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이 가야 할 길
어느 순간 '과거의 일들이 영화 필름처럼 머리를 스치듯 지나며' 이 순간을 위해 그 일들을 겪어 왔음을 직감적으로 느낄 때가 있다.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의식 혁명>이란 책에서 의식은 자동적으로 그것이 순간순간 최고라고 여기는 것을 선택하며 우리들 각자는 가장 정교한 인공지능기계보다 훨씬 앞선 컴퓨터를 소유하고 있는데 어느 때건 이용할 수 있는 그 컴퓨터는 바로 인간 마음 자체라고 했다.
하늘을 날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 ‘파일럿’이란 드라마를 본 후에 파일럿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 있었다. 고3을 앞두고 뒤늦게 찾은 이 꿈을 현실화시키고 싶어 공군사관학교에도 지원하려 했지만 성적이 좋지 않아 포기했다. 그리고 파일럿 이전의 오랜 꿈이었던 수학 선생님을 차선책으로 선택해 대학은 자연계열로 진학했다.
대학교 1학년 겨울 방학 때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미국에 가게 되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알 수 없는 인연이 이어졌다. 힘들 때 연락하라며 삼촌에게 전해 받은 분의 직업은 패러글라이딩 강사였고 아저씨의 도움으로 LA에 도착해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길에 만난 택시 기사 아저씨는 원래 파일럿이 직업인데 택시 일을 부업으로 한다고 했다.
‘댕. 댕. 댕.’
대학 생활의 즐거움에 취해 잠시 잊고 접혀 있었던 꿈이 다시 날개를 펴려고 꼼지락거렸다. 서울의 현실로 돌아온 나는 콩닥거렸던 심장의 움직임을 금세 잊어버렸고, 다시 대학 생활에 푹 빠져들었다. 그렇게 2년이 흘러 대학교 3학년이 되어 패러글라이딩 선생님인 아저씨에게 메일을 보냈다.
아저씨 미국 항공 학교에 가고 싶어요. 모아놓은 돈 없이 가도 공부하며 지낼 수 있을까요? 최소 얼마를 가지고 가야 할까요?
그리도 곧 아저씨의 답메일이 도착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메일을 열었다. 메일을 읽자 희비가 교차했다. 한편으론 희망이 생겼고, 또 한편으론 걱정이 앞섰다.
와서 제대로 공부를 하려면 최소 5천만 원은 가지고 오는 것이 좋습니다.
대학 3학년이던 내게 목표가 생겼다. ‘5천만 원. 그래, 빨리 취직해서 5천만 원을 모으자!’ 1년 정도는 휴학해 주는 것이 어느새 당연한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선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5천만 원을 모아서 유학을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학과 공부를 제외한 다른 모든 활동에 열심이었던 내 졸업성적은 흔히 대기업에서 요구하는 커트라인인 성적 3.5에 미치지 못했다. 기본 요구 조건에서 이미 불합격이라 이력서를 아무리 내도 갈만한 곳이 별로 없었다.
대학 졸업 후 아무리 해도 서류도 통과하지 못하던 어느 날 푸르덴셜 생명의 자회사인 지브롤터 마케팅 컴퍼니에서 '금융전문가'를 뽑겠다는 공고를 보았다. 일반 직장생활을 어느 정도 (최소 몇 년 이상) 한 사람만 뽑던 푸르덴셜 생명과 달리 지브롤터 마케팅은 대학을 갓 졸업한 초년생을 뽑기 위해 만들어졌다.
입사 첫 번째 면접에서 지점장님이 내게 물었다.
안 뽑히면 어떻게 할 건가요?
매일 면접관님 꿈에 나타나서 괴롭힐 겁니다.
정말 진심이었다. 매일 꿈에 나타나 괴롭힐 수 있을 정도로 절박한 심정이었다. 그리고 첫 직장 생활을 푸르덴셜 생명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지브롤터 마케팅이라는 푸르덴셜 생명의 자회사는 입사하고 얼마 후에 회사가 사라졌다.)
2012년 더운 여름의 어느 날 합정역 근처에 있는 물고기 카페에서 H 언니를 만났다. 살롱. 9 오픈 멤버로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았던 그 날이 생생하다.
신치야, 같이 하자!
이 말을 듣자마자 짧게는 한 달 길게는 5달 정도 다닌 회사와 부족한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주말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프랜차이즈 카페 알바까지 지난 1년 반 동안 일했던 곳들과 방황하는 동안 했던 여러 가지 활동들이 떠올랐다.
5개월간 일하다가 더 이상 월급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나오게 된 벤처 기업,
3개월간 다녔던 라임을 수입해 유통한 라임 팩토리,
8월 이탈리아 여행 후 한 달 반 동안의 백수생활,
4개월 계약직으로 들어갔다 난생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비서 일까지 해보고, 결국 5개월 만에 뛰쳐나온 공기업,
한 달 반 동안 함께 했던 아티스트 웨이.
