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뿐이던 영업팀 사원의 빈자리를 새로운 직원으로 채우고 내가 그 업무를 대신하지 않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실패하고 모든 인수인계를 받게 되었다. 월간지다 보니 크고 작은 단위로 보내야 하는 발송 리스트, 그걸 바탕으로 만들어서 보고해야 하는 구독자 리스트, 세금계산서 발행처, 매출 관련 보고 자료 등 뿔뿔이 흩어져 있는 각기 다른 엑셀 파일이 수없이 많았다. 나보다 한 달 먼저 입사한 영업팀 담당자가 인수인계받을 때만 해도 지면 광고만 관리하면 됐는데 내가 입사하게 되면서 온라인 쪽 채널이 늘어났고, 그에 따라 (버는 돈은 얼마 안 되지만) 관리해야 하는 업체도 많아졌다. 자잘하게 신경 써야 하는 곳들이 많아진 것이다.
그제야 내가 그동안 새로운 제안을 할 때마다 퇴사한 이 분이 왜 그렇게 싫어했는지 이해가 된다. 한 달 광고 하나에 비하면 푼돈 정도인데 일 하나가 늘어나면 거기에 써야 하는 시간은 매출금액과 상관없이 비슷했던 것이다. 물론 그에 따라 매달 본사에 보고해야 하는 자료를 만드는 시간 역시 늘어났다. 새삼스럽지만 영업팀 사원이 일할 때 무척 힘들었겠구나 싶었다.
광고주 전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엑셀 파일을 만드는 데 며칠, 기존의 영업팀 업무 파일을 공유폴더에 옮기고 새로운 형태로 분류하고 정리하는 데 또 며칠, 그리고 중간중간에 광고주의 요청으로 세금계산서, 거래명세서 발행하는 등의 업무를 하다 보니 일주일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결국 내가 기존에 하던 업무를 못 한지도 일주일이 되었다.
기존에 면접을 본 사람 중에 신입사원을 뽑았다. 처음에는 아주 의욕적이었다. 하는 일마다 재미있어했고, 사무실 안에서 무언가 힘쓸 일이 생기면 나서서 일을 했다. 영업팀 업무도 한 달만에 많이 익숙해진 것 같았다. 중간에 궁금한 게 있으면 내게 직접 물어보지 않고 기존에 인수인계 파일에서 검색해 일을 척척 처리해 냈다. 그런 신입사원을 보고 부장님은 ‘눈치가 있고, 차분하다’며 좋아하셨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실수가 잦아지고 시키는 업무를 종종 잊어버렸다. 결국 신입사원은 한 달만에 퇴사를 했고 나의 회사에서의 업무 역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내 업무만 할 때는 주로 알아서 일을 하는 편이었다. 부장님 역시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매일 물어보지 않았고, 가끔 내가 급하게 처리해줬으면 하는 일이 있거나 영업팀을 대신해 제안서를 만들라고 시키는 일 외에는 대부분의 업무를 스스로 처리했다. 그런데 영업팀 업무를 맡았더니 부장님이 건건이 시키는 일이 많았고, 본사 재경팀과 소통을 하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가 버렸다.
숨 막히는 속도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 운이 좋게 앉아 올 수 있게 되었다. 하루 종일 컴퓨터 모니터에 집중해 쉴 새 없이 업무를 처리해 지친 눈을 감았다. 세상을 바라보던 것을 멈추고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따라 쉬어 주었다. 그렇게 쉬다 보니 이 질문이 나를 찾아왔다.
이 일,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점심시간을 제외한 8시간의 근무시간 중에 오전에 3번, 오후에 3번 총 6번은 눈을 감고 숨을 쉬며 숫자를 100까지 세거나 잠시 업무를 멈추고 한 동작 요가로 쉬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면서 실천해 왔는데 영업팀 업무를 맡게 되면서 하루 6번은커녕 3번도 제대로 쉬는 시간을 가지기가 힘들어졌다. 중간에 쉬는 시간이 줄수록 퇴근길은 더욱 지쳐갔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면 정말 방전되어 뻗어 버렸다.
회사를 다닌 시간이 꽉 채운 3년을 지나 4년 차에 접어들었다. 퇴사를 생각하자 ‘꽤 오래 다녔네’라는 생각이 든다. 정신과 의사 문요한의 신작 <오티움>에서 미국의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삶이 최고 효율로 발휘되는 상태를 가리켜 ‘몰입’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그가 40여 년간 몰입에 대해 연구한 바로는 행복에도 등급이 있는데 가장 낮은 등급은 노력 없이 순수한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것이고 조금 더 상위의 행복감은 풍경이 좋은 곳을 바라보듯 노력하지만 그 환경이 사라지면 만족감도 사라지는 수동적인 행복이다. 이보다 더 높은 행복감은 노동이 끝난 후의 휴식이나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끼는 행복이고 가장 상위의 행복감은 몰입을 통한 성취의 경험이라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일에서 몰입을 느낀 적이 얼마나 있는지 묻는다. 자율성이나 전문성이 잘 보장되는 직업이나 근무 환경이 아니라면 사실 일에서 몰입을 느끼기란 쉽지 않으며 아무런 권한이나 자율성도 없이 시키는 일만을 해야 하거나,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밥 먹듯이 되풀이해야 하는 경우라면 정말 답이 없다고 한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일에서의 몰입이란 의도와 상관없이 자칫 자기 착취로 이어지기 쉽다고 했다.
갑자기 바뀌어 버린 업무 환경에서 나는 왜 이렇게 퇴사에 대한 욕구가 커졌는가를 생각하다가 <오티움>이란 책에서 그 답을 발견했다. 자율성이 매우 보장되는 업무 환경에서 일을 하면서 몰입감과 성취감을 동시에 느꼈기 때문에 3년이란 시간을 큰 무리 없이, 어떻게 보면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완전 정반대의 상황이 되고 시키는 업무와 반복적인 단순 업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매일매일 퇴사에 대한 열망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