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퇴사하던 날

by 라프

# 다른 사람들이 힘들다고 할 때는 그러려니 했다

늘 한결같은 페이스로 감정의 동요가 크지 않은 회사 동료가 마감을 며칠 남겨두고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다.

과장님, 우리 마감 끝나고 맥주 한잔 해요.”

평소에 워낙 힘든 내색도 하지 않고, 감정 기복도 없는 분이라 직감적으로 ‘요즘 많이 힘든가 보다’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감 후 우리는 만났다. 다양한 주제의 대화가 이어졌지만 그중에 서로 가장 공감했던 점은 지금은 그만둔 수많은 팀원들이 그만두기 전에 힘들어했던 점에 있어서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들이 왜 그렇게 힘들어하는지 당시에는 몰랐으나 그들과 같은 상황이 되고 보니 얼마나 힘들었을지 비로소 이해가 된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영업팀 직원이 든든(?)하게 자기 자리를 버티고 있을 때 내가 무언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때마다 무척 곤란한 표정을 짓던 그분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막상 그 업무를 맡고 보니 일이 하나 추가됨에 따라 늘어나는 일을 확인하니 늘 반대하던 그분의 마음이 백번 공감이 되었다.


무엇보다 퇴사를 앞둔 여러 직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다는 점을 많이 얘기했는데 사람은 없고 해야 할 일은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서 창의적인 생각이나 행동을 해낼 수 있는 시간적, 마음적 여유가 사라지고 점점 팍팍 일상이 되어가는 것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 같다.


#바뀔 줄 알았지

무언가를 함께 해 나가면서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은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이런 변화를 기대하다가 결국 떠나기로 결정한 이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죠.

지금 내 마음이 딱 이런 마음이다. 처음에 한두 번은 "이러이러하니 저러저러하게 바꿔보시죠.”라고 얘기하지만 얘기해도 변하지 않고 같은 상황만 되풀이되니 그제야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뿐이었다.

나가거나, 내 마음을 바꿔 먹거나.


술자리를 함께 한 직장 동료도 세 사람이 팀원일 때는 일이 각자의 강점에 맞추어 적절하게 분배되어서 할만했는데 두 명이 셋이서 하던 일을 하게 되지 시간과 마감에 쫓기고 야근은 늘어서 회사 일을 하는 시간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더욱 괴로운 건 이런 힘든 상황이 변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


그래도 회사에 애정이 남은 우리 두 사람은 회사가 잘됐으면 좋겠다는 것과 성장을 앞둔 과도기에 있는 현 상태에서 조금만 더 잘하면 잘될 것 같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2차로 옮긴 맥주집에서 마지막 맥주 한 잔에 버터 바른 먹태를 안주로 씹으며 그동안 쌓이기만 했던 스트레스를 조금은 날려버렸다.


# 퇴사 한 달 전

퇴사에 대한 열망이 커지자, 퇴사 후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며 먹고살아야 할지 불현듯 떠올랐다. 작년 이맘때쯤 회사 일로 지인과 미팅을 했는데 당시에 지인을 만나게 됐는데 기존에 다니던 회사에서 스마트 스토어를 오픈하고 운영하는 일을 교육하면서 본인의 스토어도 오픈했는데 아예 퇴사해 본격적으로 스토어만 운영한다고 했다. 그때 나는 당장 회사를 나올 생각은 없었지만 이렇게 말했다.

나중에 좀 안정되면 저도 알려주세요~!


퇴사의 절박함이 밀려오자 작년 그때 그 순간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리고 저녁 짝꿍과 함께 스피커폰을 켜 놓고 지인의 남편에게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수익률은 어떻게 되나요?”

“3개월 정도 하면 순이익은요?”

“광고는 어떻게 해요?”


