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이 여러 도시에서 살아볼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야.
학교를 다니게 되고 일을 시작하게 되면 아마 좋든 싫든, 한 도시에 머무르게 될 확률이 높아. 학교를 다니면서 인맥이 생기고, 알바를 하면서 직장을 알아보고, 집을 한번 구하면 1년씩 계약을 하게 되니까 아무래도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지. 한국처럼 작은 나라도 아니고 포장 이사 서비스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이사하는 게 보통일이 아니야.
호주는 굉장히 넓어서 도시마다 각각 특징이 두드러져. 일단 날씨부터 다르고, 같은 나라에서도 시차가 몇 시간씩 나거든. 나는 멜버른과 잘 맞아. 많은 도시를 다녀보지 않았는데도 운 좋게 나와 잘 맞는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어. 하지만 만약 내가 더 활동적이고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었다면 아마 브리즈번에 살고 있지 않았을까 싶어. 만약에 북적거리는 도시를 선호했다면 단연 시드니일 거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소도시가 좋다면 애들레이드와 잘 맞겠지. 여러 도시에서 살아보면서 네게 맞는 도시를 찾아보고 싶다면, 워홀을 적극 활용해. 사전조사로 잘 맞을 것 같은 도시를 세 군데 정도만 골라서 생활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야. 내 지인 중에는, 시드니에서 살 때는 호주가 진절머리 나게 싫었는데 멜버른에 오니까 왜 호주를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하는지 알겠다는 사람도 있고, 퍼스라는 조용한 도시에 살다 보니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람도 있거든. 살아보기 전까지는 어떤 도시가 너에게 잘 맞는지 알 수 없어. 일단 유학과 이민을 시작하면 도시를 옮기기 어려우니 워홀을 활용해보는 게 좋아.
오면 심심하고 외로울 거야. 셰어하우스에서 만난 친구들과 급속도로 친해지겠지. ‘패밀리’가 되는 건 시간문제야. 같이 생활하는 데다 서로 도울 일도 많으니까. 첫 패밀리와는 엄청나게 가까워질 거야. 그걸 배척할 필요는 없어. 그렇게 정말 많은 추억을 만들 거거든. 그렇게 만난 친구들이 네 첫 계좌 개설을 도와줄 거고, 갑자기 양념치킨이 먹고 싶은데 어디서 시켜 먹어야 할지 모르는 너를 구원해줄 것이며, 우버택시라는 신세계를 경험하게 해줄 거야. 호주에 빨리 적응하려면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해.
하지만 동시에 부작용도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어. 나도 그랬고, 정말 많은 친구들이 첫 패밀리와 몰려다니는 일에 열중한 나머지 생활의 중심을 잃게 돼. 솔직히 진짜 재밌거든. 시트콤 〈논스톱〉 같고. 명절에는 같이 전도 부쳐 먹고, 서로 외국인 친구들 불러서 같이 파티도 하고 말이야. 그런데 이 엄청난 재미에 과하게 빠져서 부작용이 오는 경우도 많아.
우연히 게임이 취미인 애들끼리 같이 살게 된 집을 봤는데, 집을 아예 PC방처럼 꾸며놓고 집에서만 있더라. 아닌 사람들도 그 집에 있으면 동화되는 건 시간문제고. 돈과 시간을 하염없이 낭비하는 거야. 또 패밀리들이 다 한국으로 돌아가니까 너무 지루해져서 워홀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친구들도 봤어. 그렇게 친구들에게 심하게 의존해 함께 이사 다니고, 워홀 기간 내내 한 무리와만 어울리다가 나중에야 후회하는 친구들은 허다했어. 그렇게 룰루랄라 사이좋게 지내기만 하면 오히려 낫게. 애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보니 여러 갈등도 생기고, 왕따가 생기기도 해. 그렇게 패밀리와 멀어지고 나면 호주 자체가 싫어진다는 경우도 봤어. 물론 셰어하우스 패밀리 모두가 열심히 활동하고 공부해 서로 자극받는 경우도 많이 보긴 했어. 하지만 호주 생활의 온 중심이 그 패밀리에 집중돼 있는 친구들은 보통 만족할 만한 워홀을 보내지 못하더라.
결코 나쁘다는 게 아니야. 인연은 소중하지만, 너무 의존하지 말라는 거지. 치우치지 말기. 어떤 관계가 워홀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두지 말기. 네 워홀이니, 네가 중심인 시간을 만들기.
불필요한 갈등과 스트레스로 너의 귀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호주에 왔으니까 약간은 호주 식으로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 한국인들은 ‘우리’를 좋아하고, 작은 일에는 쩨쩨하게 굴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지만, 이곳은 한국이 아니고 같은 한국인들끼리라도 모두가 같은 문화를 공유하지 않으며, 그렇게 인심을 쓸 여건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거든.
