이후에는 헛새끼가 나오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 방법은 줄기가 스무 개 정도 나왔을 때 물을 떼서 논을 말리는 것이다. 논에 물이 없으면 벼는 새끼치기를 줄이게 된다. 논물을 떼는 것은 자동차 엔진에 연료를 보내지 않는 것과 같다.


거름

사람은 밥심으로 살고 작물은 땅심으로 산다. 땅심을 길러야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다. 땅심을 기르려면 흙에 유기물이 많아야 한다. 유기물은 작물에 필요한 양분을 공급할 뿐만 아니라 흙의 물리성을 좋게 하여 작물이 자라기에 알맞은 환경을 만들어준다. 


가을에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커다랗고 둥근 하얀 덩어리가 논에 있는 것이 보인다. 거대한 마시멜로처럼 생긴 이것을 아이들은 공룡알이라고 부른다. 곤포사일리지다. 그 안에는 볏짚이 있는데, 소의 먹이로 쓰려고 비닐로 감싼 것이다. 벼알뿐만 아니라 볏짚마저 논에서 다 걷어가고 있다. 땅심을 기르려면 논에서 나온 볏짚은 다시 그 논으로 되돌려줘야 한다. 성경에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는 말이 있듯이 벼농사를 지어서 알곡은 인간이 가져가되 볏짚은 다시 논으로 돌려줘야 한다. 논의 볏짚을 거둬가면 논은 점점 땅심을 잃어 부실해질 것이며 그 손해는 결국 농부가 보게 된다.


해마다 농작물을 심는 농경지는 작물을 키우느라 많은 양분을 소모하기에 농부는 비료를 주며 부족한 양분을 보충한다. 대표적인 비료 성분은 질소, 인산, 칼륨이다. 이들 비료는 다른 양분보다 훨씬 많이 주면서 농사를 짓는다. 그러나 무조건 많이 준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작물마다 알맞은 양이 있는데 이것을 표준 시비량이라고 한다. 부족해도 안되지만 과해도 안된다. 알맞아야 한다.


농촌지도기관에서 농업인에게 영농교육을 할 때 강조하는 사항이 있다. 질소질비료를 적게 주라는 내용이다. 이 말은 농업인들이 질소질비료를 많이 주고 있다는 뜻이다. 질소비료를 주면 벼는 잘 자란다. 잘 자랄 뿐만 아니라 벼 수량도 높다. 그러기에 농부들은 비료를 많이 주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과유불급, 과함은 미치지 못함보다 못하다. 질소질비료를 많이 주면 벼는 지나치게 키가 커서 가을에 비바람이 불면 쉽게 쓰러지고, 벼가 튼튼하지 못해 각종 병해충에 쉽게 걸린다. 또한 질소질비료를 많이 주면 밥맛을 떨어뜨리는 단백질 함량이 올라가서 쌀의 품질을 떨어뜨린다. 사람도 적당한 음식은 몸을 알맞게 성장시키고 건강에도 좋지만 과한 식사는 비만을 일으켜 각종 질병을 야기하는 것과 같다. 


벼농사에 있어 질소질비료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밥맛 좋은 쌀을 생산한 수 있다. 알맞은 시비량은 10a당 7~9kg이다. 딱 이만큼만 주면 된다. 더 주면 질소는 약이 아닌 독이 된다.


물관리

 벼는 물이 담긴 논에서 자라는 식물이기에 물이 아주 중요하다. 벼 생육기간에 대부분은 논물이 찬 상태에서 자란다. 하지만 어느 시기에는 논에 물이 없어도 된다. 바로 중간물떼기 때다.       


논에 물을 떼서 논바닥을 드러냄은 방의 창문을 열고 신선한 공기로 환기하는 것과 같다. 두 달 가까이 물로 인해 공기와 차단된 논바닥은 산소가 부족하여 해로운 환원성 물질들이 축적되어 있다. 논을 말림으로써 이들 환원성물질을 배출시키고 신선한 산소를 논바닥에 공급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벼 뿌리도 호흡을 하는데 한결 가뿐할 것이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 뿌리 깊은 벼도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는다. 가을이면 비바람에 벼가 쓰러지곤 하는데 중간물떼기를 제대로 하면 벼 쓰러짐을 예방할 수 있다. 논에 물이 없으면 벼는 물을 찾기 위해 뿌리를 땅속 깊이 내리게 된다.  논물을 뗌으로써 벼가 스스로 뿌리를 깊게 뻗도록 꼬드기는 것이다.


