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은퇴가 주는 생애 최고의 자신감

by 오늘의 바다 보다

아! 여기에 내가 나아갈 길이 있었구나! 드디어 찾아냈도다! 이러한 감탄사를 마음속에서 외칠 때, 당신들은 비로소 안도할 것이다. (•••) 만약 도중에 안개나 아지랑이를 만나 고뇌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아, 여기다' 하고 찾아낼 때까지 가면 좋을 것이다. (•••) 그러므로 만약 이 중에 나와 같은 질병에 걸린 사람이 있다면 부디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만약 그곳까지 갈 수 있다면 여기에 내가 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생애 최고의 안도감과 자신감을 얻게 되리라고 믿는다. -나의 개인주의, 나쓰메 소세키



매일 하던 일을 중단하여 부족해진 보람과 만족감은 의외의 곳에서 채워졌다. 끊임없이 나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진정한 자신을 찾아 간다는 감각. 그동안 생각만 신물 나게 하고, 이내 그만두기를 반복했던 것을 실제로 행동에 옮겼다는 쾌감. 아직 나의 길을 완벽히 찾지는 못했지만 그 근처를 더듬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는 만족감. 이런 감각들이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단단하게 차올랐다. 스스로 이런 결정을 했다는 것 자체가 내 안의 자산이 되고, 앞으로도 내 삶을 더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원동력이 된다. 은퇴를 하고 얼마간은 둥지를 탈출한 새처럼 불안감에 흔들렸지만 이제는 공허하지 않게 호수처럼 잔잔한 은퇴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처 내려놓지 못한 인정욕구가 남아 있었다. 은퇴 후에 보란 듯이 잘 나가는 모습을 이전 회사 동료나 가족들에게 보여줘야 할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좋아하던 사람들과의 만남도 어쩐지 망설여졌다. 가서 무슨 얘기를 해야 할까. 뭔지는 모르지만 결과물을 보여줘야만 할 것 같았다.


이렇게 마음이 흔들리는 시기를 지나 이제는 물살이 차분해지고 상념이 연못 속의 진흙처럼 가라앉아 맑아졌다. 사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은퇴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짠-하고 남에게 내보여야 할 숙제도 없다. 그토록 원하던 평화로운 삶을 지금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나니, 나를 어찌 생각할지 신경이 쓰이던 지인들의 말에도 담대해졌다. 뭐 하고 사는지 의도 없이 묻는 안부인사에도 혼자 속으로 발끈하는 일이 줄어든 것이다. 잘 먹고 잘 놀고 있다던가, 책 많이 읽고 있다던가 하는 말로 가볍게 안부에 답한다. 그러다 놀고먹는다는 말이, 백수라는 자기소개가 짐짓 자랑스러운 지경까지 이르렀다. 백수라는 자기소개야 말로, 내가 스스로 벌어다 바친 나만의 상팔자 라이프의 증거이니까.



그렇게 끝없이 노동해서 돈을 버는 불편함 대신 선택한 심심한 가성비 라이프를 즐겨본다. 지금은 한적한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다 보니, 평일 낮의 여유를 즐기는 다른 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지인과 담소를 나누거나, 책을 읽거나, 뭔가 작업에 몰두한 사람들. 각자 얼마만큼의 걱정과 상념도 있겠지만, 여기 지금 쏟아지는 초가을의 햇살과 적당한 음악은 우리 다 같이 즐기고 있다. 적당한 웅성거림을 백색소음 삼아, 이 공간을 여러 사람과 적절하게 공유하는 감각은 명함 없는 나에게 얼마간의 소속감을 부여한다. 나의 삶은 이걸로도 충분하다. 회사의 이름과 직급에서 벗어난 자연인 1인의 조용한 낮시간이 이렇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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