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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버른앨리스 Oct 21. 2018

에필로그



2018도 얼마 안 남았네. 


나는 올해 호주 나이로는 서른네 살, 한국 나이로는 서른여섯 살이 되었고 호주 생활은 햇수로 10년 차야. 

참 오랜 시간을 내가 태어나 지 않은 땅에서 떠다녔어. 뿌리를 내린 것도, 안 내린 것도 아닌 상태로. 


한국에서 성인까지 자란 사람으로서 호주 사회에 적응한단 것은 꽤 나 복잡했던 것 같아. 

한국에서 나는 ‘한국인이면서 왜 그래’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거든. 김치나 된장을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수직 적인 위계질서에 경기를 일으키고 당연한 듯한 통념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애국심이 그다지 투철하지 않아 한일전 같은 경기에 관심이 별로 없는 나를 볼 때마다 ‘넌 참 한국 사람 같지 않다’는 말을 다들 참 많이 하더라. 


그런데 호주에서의 나는 ‘넌 한국 사람이라 그렇구나’라는 말을 들어. 매운 걸 좋아하고 잘 먹는 나에게, 호주 친구들과 달리 윗사람에게 예의를 차리는 나에게, 일할 때 가장 부지런한 나에게, 사진을 찍을 때면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브이라도 그리는 나에게 호주 친구들은 ‘You are so Korean’이라고 말해. 너는 한국인이라서 이렇다거나, 저렇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했어. 


한국 사람 같다는 건 대체 뭐길래 나는 한국 사람 같은 걸까. 

난 한국 사람 같은 사람일까, 한국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일까. 

그래서 나는 한국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걸까, 아닌 걸까. 


많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 지금의 나는 더 이상 저런 고민을 하지 않아. 다양한 문화 속에서 많은 일들을 겪고 수많은 사람들과 만났다 헤어지며 나는 한국인이면서 호주스럽고 어린애 같으면서 늙은이 같기도 한 박가영이자 앨리스야. 


이제야 나라나 나이처럼 특정한 틀에 맞춰서 살아야 할 필요가 없단 걸 알았어. 하나하나의 우주인 우리는, 너무나 복잡해서 애초에 어떤 틀에 끼워 넣을 수 없단 걸 배웠거든. 






솔직히 말하면 한국이 그리워, 많이. 

하지만 나는 한국에 돌아가지 않을 것 같아. 아마 다시는 한국에서 ‘살려고’ 돌아가지는 않을 거야. 그렇지만 호주 말고 다른 나라에 살아보고 싶기는 해. 평생 호주에서 살 마음은 없어. 동남아나 중국, 유럽에도 살아보고 싶어. 하지만 한국에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 한식을 가장 좋아하고, 한글로 된 한국 책을 읽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고, 여전히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에 기뻐하고 분개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도 말이야. 내가 돌아간다고 해서 한국 사회에 내 자리가 있을까. 그때도 없었는데 지금이라고 뭐가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 그립다가도 또 무력감이 들고, 그게 미움으로 바뀌는 날들이 많아. 


아직도 나는 내 조국을 혼자 짝사랑하는 것 같아. 나를 사랑한 적 없는 누군가를 혼자 그리워하고, 집착하고 미워하고. 하지만 언제까지나 짝사랑만 할 순 없잖아. 언젠가는 한국인의 뿌리만 남은 호주인으로 살게 되는 날이 오겠지. 그날이 기다려지기도, 두렵기도 해. 한국인으로 계속 살고 싶기도 하고, 하루라도 빨리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하니까. 내가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을 끝마치는 날이 그 긴 짝사랑을 정리하는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내게 이 글을 시작하고 끝내는 게 그토록 중요했던 것 같아. 마지막 글을 쓰는 오늘에서야 이제 제대로 한 명의 성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내 글로 위로받았다고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도 꼭 전해주고 싶어. 진짜로 위로를 받은 건 나라고. 어떻게 이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네가 무슨 마음으로 네가 태어나고 자란, 

미워하는 만큼 사랑하기도 할 조국을 떠나 다른 세상에서의 삶을 꿈꾸는지 나는 몰라. 네가 이민을 그저 막연히 궁금해하는 건지, 아니면 진지하게 준비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고, 이민이라는 길도 제각기 달라. 어떤 사람에게는 세계가 변하는 일생일대의 결정이지만, 어떤 사람에겐 단순히 좀 더 먼 곳으로의 이사 정도에 불과하기도 해. 정답은 없어. 네가 이민을 간다면, 너는 ‘너만의 이민’을 할 것이고, 너만의 이민사를 써내려갈 거야. 


그래도 내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이민을 생각하며 너는 조금은 두렵고, 설레고, 가끔은 외롭기도 할 거라는 거야. 나를 비롯해 내가 아는 모두가 그랬듯이. 

이 먼 멜버른에서 나는 얼굴도 모르는 너를 응원해. 






네가 생각하는 방법이 이민이든, 

이직이든, 창업이든 중요하지 않아. 

네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기 위해 무언가를 바꾸려는 너를 진심으로 응원해. 무언가를 바꿨다고 해서, 문제를 풀면 정답이 주어지듯이 네게 행복이 간단하게 주어지진 않을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계속 네가 행복할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매었으면 해. 지금 어디서 무얼 하든, 네가 편안한 곳, 이 정도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곳을 마지막엔 꼭 찾길 바랄게. 


네가 있어야 할 곳을,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고 

힘들게 돌아가야 할지언정 끝내는 찾아내기를. 


네가 서 있게 될 그곳이 어디든 간에 

더 이상 싸움터에서 간신히 버티는 하루를 보내지 않기를, 

믿지도 않는 신에게 기도할게. 


고마웠어,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PHOTO CREDIT (INSTAGRAM) 

@SBI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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