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파이어족의 소비 생활
물가가 무섭게 올랐다. 점심값이 얼마에 육박했다고, 또 4인 가족 생활비는 얼마나 올랐는지 각종 매체에서 떠들어 주니 사실이긴 하지만 마음이 더 옥죄어 온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을 계속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사실 돈이 많이 들지 않는 삶도 가능하다. 은퇴 후 매달 평균 백만 원 조금 넘는 돈이 고정생활비로 나가고 있다. 물론 이따금씩 여행을 떠나는 비용은 별도이다.
부산의 투룸 구축아파트에서 동생과 함께 살아 매월 30만 원 정도를 월세와 관리비로 나눠 내고 있고, 인터넷과 핸드폰에 월 3만 원, 부모님 용돈으로 20만 원, 보험료가 5만 원 정도이다. 나머지는 식비인데, 가끔 외식을 나가거나 배달음식을 시키지만, 대부분은 제철 식재료를 사다가 직접 해서 먹으니 큰돈이 아니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와는 달리, 지역의 작은 마트나 채소가게에서는 제철 식재료를 아주 저렴하게 팔고 있다. 날을 잡아 마트에 가 거하게 장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지나다니며 보이는 저렴한 식재료를 사서 집에 있는 재료와 함께 요리한다. 이렇게 하니 남는 식재료도 줄어들고 몸도 편하다.
그러니까 은퇴 후 철저하게 가성비 있는 소비를 하고 있다는 것인데, 사실 이 가성비라는 것이 전혀 나쁜 것이 아니다. 물건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사이의 균형에 의해 정해진다. 그러니까 수요가 늘거나 공급이 줄어들면 가격이 오르는 것이다. 물론 물건을 생산하는데 들어가는 비용도 가격의 구성요소이기는 하지만, 저렴한 물건이 반드시 품질이 낮다는 의미는 아닌 것이다.
제철이라 많은 양이 생산되었지만, 소비가 따라주지 않은 농산물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이번에 무값이 금값이라면 다른 채소를 먹으면 되는 것이다. 과일도 마찬가지라 요즘은 자두와 복숭아를 매일 즐기고 있다. 이렇게 비싼 식재료는 보지 않고 가격이 저렴한 아이들을 골라가며 집고 있다. 누군가는 궁상이라 볼 수도 있지만, 나를 향해 두 팔을 활짝 펼친 것들을 기꺼이 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건 장바구니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도도하게 높은 벽을 쌓아 나를 밀어내는 각종 값비싼 아이들을 혼자 바라보며 상처받을 필요가 없다. 어디든 눈을 돌려보면, 나를 반기는 따뜻한 가성비의 세계가 있다.
책을 사는 비용이나 카페를 가는 비용이 부담스럽다면, 텀블러에 음료를 담아 근처 도서관에 간다. 그리고 이렇게 효율적으로 아낀 돈을 내가 좋아하는 곳에 쓴다. 저번주에는 여름을 맞아 다녀온, 루프탑에 수영장이 있는 호텔도 적당한 가격으로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비싸지 않지만 깨끗하고 기분 좋은 곳이었다. 이따금씩 떠나는 동남아도 나를 반겨주는 곳이다. 물론 저가 항공기를 타고 가성비 좋은 숙소에 묵는다.
이런 나의 삶의 질이 열악해 보인다면 그 의견도 틀린 것은 아니다. 열심히 번 돈을 나를 위해 쓰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 이니까. 다만, 그 가치를 남의 의견이나 유행으로 정하지 말고 스스로 정해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만의 풍요로운 세계는 조금씩 확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