그러나 농부들은 논물을 완전히 떼는 것을 두려워한다. 벼는 항상 물이 있어야 한다는 노파심이 있는 것이다. 벼가 많은 물을 필요로 하지만, 정말 다른 작물보다 많은 물을 필요로 할까?


식물용어 중에 '요수량'은 식물체가 제 몸 1g을 만들기 위해 마시는 물의 양이다. 보리는 530g이고 콩은 640g이다. 벼는 몇일까? 300g 이하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물이 있는 논에서 자라는 벼 요수량이 물 없는 밭에서 자라는 콩의 요수량보다 적다. 뿌리로 물을 흡수하여 잎으로 물을 내보내는 양, 즉 생리수로서 벼는 콩보다 적은 물을 사용한다. 벼가 환경수로서는 많은 물이 필요하지만 생리수로서 적은 물만 있어도 된다. 그러니 벼는 항상 많은 물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도 된다. 물을 뗄 때는 과감히 논물을 떼는 것이다. 젖먹이한테 엄마 젖을 떼듯이.


병해충

 벼에 발생하는 병은 도열병, 흰잎마름병, 잎집무늬마름병, 깨씨무늬병, 이삭누룩병 등이 있다. 이들 병을 잡는 전용 약제가 있기에 병이 발생하면 살균제를 뿌리면 된다. 하지만 약을 치는 것은 최선이 아닌 차선이다. 병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다. 병은 왜 생기는가? 병마다 원인이 다르니 예방도 다르다.


도열병은 벼가 연약할 때 잘 발생한다. 벼는 질소질비료를 많이 주면 연약하게 자란다. 그러므로 도열병을 예방하려면 질소질비료를 과다하게 주지 말고 적당히 줘야 한다. 흰잎마름병은 세균성 병이다. 이 세균은 물을 타고 번진다. 논이 물에 잠기면 이 병은 잘 번진다. 그러므로 흰잎마름병을 예방하려면 많은 비가 와도 논이 물에 잠기지 않도록 배수로를 정비하면 된다. 깨씨무늬병은 영양이 부족할 때 발생한다. 논에 유기물과 비료를 공급하면 깨씨무늬병을 줄일 수 있다.


병이 생길 때마다 약을 치면 약값도 만만찮고 힘도 든다. 방제는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 기본방제는 두 번만 하고 병 발생이 심할 때는 추가로 한두 번 더 하는 것이다. 기본방제는 모내기할 때 상자처리를 하는 것과 벼 이삭이 팰 무렵에 종합방제를 하는 것이다.


잡초

피는 잡초다. 피는 벼와 같은 벼과 식물이다. 피가 원래부터 잡초인 것은 아니었다. 벼가 재배되기 전에는 피를 작물로 재배까지 했었다. 맹자가 살던 시대에는 피는 주요 작물인 오곡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지금은 대표적인 논잡초다. 아이러니다.


잡초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재배하는 것은 작물이고, 작물과 함께 자라는 원하지 않는 식물은 잡초다. 콩밭에 들깨가 자란다면 들깨는 콩을 재배하는 농부에게 잡초일 뿐이다. 피를 식용으로도 재배하는데, 이 피논에 벼가 자란다면 이때는 피가 작물이고 벼는 잡초가 된다. 벼인데 논에서 잡초로 취급받는 벼가 있다. 바로 앵미인데 '잡초성 벼'라고 부른다. 논에서 일반 벼와 같이 자라는 벼인데 잡초로 취급받다니! 이 또한 아이러니다.


논잡초로는 피를 비롯한 올방개, 올챙이고랭이, 물달개비, 벗풀, 방동사니, 가막사리, 자귀풀, 사마귀풀, 나도겨풀 등이 있다. 생태로는 한해살이잡초와 여러해살이잡초가 있고, 생김새로는 벼과와 방동사니과와 광엽잡초가 있다. 한해살이잡초는 모낸 후부터 발생하고 여러해살이잡초는 모낸 지 보름 정도 지나서 나온다. 잡초마다 발생시기도 다르고 형태도 다르니 잡초방제도 맞춰서 해야 효과적이다.  


