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단둘이 처음 떠난 여행은 내가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엄마의 생일 즈음에 선물한 제주여행이었다. 엄마가 가장 좋아했(다고 기억하) 던 장면은 밤에 호텔 방 테라스에서 보았던 용의 전설을 테마로 했던 화산 분수 쇼였다. 회사 임직원 특가로 예약한 호텔에서 좋은 위치의 방을 배정해 주어 마치 우리만을 위한 쇼를 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제주에 살고 있던 엄마의 절친을 만나 함께 몇몇 관광지를 돌아다녔다. 나는 천지연 폭포가 매우 인상적이었고, 무엇보다 제주 토박이인 아줌마의 소개로 갔던 식당에서 먹은 전복죽이 아주 일품이었다.
첫 여행 이후로 거의 10년 이상 엄마와 둘이 여행을 떠난 적이 거의 없었다. 만나서 눈만 마주치면 가시 돋친 말을 하는 사이가 되어 버려 여행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동생들마저 다 해외로 떠나고 지나와 선미가 유일하게 함께 오랜 시간 있을 때는 추석이나 설 명절이었다. 서울에서만 명절을 보낼 때는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았고, 언제부턴가 대구에 일찍 가게 되면서 명절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떠나던 명절 여행의 어느 날 기차 안에서 엄마가 말했다.
"신치야, 엄마 소원이 있어."
"뭔데? 말해봐."
"나는 죽으면 제사 안 지내도 돼."
"왜?"
"대신 나 살아 있을 때 한 달에 한 번씩 같이 여행 가자."
"여행???"
"그래. 난 여행 다니는 게 좋아. 너는 그렇게 많은 시간 중에 엄마한테 그 정도도 투자 못하냐?"
"음.. 엄마. 한 달에 한 번은 힘들 것 같고, 두 달에 한 번씩 가자 그럼."
"그래, 좋아!"
엄마의 살아생전 여행 제안에 나는 오케이를 했고, 말이 나온 두 달 뒤에 전주로 두 번째 여행을 떠났다.
전주 한옥 마을에 가서 한 바퀴 돌면서 구경을 한 뒤에 맛있어 보이는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전주 모주도 함께 하면서.
마침 전주 국제 영화제 기간이라 선미는 지나의 손을 잡고 이십여분 거리에 있는 국제영화제 거리로 갔다. 매표소로 갔더니 바로 볼 수 있는 영화가 많지 않았다. 그중 가능한 미국 정부가 멕시코 국경에 설치하려는 난민 방지 장벽을 소재로 한 정희도·이세영 감독의 ‘침묵의 장벽’이란 다큐멘터리를 봤다. 극장만 가면 계속 꾸벅꾸벅 주무시는 엄마인데 이날 따라 아주 말똥말똥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보았다. 끝나고 내가 물었다.
"엄마 재미있었어?"
"응 너무 재미있었어."
"뭐가 재미있었는데?"
"아니. 니 동생이 외국에 있으니까 이 얘기가 남의 얘기 같지가 않더라고. 옛날 너희 어릴 때 미국 가서 살려고 했던 때도 생각나고. 그때 갔으면 우리가 난민이 됐을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당일치기 엄마와 나의 단둘이 여행이 끝났다.
두 달마다 한 번씩 꼭 가자고 약속했는데, 코로나가 오는 바람에 잠시(?) 중단되었다. 다음에는 어디로 갈까? 여행이 거듭될수록 엄마와의 대화가 많아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