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저렴한 주거의 형태, 아파트

구축 아파트에서 도시 전체를 내 집처럼 즐기기.

by 오늘의 바다 보다

한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자주 불린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닭장처럼 빽빽한 사각형의 집 안에서 핏줄처럼 연결된 관으로 물을 공급받고, 또 오수를 버리며 살아간다는 이 시선에는 우려와 비난이 섞여있다. 하지만 50년 가까운 긴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살아오고, 또 앞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주거 형태를 이제는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나 또한, 돼지를 키우는 시골 농장의 주택에서 어린 시절동안 잠깐 살다가, 대부분의 시절을 아파트에서 보냈다. 잠시 주택살이에 대한 열망에 들떴으나, 오래된 작은 주택을 샀다가 감당하지 못해 되팔아 버리고 다시 아파트에서의 안온한 삶을 꿈꾼다.


주택은 열효율이 나쁘다. 70년대에 지은 목조 한옥을 구매했더니, 오랜 시간 동안 조금씩 틀어진 나무의 빈 틈에서 찬 바람이 새어 나왔다. 아파트는 기밀성이 좋을 뿐만 아니라 다른 세대들로 둘러싸여 있으니 더 따뜻하다. 난방비뿐만이 아니다. 주택은 매년 수리할 곳이 생긴다. 여기저기 고장 나는 집을 직접 고칠 수 있는 능력자라 하더라도 수리를 위한 기계 기구를 장만해야 한다. 또한 집 주변에 생활에 필요한 필수 시설도 없고 버스도 자주 다니지 않으니 차는 필수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주택에서 텃밭을 일구며 작은 생활비로 소박하게 자급자족하는 것은 영화에 나오는 로망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가장 적은 돈으로 편하게 살 수 있는 거주의 형태는 사실 지방의 구축아파트이다. 월 50만 원 정도의 작은 돈으로도 따뜻하고 안전한 거주지를 제공해 준다. 특히 17-18평 정도의 30년 남짓 된 소형 구축 아파트는 전국 어디에나 있다. 모양과 구조가 엇비슷한 이 소형 구축아파트는 신축을 선호하는 세상에서 저렴한 가격에 주거공간을 제공해 주는 가성비 아파트이다. 나는 부산의 중앙에 위치한 구축아파트에서 월세 50만 원에 관리비 8만 원 정도를 내며 동생과 살고 있다.



사람들이 그토록 주택살이를 꿈꾸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대끼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진 한적함과 넓고 푸르른 나만의 공간 때문이 아닐까. 그 열망을 100프로 충족할 수는 없겠지만, 이 도시가 제공하는 수많은 공공시설들로 대신 충족해 보자. 도시 전체를 내 집처럼 즐기는 것이다.


서울 살이를 10년 정도하고 나서, 여기저기 한두 달 유랑하며 살아보다, 부산에 정착했다. 대도시인 부산도, 서울의 혼잡함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여유롭다. 지하철도, 사람들이 거니는 거리도, 어디를 보아도 사람이 붐비지 않아 쾌적하다. 아무리 한적함을 그리워한다 해도 극단적인 단절을 원하는 게 아니니 산골짜기 암자로 갈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마당. 요새는 아무리 작은 도시라도 구석구석에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다. 공원을 가까이에 두고 나의 개인 정원처럼 누려보자. 평일이나 오전시간대의 공원은 비교적 한적하다. 느긋하게 산책을 하고 이 나무아래의 벤치에서 조용히 앉아 사색에 빠진다. 내일은 저기 정자 아래에 누워 책을 읽어봐야지. 때가 되면 알아서 풀을 베어주고, 낙엽을 쓸고, 알록달록 예쁜 꽃나무를 심어주는 넓고 넓은 마당이라니. 최고의 복지 혜택이 아닐 수 없다.


좁은 구축아파트의 답답함도, 도서관을 내 집처럼 자주 다니며 어느 정도 해결했다. 요새는 새로 조성한 도서관이 참 많아, 넓고 아름다운 인테리어를 공짜로 누릴 수 있다. 맘에 드는 도서관 가까이에 둥지를 꾸리면, 어떨 때는 나만의 서재처럼, 또는 넓은 거실로 도서관을 사용할 수 있다. 한 도서관의 통창 앞의 소파에서 쏟아지는 햇볕을 맞으며 책을 읽다 보니 스르르 눈이 감긴다. 나는 이런 순간 진정으로 내 삶이 호사롭다 느낀다.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혼잡한 카페에 돈 들여 갈 필요가 없다.


아파트 기본적으로 주거공간을 공동구매하여 비용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집에 고장 난 곳이 있을 때, 전화 한 통으로 관리사무소 직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도 공동구매의 예시이다. 조금이라도 낡은 것을 누추하다 생각하는 요즘 사람들은 너도 나도 브랜드 신축 아파트의 편리한 생활환경만 바라본다. 그렇다면 서울처럼 부수고 재건축을 할 수도 없는 전국의 그 많은 오래된 아파트는 앞으로 어찌 되는 걸까. 튼튼한 콘크리트로 반듯하게 지어 놓은 아파트는 그 자체가 훌륭한 도화지라 내 취향에 맞는 가구와 조명만으로도 아늑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는 공간이다. 단지 내의 꽃과 나무들도 그 시절만큼 함께 나이 들어 계절마다 무성한 가지와 꽃을 뽐내는 정취가 있는 곳. 그곳은 당신을 언제나 환대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