논은 밭에 비해 잡초가 적다. 바닥이 물에 잠겼기 때문에 일반 풀들이 잘 자라지 못한다. 논에서 자라는 논풀은 논잡초 전용 제초제로 해결할 수 있다. 잡초가 나기 전에 미리 뿌려서 나오지 못하게 하는 발아전처리제도 있고, 발생한 잡초의 잎에 뿌려서 죽이는 경엽처리제도 있다. 제초제는 처리시기가 중요하다. 때를 놓치면 약을 뿌려도 기대효과를 못 볼 수 있다. 제초제는 필요악이다. 어쩔 수 없이 사용은 하지만 적합한 약제를 적절한 시기에 적당한 용량을 처리해야 한다.


벼알에서 거친 왕겨를 벗겨내고 얇은 쌀겨를 벗겨내면 뽀얀 쌀이 나온다. 계란과 비교하면 딱딱한 겉껍질이 왕겨라면 비닐 랩처럼 얇은 속껍질은 쌀겨다. 벼알에서 왕겨를 벗겨내면 현미가 되고, 현미에서 쌀겨를 벗겨내면 백미가 된다. 우리가 밥을 지어먹는 하얀 쌀이 되는 것이다. 보통은 쌀겨층을 완전히 제거한 백미로 밥을 짓지만 일부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서 쌀겨층이 남아 있는 현미로 밥을 지어먹는다. 


현미는 쌀겨층이 온전히 남아있는 쌀을 말하지만 밥을 할 때 쓰는 현미쌀은 쌀겨를 반만 벗기거나 반의 반을 벗긴 것을 말한다. 쌀겨층의 벗긴 정도를 분도라고 하는데 5분도, 7분도, 9분도라도 한다. 쌀겨층은 비눗방울처럼 얇지만 이 쌀겨층의 두께를 10등분 할 때 절반을 제거한 쌀은 5분도 현미, 70%를 제거한 쌀은 7분도 현미, 90%를 제거한 쌀은 9분도 현미다. 10분도라 함은 쌀겨층을 모두 벗겨낸 것으로서 현미가 아니라 백미다.

 

시중에 유통되는 백미는 12분도 쌀이다. 쌀겨층은 물론 전분층의 일부까지 벗겨내서 더 뽀얗고 하얀 쌀을 만든 것이다. 쌀이 낭비되는 부분이 있어 아깝기도 하지만 보드라운 속살만 먹고 싶어 하는 소비자의 요구에 맞춘 도정이다. 감자나 사과 껍질을 깎을 때 겉껍질만 깎는 것이 아니라 속살도 일부 같이 깎아내는 것과 같다.


흰쌀밥이 고봉으로 담겨있는 밥상은,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인 우리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의,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는 소원이었다. 지금은 공감할 수 없는 소원이지만 그때는 고깃국에 흰쌀밥을 원 없이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밥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을 해결하고, 움직이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생존 필수품이다.


굳이 할아버지 세대의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쌀밥의 가치를 알 수 있다. 지금 이 시대에서 공간을 이동하여 아프리카로 가면 쌀밥은 그 어느 것보다 귀한 선물이며 사람의 목숨을 살릴 귀한 음식이다. 


지금 우리는 쌀밥을 하찮게 여기고 때로는 귀찮게도 여긴다. 치킨에 밀리고 피자에 밀려서 찬밥신세인 쌀밥. 천 원짜리 한 장으로 밥 한 공기를 살 수 있으니 쌀밥은 값싸고 흔하다. 이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데......


정말,  당 연   할    까 ?


오늘도 아침 식탁에 쌀밥이 올라왔다. 좋은 품종을 개발해 주신 연구자, 벼를 재배해 주신 농부, 쌀을 가공하고 판매하는 상인, 그리고 끼니마다 밥상을 차려주신 어머니와 아내를 떠올린다. 


"밥 잘 먹겠습니다!"


-종이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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