광고 없이 3개월 정도 하면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받는 월급 정도는 벌 수 있다고 해서 짝꿍과 나는 3개월 뒤 퇴사를 목표로 스토어를 운영해 보기로 결정했다. 스토어가 안정되는 시기인 3개월간은 짝꿍이 스토어를 맡아서 하고, 안정적인 수익이 나오는 시점에 퇴사하기로 했으나, 실제 교육을 받기 시작해보니 ‘광고 없이’ 스토어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짝꿍도 하는 일이 있어서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 결국 ‘스토어를 운영하려면 회사를 그만둬야겠구나.’하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12월 정도로 예상했던 퇴사 시기가 10월로 당겨졌고, 9월 초에 부장님에게 퇴사하겠다고 어렵게 말씀을 드렸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편집장님은 쿨하게 퇴사 결정을 받아들여 주셨고, 다행히 새로운 신입사원이 들어와 인수인계는 나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 퇴사를 앞두니 왠지 아쉬워지는 것들

어쩌다 보니 퇴사 시점과 이사할 시점이 맞물려 버렸다. 난생처음 정규직으로 근무하게 된 이 회사에 있으면서 월세로만 살던 내가 처음으로 전세자금 대출을 받았다. 만약 이사를 하게 되면 과연 전세자금 대출을 다시 받을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회사를 그만둔 사람들이 하나 같이 얘기하는 게 회사 그만두면 대출받기 힘들다고 하던데 말이다.


매월 월급날이 되면 월급은 스치듯 지나갈 뿐이었지만 그래도 월급이 주는 안정감이 꽤 컸던 것 같다. 3년간 일해서 받게 될 퇴직금으로 스토어의 안정된 운영이 될 때까지 3개월 혹은 그 이상을 잘 버텨야 한다. 매일 아침 일찍 눈을 뜨고 9시까지 출근을 하고 6시까지 일을 하는 반복적인 직장인의 일상. 퇴사해야겠다는 생각이 커질수록 ‘내가 이렇게만 일한다면 나가서도 잘 살 수 있을 텐데’였다. 어디서든 직장인처럼 일한다면 뭘 해도 굶어 죽진 않겠어.라고 말이다. 직장인처럼 부지런히 일하고 자영업자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사업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어느새 나를 찾아왔다.


#퇴사하는 날

근무 마지막 날 사무실에 가장 먼저 도착해서 문을 열고, 환기를 시켰다. 발열체크를 하고 책상에 앉아 마지막 출근 체크를 했다. 오전 아홉 시 반, 퇴사 후에도 계속 연락해 올 것 같은 불길한 마음에 후임이 날짜별로 해야 할 일들을 엑셀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 달 단위로 돌아가는 업무를 1일부터 말일까지 정리하다 보니 오전 시간이 다 가 버렸다. 직원들과 마지막 점심 식사를 하고 사무실로 돌아와 인수인계서와 사직서를 서류 봉투에 넣고 마침 오늘 발행된 따끈따끈한 신간을 카트에 실어 신입사원과 함께 본사로 향했다. 부서별로 책을 나눠 드리고 사직서와 인수인계서가 담긴 봉투를 전달하고 담당 재경팀 직원의 마지막 배웅을 받으며 본사에서 나왔다. 오후 3시. 창간호부터 최신호까지 재고를 모르는 신입사원을 위해 시간이 있는 직원들을 총동원해 재고 파악을 시작했다. 4명이 했더니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재고 파악이 끝났다. 오후 4시.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던 개인정보와 불필요한 파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퇴근 30분 전, 원래 내가 맡고 있던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포스팅하는 법을 몇몇 분들에게 알려 드렸다. 퇴근 시간+1시간, 저녁 7시. 퇴근하려고 가방을 멘 채로 부장님과 내 자리에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할지 얘기했다. 퇴사하는 날, 유독 하루가 길게 느껴졌다.


# 퇴사 선물이 도착했다

3년 2개월간의 시간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서류상으로는 퇴사까지 4일 정도 남아 있어 그런지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함께 일했던 동료가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선물을 보내 주었다.

그제야 '아, 이제 퇴사하는구나'하고 조금 실감이 났다.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에 그만 울컥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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