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준석이 쓰다

자만의 덫에 빠진 민주주의, 데이비드 런시먼

by 짱구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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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초등학교 전교어린이회장의 연설문에는 으레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이 인용된다.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거칠게 말하자면 민주주의를 누가 지배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 중 하나로 곧 ‘민(民, people)’이 지배하는 정치이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민’이 지배한다는 최소한의 형식적 요건은 권력에 합법성과 정당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20세기 이후 여러 정치권력은 민주주의를 매력적인 동반자로 삼아왔다. 관건은 지배하는 존재로 호명된 ‘민’이 누구인지, 어떻게 정해지는 것인지에 대한 합의이다. 이는 곧 해당 사회의 민주주의가 누구를 위한 지배인지 논하는 내용과 직결된다. 따라서 ‘민’의 자격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내용에 따라 각 사회 별로 민주주의의 운영 양상이 극명하게 엇갈리게 된다. 덕분에 때때로 드러나는 민주주의의 민낯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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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20세기에 민주주의는 파시즘과 결합하여 각종 전쟁범죄를 합법적으로 뒷받침하기도 했고, 최근에는 신자유주의에 영합하여 전지구적인 불평등을 조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민주주의에서는 소수의 욕망만을 보장해주기 때문에 명실상부한 민주주의라고 보기 어렵다. 이상적인 민주주의란 해당 사회의 각양각색의 ‘민’들의 공공선을 우선적으로 보장해주는 정치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이상적인 운영을 상정하더라도 책에서 말하는 민주주의의 자만은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가 없다. 책에서 지적하는 민주주의의 태생적 결점이 단기적인 유연성(시행착오)인데, 이는 역으로 20세기를 거치며 민주주의가 살아남은 핵심 비결인 장기적인 안정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민주주의의 자만을 지적하는 이유는 민주주의의 단기적인 처방으로 해결하기에는 이제는 너무도 거대한 위기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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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되물어야 할 것이 거대한 위기가 온다고 했을 때, 거대한 위기를 수습하지 못하는 소방수의 잘못이 더 큰가, 거대한 위기를 초래한 방화범의 잘못이 더 큰가. 단연 후자의 잘못이 커보이는데, 전자를 강조하는 책의 논조가 다소 가혹해 보인다.



그럼에도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에 공감하여 민주주의를 가꿔나가야 하는 구성원 중 한 명으로서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단기적인 유연성을 통해 장기적인 안정성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시행착오가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현실의 민주주의 사회가 더욱 고도화, 대규모화하면서 위임받은 소수의 정치적 판단이 위임한 다수의 일상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놓을 수 있다. 설령 악의가 없더라도 모든 정치적 판단에는 그로 인해 이득을 보는 자와 반대급부로 손해를 보는 자가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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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바깥의 요인으로 얻은 타인의 이익을 가리켜 무임승차라면서 인정에 인색한 반면 능력 바깥의 요인으로 발생한 타인의 손해에 대해서는 불운이라면서 관대한 경향이 있다. 그 결과 부수적인 피해가 정치적 의사결정에 전혀 참여하지 못한 당사자에게 전가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이를 보완할 실질적인 제도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일단 발생한 피해가 추후 민주주의의 순기능에 의해 분명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지만, 그 피해를 즉각적으로 입은 당사자는 장기적으로 회복되는 시점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 이제는 자신들의 선택이 초래하지 않은 결과로 그 사회에서 탈락하는 비극을 방지할 제도적 보완까지 공공선의 지평에 넣을 여유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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