예를 들어 네 룸메이트가 너한테 매일 담배를 한 대씩 빌려간다고 쳐보자. 네가 멋모르고, 한국에서 하던 대로 담배를 준 거야. 그런데 문제는, 여기는 세계에서 담배 값이 가장 비싼 호주라는 거야. 한 갑에 이만 원이 훌쩍 넘거든. 한 개비에 천 원이야. 시간이 지날수록 짜증이 나겠지. 미리 제대로 선을 긋지 않고 한국에서 하던 대로 했다가 스트레스는 있는 대로 받고, 눈치 없는 룸메이트와는 사이가 멀어질 수밖에 없어. 담배를 예로 들었지만 맥주, 라면, 쌀, 휴지 모두 해당돼. 애매하게 처음에 ‘그냥 같이 먹고 다음에는 네가 사’ 했다가 데인 경우를 수도 없이 많이 봤어.
아니면 같이 사는 사람들끼리 돈도 아낄 겸, 돈을 모아서 장을 같이 보기로 했다고 해봐. 보통 친해지면 이렇게 많이들 하거든. 처음에는 이게 괜찮아 보일 거야. 쌀이나 생수 같은 건 많이 살수록 싸니까 돈을 아낄 수 있을 것 같지. 모두 같은 돈을 내서 장을 보잖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갈등이 생기게 돼 있어. 시간이 지나면서 일도 구하고, 학원에 다니게 되며 집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 거야. 너는 밥을 하루에 한 끼도 안 먹는데 누군가는 삼시세끼 해먹고, 너는 절대 먹지 않는 것들에 돈을 내야 할 수도 있어. 그러면 돈은 오히려 더 많이 들고 스트레스까지 받게 돼.
그리고 만약 학교 친구가, 과제 좀 참고하게 보여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내 주위에 멋모르고 과제를 보여줬다가 함께 유급된 경우가 있었어. 보여준 사람도 책임을 똑같이 지거든. 한 학기를 다시 다녀야 졸업장이 나온다고 하는 청천벽력 같은 결과를 얻은 거지. 반년의 시간과 수백만 원을 날린 거야. 보여달라고 한 사람도 나름대로 고쳤는데,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철저하게 걸러내다 보니 보통 80퍼센트는 잡아내거든. 싫다고 말하기 껄끄러워 그냥 보여줬다가 그 친구는 학생 비자를 다시 발급받아서 한 학기를 더 다녀야 했어.
이 나라는 울고불고 해봤자 사정을 봐주지도 않고, 공문이 날아오면 그걸로 끝이야. 얄짤없어. 웃으면서 선을 그었다면 조금 껄끄럽고 말았을 텐데, 저 친구들은 결국 절교하고 철천지원수 사이가 되었어. 보여달라고 한 애는 아직도 미안해하지만, 결코 용서받지는 못하겠지. 하지만 과제를 보여준 친구가 진짜로 원망한 건 자기 자신이라더라. 바보 같이 싫다는 말도 못 했던.
이런 스트레스가 생각보다 많을 거야. 네가 No thanks를 외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은 호주고, 개인적인 성향이 강할 수밖에 없는 사회라는 걸 꼭 기억해. 처음에는 친해지고 싶고 잘 적응하고 싶은 마음에 한국에서처럼 ‘갓 들어온 싹싹한 신입’에 빙의해 선을 긋지 못하는 애들이 많거든. 하지만 그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 처음부터 네 밥그릇, 네 편의는 네가 알아서 꼼꼼히 체크하고 야무지게 챙기는 습관을 들였으면 좋겠어. 호주는 선을 긋고 할 말은 해야 손해 보지 않는 나라라는 걸 언제나 기억해 줘.
주요 도시에서는 코트라[KOTRA]나 영사관, 유학원에서 주최하는 취업박람회, 이민박람회 같은 것들이 열려. 가도 큰 수확이 없을 때도 많지만, 집에서 놀 바에야 그런 행사에 자주 참가해 정보를 수집하는 편이 더 도움이 될 거야. 영문이력서를 수정해준다든지, 네가 관심 있는 분야의 멘토와 상담을 한다든지 뜻밖의 수확을 얻을 수 있거든.
