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적인 노동과 비노동에서 벗어나
35세의 나이에 이직이 아니라 은퇴를 했으니, 많은 사람들의 의아해하는 눈빛이 있었다. 속으로 누군가는 대책 없다 하고, 누군가는 게으르다 했으리라.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말이 생각나, 이제 40세를 앞둔 백수는 이따금씩 부끄러워진다.
빠른 기간 내에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해 노동은 숭고한 것이고, 이유가 필요 없는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세상은 빠르게 변했고, 노동에 대한 개념도 각기 개인의 사정에 맞게 수정이 필요하다. 기술발전으로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대신 일해주는 각종 기계와 컴퓨터가 생겨났다. AI가 번역도 해주고 그림도 그려주는 시대, 그럼에도 근로시간과 강도가 늘어난 다면 그것들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적은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많은 것으로 이루는 것처럼 허망한 것은 없다.”
- 윌리엄 오컴
사람마다 노동의 의미와 필요가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동기 부족이다. 삶의 안정을 10년 정도의 노동으로 이루었으니, 더 많은 노동을 투입할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보람 없이 일하는 근로자는 회사 입장에서도 더 이상 필요 없다. 연차가 쌓여 높은 연봉을 받던 내가 스스로 물러남으로써 이 회사를 간절히 원하는 신입사원 2명은 너끈히 뽑을 수 있을 것이다.
원초적인 배고픔을 해결한 나는 이제 그 이상의 가치를 찾고 싶었다. 이유를 찾기만 한다면 그 일이 사무실에서 앉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하지만 그 일이 무엇인지는 아직 정확히 찾지 못했다. 그저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혹시나 이렇게 계속 시간이 흘러가, 허송세월이 되어도 상관없다. 매일의 과정이 꽤나 즐거워 힘들지 않다.
그에 반해, 정 반대의 억압의 시선도 존재한다. 파이어족이라는 이름으로 무언가를 하면 반드시 따라붙는 비난. 빠른 은퇴라는 이름을 걸고, 방송을 하거나 글을 쓰는 것은 이직이라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파이어족이라 하면 해변이나 호텔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햇볕을 즐기며 칵테일을 마시는 모습만을 떠올리는 것일까.
파이어족은 일 자체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돈 때문에 억지로 일을 하지 않을 자유를 의미한다. 100세 시대에 3,40대에 은퇴해서 앞으로 평생 어떤 일도 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경제적 자유를 이룬 사람에게도 적절한 일에서 오는 성취감과 보람은 필요한 법, 재미있는 일을 발견해도 하지 못하는 또 다른 제약을 스스로 만들 이유는 없다.
그래서 나도 적절한 종류와 적당한 강도의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내일 배움 카드를 이용해서, 페인트 기술을 배우고, 인테리어 필름도 열심히 붙여 보았다. 올해는 재봉을 익혔으며, 잠옷 정도는 스스로 만들어서 입는다. 이런 배움의 시간들이 일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탐험해 보고 싶은 일들이 무수히 빛나고 있다. 이쯤 되니 나는 한창나이에 일하지 않는 게 아니라, 어린 시절에 자신을 적극적으로 탐구하지 않은 나머지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