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의 대화

by 라프

엄마와의 대화가 길어지면 항상 짜증으로 끝난다.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이번 주말도 역시 그렇게 끝나 버렸다. 결국 엄마는 내게

넌 왜 그렇게 나한테 짜증 내면서 말해?


라고 얘기하고, 나는


'엄마는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라고 얼굴 표정으로 말하며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카페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탄 나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세상에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많은 짜증과 화를 내는 사람은 바로 엄마다. 보험회사에서 영업을 할 때 사람 만나는 것이 힘들어서 심리상담을 받게 되었을 때도 이상하게 지나 얘기만 나오면 눈물이 흘렀다. 상담을 할 때도 느꼈지만, 시간이 흘러도 계속 같은 패턴의 대화가 반복됐다. 이상하게 엄마와 대화를 하고 있으면, 내 마음속에 있던 분노가 끓어오른다. 나름대로 참아 보지만, 오늘처럼 대화가 길어지면 분노 게이지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황까지 올라가고 결국 폭발한다. 선미는 그런 상황이 10번이라면 9번은 집 밖으로 뛰쳐나와 대화의 흐름을 끊어버렸다. 카페로 도망친 나는 앉아서 도대체 오늘 지나와의 대화가 어디서부터 시작이었고 어느 포인트에서 또 분노가 끓기 시작했는지 생각했다.


오늘 아침 청소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집 전체를 마음먹고 치우고 싶었다. 버리고 싶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버리고 싶은 것들의 대부분은 지나 소유의 물건들이라 괜히 선미가 손을 댔다가는 지나에게 욕먹을 것이 뻔했다. 일단 선미는 본인의 방부터 치우기로 마음먹었다. 작은 방의 붙박이 옷장에서 버릴 물건들을 골랐다. 그리고 거의 다 치워갈 무렵 이제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를 버리고 씻고, 나가려던 차였다. 새벽 테니스 레슨까지 끝낸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야?”

“나 집.”

“그래? 엄마 이제 집에 가려고 하는데, 너 또 나갈 거지?”


엄마와 나는 생활 패턴이 다르기 때문에 항상 엄마가 집에 들어올 시간쯤이 되면 슬슬 집에서 나갈 준비를 한다. 하지만 그런 내게 엄마는 늘 자신을 피해서 나간다고 얘기를 했다.


“어, 나 지금까지 내 방 청소하고 이제 씻고 나가려고.”

“그래? 엄마 지금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회 사서 갈 건데, 먹고 나가~”

“알았어. 그럼 빨리 와.”


남은 쓰레기를 버리러 나간 사이에 지나가 집에 들어왔다. 좁은 부엌 통로에 지나가 사온 까만 봉지들이 널려 있었다. 엄마는 얼마 전에 다 죽어버린 모종들을 버리고, 새로 사 온 모종들을 심고 있었다. 이번에는 잘 키우려고 그러나?라고 생각하며 선미는 지나가 모종을 심는 모습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새로 사 온 모종을 베란다고 옮긴 후 화장실에 남아 있는 죽은 모종들과 화분을 보며 엄마가 말한다.

“저 화분에도 새 모종 사서 다시 심어야겠다.”


순간 나는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또 산다고? 있는 거나 우선 잘 키우지??”


엄마는 알았다며, 한발 뺐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죽은 모종이 남긴 자리에 모종을 더 사와 심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잘 키울지는 의문이다. 모종 심기가 끝난 후, 지나는 수산시장에서 사 온 생선을 꺼내 회를 뜨기 시작한다. 언제부터인가 지나는 수산시장에서 회를 뜨는 데 드는 돈 5천 원이 아깝다며 날 생선을 사 와 집에서 직접 회를 뜨기 시작했다. 점점 회 뜨기 실력이 늘어가고 있지만, 원래 생선 비린내를 싫어하는 선미는 회 뜨는 동안 났던 생선 비린내를 맡고 도저히 회를 먹을 수가 없었다. 오늘도 역시 생선을 꺼내자마자 좁은 집에 생선 비린내가 마구 퍼지기 시작했다. 결국 엄마와 함께하는 저녁 식사에서 회를 한 조각 먹은 후 손도 대지 않았다. 그것이 엄마는 몹시 서운한 모양이다.