유학에 관심이 있다면 유학원에서 미리 상담도 받아보고, 너에게 맞는 학교와 유학원을 스스로 찾는 게 좋아. 워홀 후 유학을 하고 싶다면 적어도 6개월 전에는 어떤 전공으로, 어떤 학교를 다닐지에 대해서 정보를 수집하고 준비하는 걸 권장해. 비자가 만료될 때쯤 허겁지겁 정했다가 몇 년을 후회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되도록 천천히, 꼼꼼하게 알아봐. 입학금 면제처럼 혜택을 주는 경우도 많으니까 이왕이면 다 챙기면 좋잖아. 유학원 관계자들과 미리 얼굴 익혀놓고 친해지면 학교에 대해 자잘한 것들도 메신저로 그때그때 상담할 수 있고. 일찍 준비해서 나쁠 건 없거든. 유학을 통한 이민에는 관심 있지만, 확실한 진로를 모르겠다고? 별 수확이 없는 것 같아도 이런 행사가 있다면 부지런히 다녀봐. 혹시 모르잖아, 정말 학비 감면 혜택과 함께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그 작은 일이 언제 어떻게 너의 발목을 잡을지는 아무도 몰라. 특히 ‘세컨 비자’를 돈 주고 사는 것, 영주권을 따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면 안 하는 게 좋아.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는데 호주에 더 있고 싶어졌다면 아마 세컨 비자에 대해 듣게 될 거야. 안전하다고, 걸린 사람이 없다고 하겠지. 하지만 농장이나 공장 등에서 3개월을 일한 사람에게 발급되는 세컨 비자는 비자 자체를 사고파는 게 아니고 농장 고유번호가 적힌 서류를 누군가가 쓴 후에 그걸 다시 판매하는 경우가 많거든. 그 서류가 얼마나 돌고 돌았는지도 모르고, 그걸 사용한 한 명만 걸려도 줄줄이 걸려. 아무리 안전하다고 해도 재수 없으면 걸릴 수도 있어. 누군가가 그 농장을, 연결해준 사람을, 비자를 사고파는 당사자를 신고하면 연루된 모든 사람들이 걸리기도 하고. 범법 행위에서 완벽히 안전한 것은 없어.
내 지인 중 한명은 워홀이 끝날 때쯤 안전하다고 소문난 곳에서 세컨 비자를 사서 잘 신청했어. 아무런 추가 서류도 요청하지 않았고, 바로 승인이 나서 운이 좋다 싶었지. 학생 비자도 잘 나와서 유학도 잘 마쳤어.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게 되었는데, 담당자가 세컨 비자를 받았을 때 농장에서 근무한 증거가 되는 서류, 예를 들면 주급을 받은 내역 같은 걸 제출하라고 한 거야. 무려 6년 전 일인데! 영주권은 네가 여태까지 호주에 있었던 시간 동안의 모든 비자와 세금 내역, 출입국 내역 등을 다시 한번 검토해 신중하게 주거든. 한번 발급하면 영구적인 효력이 있는 만큼 까다롭게 확인할 수밖에 없어. 그래서 그 애는 잠시 편하려고 구매한 세컨 비자 때문에 영주권 신청이 어려워졌고, 1,000만원 가까이 들인 영주권 신청 자체를 취소하고 다시 신청해야했어. 다음 담당자는 덜 까다롭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야.
이민할 생각이 있다면 범법을 저지르지 말고, 성실하게 호주 생활을 해두는 게 좋아. 서류만 봐도 아, 이 사람은 호주에 있는 동안 부지런히 학업과 경제 활동을 했구나, 성실한 젊은 인력이구나, 하는 인상을 받을 수 있도록 말이야. 실제로 내 주위에는 경고를 몇 번씩 받으면서 학교를 겨우 마쳤던 친구가 있어. 그 친구가 다음 학생 비자를 신청하려고 하자, ‘학업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는데 왜 더 학생 신분을 유지하려고 하는지 의심스럽다, 위장 취업의 우려가 있다’고 신청 자체를 거절당했어. 용돈 벌려고 한국에서 담배를 택배로 받아 몰래 교민들에게 장사하던 유학생의 비자가 취소되서 몇 년간 한 고생이 물거품이 되기도 했어. 무단횡단처럼 작은 경범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벌금을 안 내는 건 별로 좋지 않아. 여하튼 나쁜 짓은 하지 마. 그때는 별일 아닌 것 같아도 나중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아무도 몰라. 모든 고생이 물거품이 될 수 있어. 잠깐의 달콤한 유혹 때문에.
영어 시험 준비도 하루라도 먼저 시작하는 것이 좋고, 관심 있는 분야에서 한번쯤 알바를 해보는 것도 좋고, 네가 가고싶은 길을 걷고 있는 선배들을 만나서 멘토링을 받아봐도 좋고, 어학연수를 계획하고 있다면 유학원에 문의하여 청강을 해보는 것도 좋아. 그 1~2년 동안에 했던 어떤 일이 너의 호주 생활을 잘 풀리게 할지, 아니면 걸림돌이 될지는 아무도 몰라. 되도록 신중하고 현명하게 첫 단추를 끼웠으면 좋겠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워홀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과는 또 다르거든. 100미터 달리기처럼 단순하게, 최대한 재미있는 추억을 많이 쌓고 가면 되는 게 아니야. 우리에게 워홀은 그저 첫걸음일 뿐, 앞으로 가야 할 길이 구만리야. 잘 조절하고 관리해야 하는 거지.
워홀 비자는 제약이 없는, 굉장히 자유롭고 은혜로운 비자야. 나중에 학생이나 취업 비자로 바꾸고 나면 왜 워홀 때가 좋았는지 알게 될 걸. 따박따박 내야하는 학비나 비자비용도 없고, 일이나 공부도 자유로워 묶여 있다는 강박 없이 마음껏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니까 잘 이용하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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