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자의 거주지 정하기 5.
거주할 곳을 정하기 위해 이렇게 여러 곳에 잠시 머물다 돌아왔지만, 좀처럼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 좋은 곳이었고, 마음에 드는 부분들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꼭 그곳이어야만 하는 결정적 이유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거처를 옮겨야 하는 이유도 없었다. 장기간의 여행을 마치고 다시 엄마집 현관 옆 작은 방에 틀어박혔다. 이곳은 좁고 편안하고 안락했다. 굳이 여기를 떠날 이유란 없었다.
그러다가, 정말 갑자기 부산에 정착하게 되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런 말을 하긴 좀 쑥스럽지만, 계기는 엄마와의 말싸움이었다. 기억나지 않는 사소한 이유로 시작된 싸움이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이 익숙한 패턴이라니. 지겹고도 고통스럽구나. 어쨌든 다음날 대충 짐을 꾸려서 나왔다. 당장 오늘 저녁에 잘 곳이 필요하니 오히려 결정이 쉬워졌다. 그냥 부산에 가는 것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고민할 시간이 없으니 이런저런 이유 필요 없이 내 마음이 편한 곳으로 발길이 향했던 것이다. 단기 임대 어플에서 방을 찾아 부산에서 가장 좋아하는 바다인 광안리와 졸업한 지 십 년도 넘은 대학 근처에서 일주일씩 살았다. 그러다가 무인카페도 우연히 발견하고 열심히 알아본 후에 가게를 열게 된 것이다. 가게를 열었으니 피할 수 없이 정착의 길로 들어섰다.
부산에서의 생활은 여러모로 만족스럽다. 사실 다른 곳이었어도 지금처럼 잘 살았을 것 같다. 살기 좋은 몇 가지 이유를 발견했다면 그다음은 살아가며 채워가는 것! 지금은 오히려 지역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발전했다. 어느 곳이나 사람들은 살아가고, 그 나름의 좋은 점들이 있다. 그것보다 주변에 가족이나 친한 지인이 얼마나 있는지가 더 중요한 요소일 테지만, 지금껏 혼자 살아보니 어차피 어느 정도는 외롭다. 나의 친애하는 벗들은 각자 나름의 삶의 방식을 찾아내어 열심히 꾸려가고 있고, 예전만큼 자주 만날 수 없다. 물론 나 조차도, 홀몸이라는 특성을 십분 발휘하여 열심히 유랑 중이니 자주 보기 어려운 친구임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약 유랑의 선택지 중 태국 치앙마이를 선택하여 정착했다고 해도, 오랜 나의 친구들은 여전히 핸드폰 너머에 남아 있을 것이고, 어쩌다 얼굴을 보면 오랫동안 보지 못한 시간을 뛰어넘어 신나게 떠들어댈 것이다.
광안리와 부산대 근처를 지나, 해운대의 오피스텔에서 6개월 살다가 지금 사는 아파트로 정착했다. 좁지 않고, 저렴하고, 부산에서 가장 큰 공원을 바로 옆에 끼고 있는 이곳에서 산지도 1년 반이 지나간다. 2년이 되면, 월세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이사할 생각이다. 부산 외곽의 조용한 바다 앞 아파트와, 부산에서 가장 좋아하는 도서관 옆의 아파트를 두고 고민을 하고 있지만, 사실 둘 중 어느 곳이어도 상관없다. 이번에 이사하면, 그 단단한 콘크리트 안을 나에게 가장 아늑한 방식으로 꾸밀 생각이다. 나만의 낙원은 이 사각형 안에 존재한다.
너무 자주 거주지를 옮겨 다니다 보니 내 공간을 꾸미는 일에 너무 소홀했다. 이사의 간편함을 너무 생각해서 안락함을 포기했던 것이다. 내년에 이사를 하면 소박하게 나의 공간을 꾸미는 재미를 즐겨 볼 생각이다. 신축의 값비싼 공간은 필요 없다. 세월에 자연스럽게 낡은 공간을 내가 배운 기술로 채워야지. 문과 문틀을 직접 페인트 칠하고, 오래된 가구나 싱크대에는 필름을 직접 붙여도 좋겠다. 그동안 배운 재봉틀로 직접 커튼을 만들어 드리운 아늑한 공간이 어느 정도 그려진다. 이제와 보니, 지금까지 새로운 직업의 단초가 될까 해서 배운 기술들은 매일의 삶을 스스로 꾸리기 위해 배운 자립의 기술이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날 때면, ‘지금은’ 어디 살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아직도 부산이라고 말하기 꺼려지는 것은 내가 거주에 대한 개념을 너무 어렵게 생각한 탓일까. 평생 한 곳에만 살리는 없으니 어디든 얼마 정도는 임시거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 조금 더 찾아보고 싶고 다녀보고 싶다. 학창 시절에 못 가본 어학연수의 갈증도 채워야 할 것 같다. 큰돈이 들지 않는 곳만 골라서 찾아가겠지만 그럼에도 선택지는 여전히 무수히 많다.
정착을 위한 탐색의 기간 끝에 느낀 점이 있었다. 사실 이런저런 합리적인 이유들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나에게 맞는 거주지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고민했지만, 결국은 마음의 소리를 따라 갑작스럽게 부산에 가서 정착하게 된 것처럼. 회사에 다녀야 하는 99가지의 이유가 있어도, 다니지 않아야 할 1가지의 이유가 더 중요할 수 있는 것처럼. 결국은 우연이나 설명할 수 없는 마음에 따라 결정되기도 하는 삶의 부분들. 나이가 들어갈수록 조심성도 한 겹씩 쌓여, 가장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 심사숙고하지만,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는 없으니 애초에 완벽한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 결국은 이미 주어졌거나, 내가 선택했거나하는 여러 변수가 섞여 내 앞에 놓여진 이 판을 인정하고, 잘 꾸려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닐까. 그렇게 매일의 나를 잘 돌보며 살아가고자 결심한다.
다들 돈은 있지만 시간이 없다고 하거나, 시간은 많지만 돈이 없다고 하며 결국은 다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른 채 살아가는 것 같다. 굳이 극단의 양 끝을 잡고 모 아니면 도라는 마음가짐으로 스스로 좌절하기보다, 그 사이 나만의 어중간한 중간 지점을 더듬어 찾아가 보길 권한다. 양 끝은 한 점이지만 그 사이는 무수히 많은 범위로 존재하니, 가능성도 그만큼 무수히 많아진다. 나도 그렇다. 나는 부유하지도 않고 가난하지도 않다. 그 사이 나만의 어중간함으로 경제적 자유를 이어가고 있다.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