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쯤이었던 것 같다. 그날도 엄마와 아빠는 엄청나게 싸웠다. 엄마는 큰 여행 가방을 꺼내 짐을 싸기 시작했고, 나와 동생들에게 물었다.
"너 누구랑 살 거야? 엄마야, 아빠야?"
"엄마"
"그럼 빨리 옷 입어."
동생들과 나는 울면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짐을 싼 엄마와 집에서 나와 기차역으로 갔다. 기차역에 가면 마구 설레어야 하는데 나는 불안했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거지? 이제 학교에는 못 가는 건가? 친구들도 못 보고?'
우리 넷은 기차를 타고 몇 시간을 갔다. 몇 시간 만에 도착한 곳은 목포였다. 그리고 엄마는 우리를 데리고 목포의 한 고아원으로 갔다. 엄마는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저는 여기 없을 거예요. 아이들만이라도 여기에서 지낼 수는 없을까요?"
"어머니, 부모님이 있는 아이들은 여기에서 지낼 수가 없어요. 시간이 늦었으니 오늘 밤은 여기에서 아이들과 주무시고 가세요."
우리가 도착하자 고아원에 있던 아이들은 새로 온 친구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대부분은 가까이 다가가진 못하고 멀찌감치 떨어져 보았는데,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 친구가 가까이 다가왔다.
"안녕, 난 소이라고 해. 넌 이름이 뭐야?"
"안녕. 난 신치."
"몇 살이야?"
"아홉 살."
"우와, 나도 아홉 살! 우리 친구다~"
소이와 나는 짧은 밤 사이에 친해졌다. 다음 날 아침밥을 먹고 엄마와 우리는 다시 떠날 채비를 했다. 소이는 또래의 친구인 내가 떠나는 게 몹시 서운했다. 나도 친구가 된 소이와 헤어지는 게 싫었다.
"신치야, 대구 가서도 꼭 연락해. 편지 써~"
"알았어. 소이야! 꼭 편지할게. 잘 지내~ "
엄마와 함께 어제 도착했던 목포역으로 갔고 하루 만에 아빠가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신치는 친구들이 있는 학교로 돌아 갔다. 얼마 후, 목포에서 만난 소이의 편지가 도착했다. 바쁜 일상 속에 있는 신치는
'답장 보내줘야지.'
생각하고선, 목표에서 만난 소이의 존재를 금세 잊어버렸다.
성인이 된 후 나는 문득문득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목포에 갔던 그 날의 감정이 떠오른다. 아빠와 다시 함께 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대한 좋으면서도 불안한 복잡 미묘한 감정과 엄마와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운 마음 그리고 새로 만난 친구와의 설렘이었다. 그리고 추억과 감정의 마지막에는 늘 이름도 잊어버린 그 친구에 대한 미안함으로 가슴 한 켠이 먹먹해졌다.
어떤 마음으로 내게 편지를 썼을지,
그리고 매일매일 우체통을 바라보며 나의 답장을 기다렸을지.
그 친구에게 또 한 번 큰 상처를 준 것이 참으로 미안했다. 소이는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혹시나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녀에게 이 소식이 가닿는다면 그때 정말 미안했다고 꼭 전하고 싶다.
안녕, 소이야. 잘 지내고 있니? 그 때 답장하지 못해서,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