저녁식사시간부터 엄마와 나는 이렇게 기분이 상하기 시작했다.


짐을 싸서 나오려는데 엄마는 또 말했다.


어제 테니스 코치가 얘기한 거 기억하지? 자기가 잘 가르쳐줘도 어차피 받아들이는 사람이 자기 걸 어떻게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다르니까, 열심히 해서 잘 만들어봐.


어, 알았어. 내가 알아서 할게.


엄마와의 대화에서 내가 가장 많이 얘기하는 말 중에 하나가 바로


내가 알아서 할게

이다. 굳이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나, 나이 들어서도 꾸준히 하는 운동 하나쯤은 있는 것이 좋다는 엄마의 권유에 지난달부터 시작했다. 어찌 되었든 여기까지의 대화는 괜찮았다. 그런데,


그리고 테니스 레슨 받을 때, 너무 웃지 마. 수업받는 데 성의가 없어 보여.


아하………………..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또 짜증을 버럭 내며 말한다.


“엄마, 나 테니스 레슨 이번 달까지만 할게.”


웃는 것 하나까지 간섭하는 엄마와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수가 없었다. 또 무슨 말만 하면 테니스 레슨을 그만두겠다고 엄마를 협박(?)하는 내게 엄마 역시 화가 났다.




엄마와의 대화에서 내가 분노하는 부분이 도대체 어디인가? 생각해보면 이건 지금 생긴 문제가 아니라 어릴 적부터 계속 있었던 문제다. 내가 화를 났던 상황을 생각해보면


내게 엄마의 생각을 강요할 때,

나에 대해 마음대로 판단하고 해석한 것을 가감 없이 표현할 때


나는 분명 엄마와 다른 사람이고, 내가 하는 말과 행동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내게 확인하지도 않고, 지나 마음대로 판단하고 얘기하는 것이 어릴 때부터 참 싫었다. 어릴 적에 엄마란 존재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엄마가 화를 내고 혼을 내면 나는 무조건 ‘내가 잘못했지’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꾸짖음이 합당할 때가 많았지만 억울한 일이 있어도 굳이 변명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감정이 쌓여갔다. 어릴 적부터 엄마에 대해 품었던 불만을 대화로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하기보다 화와 짜증으로 표출했던 것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이어진 것이다. 매번 일방적으로 엄마에게 화를 내고 집을 뛰쳐나오면서 ‘그러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마셜 B. 로젠버그의 <비폭력 대화>란 책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우리 자신이 먼저 변하지 않으면 진정한 변화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모두는 먼저 다른 사람이 변하기를 기다린다.


내가 먼저 변하면 되는 것이다. 엄마와의 대화에서 화가 나면 ‘왜 화가 나는지’를 이야기하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엄마가 변하지 않고 있는데, 내가 변한다고 되겠어?’라는 생각도 공존한다. 그래서 늘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나의 이야기>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란 생각이 든다. 엄마도 나름대로 화가 많이 나겠지. 많이 참고 있을 것이다. 엄마가 내게 늘 얘기하는 것처럼. 엄마는 내게 자주 이렇게 묻는다.


“너는 왜 가족 빼고 다른 모든 사람들에겐 그렇게 친절한 거니?”


이것이 바로 엄마가 내게 가지는 불만의 핵심이 아닐까. ‘거리 두기’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거리를 좀 둔다면, 다른 이들에게 하는 것처럼 가족에게도 친절해질 수 있을까?


<엄마의 이야기>

신치는 늘 남들과 그렇게 하하호호 웃으면서 얘기하는데 나랑 대화를 시작하면 금세 짜증 섞인 말투로 변해버린다. 우리 딸 맛있는 거 먹이고 싶어 새벽부터 애써서 사 온 음식에 손도 안 대고, 오래간만에 딸과 대화를 좀 할라치면 어느새 짐을 싸고 나갈 준비를 한다. 여동생과 남동생도 다 나가 있어서 그나마 남은 가족은 선미와 나 둘 뿐인데 만나기면 하면 짜증뿐이니 나도 힘들다.


오늘은 짜증 내지 않게 내가 잘해야 하지 생각하지만 늘 선미와의 대화는 짜증으로 끝나게 되는 것 같다.


우리 딸과 다정하게 하하호호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날이 과연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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