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아니라 자본에 씨를 뿌려 일구는 자립에 대하여.
언제나 자급자족에 대한 얼마간의 열망을 가슴 한켠에 품고 살았다.
그것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모든 종류의 외부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예를 들면, 전 세계를 강타한 범유행 전염병인 코로나 바이러스.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이 바이러스는 삽시간에 모든 이의 삶을 속박하지 않았나. 현대사회에서는 태풍이나 가뭄 같은 천재지변보다 경제위기나 물가폭등과 같은 인재가 더 가까이에서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것 같다. 그러니 산속, 한적한 오두막에서 제 손으로 밭을 일구며, 먹고 잔다면 바깥세상에서 무슨 무슨 위기가 발생한다 해도 다른 나라 얘기처럼 무탈한 일상을 지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극단적으로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시골 구석까지 포탄이 날아오는 일은 없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막연히 꿈꾸던 자급자족의 낙원은 내 안의 한 마리 악마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없다. 그 악마의 이름은 게으름. 누울 기회를 호시탐탐 옅보며, 기회만 있으면 2-3분이라도 들어 눕는 나란 인간에게 새벽녘부터 해지기 전까지 성실하게 온몸을 쓰는 농경의 삶은 가당치가 않은 것이다. 여기에다, 나의 365일 종종거리며, 밭일에 매진해도 거둘 수 있는 열매는 내 비루한 체력만큼 작을 것이 분명하므로 효율성의 관점에서 이미 낙제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세상과 단 한올의 연결도 없이 아예 단절되어 버리는 삶은 존재할 수 없다. 지금껏 살아온 이 세상의 모든 점이 정말 다 싫었나? 내가 좋아하고, 나의 일상을 이따금 궁금해하는 모든 사람들 역시 이 사회의 일부분 아니던가.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아무도 모르는 동굴 속으로 깊숙이 들어갈 만큼 세상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러니, 나의 자급자족의 꿈은 허황된 꿈이고, 비겁한 도피수단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하여 막연한 상상에서 걸어 나와 깊은 산속이 아닌 도시에서 나만의 소박한 낙원을 조금씩 만들어 가고 있다. 경제학을 공부하고, 은행에서 10년 동안 일하며 자연스럽게 돈이라는 혈액으로 굴러가는 이 자본주의 생태계를 활용하는 법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나하나 나열하면 누구나 아는 당연한 것들이지만, 하나로 그러모으면 적당히 일하며 적당히 잘 살아가는 삶의 예시가 될 수 있겠다.
이러한 나의 삶을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소박한 자립자족이라 말하고 싶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먹거리를 직접 생산해내지는 않지만, 회사의 보살핌에서 벗어나 제 힘으로 서고, 스스로 삶을 굴리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자생력은 땅에서 나오지 않는다. 자본시장에서 자라는 각종 배당과 이자라는 결실을 위해 오늘도 조금씩 시드머니를 뿌려본다. 그러니까 이것은 성장지향적인 투자 비결이 아니다. 제 몸하나 건사하며 적당히 잘 살고자 노력하는 소인의 생활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