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상하는 마케터 Oct 20. 2022

내 심장이 반응하지 않았다

2020년


첫사랑은 왜 오래 잊지 못할까. 왜 첫사랑에 대한 아쉬움은 20년이 지나도 내 마음속 깊이 남아 있을까?

첫사랑을 만나고 맞이한 겨울 방학. 친구들과 스키장에 갔다. 그리고 스키장에서 첫사랑은 친구들과 '짠'하고 내 앞에 나타났다. 무릇 연인이라면 얼굴을 본 순간 너무 좋아해야 했다. 아님 여기까지 뭐하러 왔냐고 화라도 내거나… 하지만 우는 것 외에 감정 표현을 해 본 적 없는 나는 정말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친구들이 내게 말했다.


"야, 너는 무슨 애인이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표정이 그게 뭐냐. 아무 반응이 없어서 우리가 더 민망하더라. 불쌍한 ㅇㅇ이"


친구들도 그 순간만큼 첫사랑 편을 들어주었다. 깜짝 이벤트를 준비해도 시큰둥, 좋은 곳에 가도 시큰둥했다. 심지어 전화 통화를 할 때는 그 아이가 얘기하다 멈추면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다가 전화를 끊곤 했다.


좋아해서 사귀었다. 하지만 얼마나 좋아하는지 나도 내 마음을 잘 몰랐다. 심장이 꽁꽁 얼어붙어 있어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헤어지자는 말을 듣던 그 순간 내가 그 아이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다시는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미쳐버릴 것 같았고, 숨이 막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언제나 내 편이 되어준 그 아이가 더 이상 옆에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얼마나 사랑하는지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그리고 20년간 첫사랑을 잊지 못했다.


첫사랑에게는 늘 '미안'했다. 마음껏 사랑해주지 못한 미안함, 마음껏 고마워해 주지 못한 미안함, 마음껏 표현해주지 못한 미안함, 마음껏 사랑해준 그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 미안함. 온통 미안함 뿐이었다.


오랜 시간 잊고 지내다가 뭐하고 사는지 궁금해져 SNS를 뒤졌다. 함께 아는 친구의 계정을 따라가니 첫사랑이 있었다. 일상을 훔쳐보기 시작했다. 그 아이의 계정에 올라온 사진을 보기만 해도 여전히 가슴이 뛰었다.

훔쳐보던 어느 날 결혼 소식이 올라왔다. 메시지로 축하 인사를 전했다.


"ㅇㅇ아 결혼 축하한다~ 행복하게 잘 살자~"


떨리는 마음으로 메시지를 보냈고, 몇 달 후에 답장이 도착했다.


"야 이제 봤다. ㅠ-ㅠ 아이고.. 너무 늦게 답장하네^^ 고맙고 니도 어서 좋은 소식 들려주고! 행복하자~" 

"ㅋㅋ 그려. 행복하게 잘 살자. 건강하고~!^^"


덤덤하게 보냈지만, 사실 내 가슴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그리고 1년 4개월이 지난 어제. SNS 메시지가 도착해 열었더니 또다시 첫사랑이었다.


"시집가라. ㅋㅋ 생각 없나?" 

"ㅋㅋㅋㅋ 응 생각 없다."


메시지를 보고 바로 답장을 했는데, 뭔가 이상했다. 내 심장이 아무 반응을 하고 있지 않았다. 쿵쾅거리지도, 떨리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메시지를 읽고, 또 답장을 보냈다.

비로소.. 첫사랑과의 진정한 이별의 시간이 왔나 보다.

안녕, 나의 첫사랑.

이전 23화 첫사랑을 닮은 투덜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