영업을 돕기로 했다가 결국 흐지부지되어 일을 하지 않게 된 직접 로스팅한 원두를 판매하는 노란 코끼리.
그리고 밥벌이가 되지는 못했지만, 여러 가지 프로젝트들을 하며 즐거운 실험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준 내가 만든 회사 '실험하는 아이디어 컴퍼니'
나처럼 우울의 늪에 빠져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팟캐스트 방송 <정신건강 회복 프로젝트, 성철스님 불탄 법어 독송>
‘독립해서 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나 돈이 없어 시작하게 된 무모한 도전 <독립자금 마련을 위한 소셜 펀딩 프로젝트>
"직업, 연봉, 집안 등 여러 가지 조건들이 아닌 '그 사람'만 보고 사랑할 사람을 만날 수는 없을까?"를 실험해 보기 위해 해 본 <러브 매칭 프로젝트>
참 다양한 활동을 했다. 이 순간을 위해 지금까지 이런 다양하게 했던 것인가. H언니에게 살롱. 9 오픈 멤버 제안을 받았을 때 두 가지에서 운명이라 느꼈다.
하나는 '카페'라는 공간의 동시성이었다. 요리를 하는 것도, 맛있는 음식들을 찾아다니며 먹는 것에도 전혀 관심이 없던 내가 친한 선배의 지인이 오픈한 카페에서 우연히 카페 알바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살롱 9의 오픈 준비 기간과 주말 카페 알바를 하고 있는 시기가 맞물려 살롱. 9의 카페 메뉴 등을 정하는데 일하던 카페 매니저에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또 다른 하나는 '실험 공간'이 생겼다는 점이다. 그동안 혼자서 개인적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실험을 했는데 이제 공간이 생기면 더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살롱. 9'의 제안을 받았던 2012년 7월 홍대의 물고기 카페에서 나는 내가 '운명의 길 위에 서 있음'을 처음으로 느껴보았고 무척 설레었다.
살롱. 9를 그만둘 때쯤 다음 일자리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원서를 내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이었다. 기획을 주된 업무로 할 수 있으면 가장 좋고, 다른 업무를 하게 된다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게 찾다가 면접까지 보게 된 세 곳이 있다.
서울문화재단.
일상예술 창작센터.
개인들 간의 상거래 장터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헬로마켓'
이때 즈음 명상요가 지도자인 짝꿍이 소그룹으로 요가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요가 수업을 개인적으로 받고 싶어 하는 지인이 있어 같이 찾아가게 된 홍대입구역 근처의 '어슬렁 정거장 카페'. 한국 여성 민우회에서 10년 넘게 일해온 분들이 나와서 만든 그리다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카페였다. 여성들의 역량강화를 위한 여러 프로그램, 교육, 상담 등을 진행하기 위해 그리다 협동조합을 만들었고, 어슬렁 정거장 카페는 이 협동조합에서 기획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공간이었다. 2014년 1월에 오픈해 카페를 안정시키는 몇 달간 공간을 만든 이들의 머릿속에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할 여력이 없는 상태였고 그때 마침 내가 그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마침 그리다에서는 기획자가 필요했고, 같이 일을 해 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이력서를 보내고 살롱. 9를 정리하기 3일 전, 면접을 보았다. 전날 다른 곳에 이력서를 보낸 상황이었지만 그리다 면접을 보는 자리에서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일주일의 쉬는 시간을 가진 뒤에 그리다 협동조합의 어슬렁 정거장으로 출근하기로 했다.
설렘과 약간의 두려움으로 출근을 했더니 내가 해야 할 일들이 꽤 많았다. 그리다 협동조합의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은 '뭐라도 좋으니 무엇이든 기획해서, 한 사람이라도 더 어슬렁 정거장 카페를 찾게 하자'는 것이었다. 둘째 날부터 시작된 기획안 작성과 회의. 홈페이지도 무언가 손 볼 데가 많았으나 홈페이지 개발자와 연락이 두절된 상태라고 했다. 홈페이지 관리자 로그인 페이지를 열었더니, 다행히 살롱. 9에서 스스로 고용하는 자들 파티를 기획하며 배웠던 워드 프레스를 이용해 만든 홈페이지였다. 초보자 정도만 돼도 몇 가지는 수정할 수가 있었다. 하루 종일 홈페이지를 바꾸느라 이것저것 클릭하다가 문득 '아, 내가 <스스로 고용하는 자들 프로필 전시>를 하기 위해 워드프레스를 배웠는데, 결국 여기에서 쓰는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뭐, 어찌 됐든. 왠지 이번에도 인공지능을 넘어서는 컴퓨터인 마음이 시키는대로 최고의 선택을 하며 내가 가야 하는 길로 잘 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