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자의 거주지 정하기 4.
나는 동남아를 사랑한다.
농작물은 뜨거운 태양아래 쑥쑥 자라 풍요롭고, 열대 과일은 수입되어 오는 비용이 없으니 한국의 가격과 비교할 수 없이 저렴하고 맛있다! 무엇보다 인건비가 저렴하여 한 그릇의 요리의 가격이 한국의 그것에 절반에도 못 미치는 곳. 그 많은 동남아의 도시 중 태국 치앙마이로 떠난 한 달 살이에서 내가 가진 돈의 가치가 별안간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돼지고기 바질 볶음 도시락 1000 원
돼지고기 꼬치 6개와 찹쌀밥 2000 원
그린커리 국수 2300 원
택시비 30분 이내 4000 원 안쪽
거대 수영장이 딸린 거실하나 방하나 콘도 한 달에 60만 원
물론 이곳에서도 싼 것은 싸고, 비싼 것은 비싼 법. 현지인이 복작거리는 골목에서 그들의 이 먹고 마시는 곳을 따라다녀야 진정한 가성비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처음에는 호텔을 옮겨 다니다가 이내 맘에 드는 콘도를 발견하고 장기로 숙박하며 머물렀다. 한 달간 머물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매일 수영을 하는 삶이었다. 50m나 되는 광활한 수영장을 밥 먹은 후 산책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오갔다. 한국에서 겨우 한 달만 배운 나의 몸부림이 자연스럽게 자유형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한국인에게 인기가 많은 콘도라, 태국과 한국을 오가며 자유로운 삶을 즐기는 사람들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2주씩 번갈아 가며 한국과 태국을 오가는 사람. 추운 겨울 날씨를 피해 매년 태국에 오는 사람. 그들은 부유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렇다, 해외를 오가며 휴양을 즐기는 삶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시공간은 넘을 수 없지만, 국경은 언제든지 넘나들 수 있는 것. 그렇게, 이 따뜻한 나라에 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내 지갑 사정이 별안간 좋아진다. 한국에서 가성비를 따지며 수고스럽게 아껴 쓰던 삶이 윤택해지는 것이다.
다만, 이곳에서 더 부각되는 것은 매일의 할 일의 소중함이었다. 사실, 사람은 마냥 놀기만 할 수 없는 것. 매일 수영하고 편하게 택시 타고 다니며, 먹고 마시는 일상에 다만 몇 시간이라도 일하는 시간이 추가되면 완벽할 것 같은데… 어느 초록의 식물이 가득한 카페에서 오렌지 커피 한잔을 마시며, 노트북으로 무엇인가 작업에 몰두한 한 여행자 (혹은 단기거주자)가 너무나 부러웠다. 다시금 고민이 깊어진다. 내 안의 무엇을 개발해야 자유로이 세계를 다니며 보람 있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것은 내 안에 이미 있는 것일까. 아니면 외부에서 찾아 개발을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지금처럼 이렇게 나의 생활기를 남기는 것도 혹시 ‘일’이 될 수 있을까.
물 건너 해외에서도 살아보는 연습을 해보니, 은퇴 후 유유자적한 생활에 한층 더 자신감이 생긴다. 이전만큼 못 벌어도,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이렇게나 많은데. 내 한 몸 잘 건사하며 더 맘껏 살아보리라. 그냥 지내보리라. 그것이 시간 낭비라 하더라도. 사람에게 시간은 유한하고, 금과 같은 것이라 했지만, 이렇게 즐겁게 보낸 시간들을 눈감기 전에 아까워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 아무리 시간을 물처럼 낭비하고, 생산성이 제로에 수렴하는 게으른 삶을 살고 있다 하더라도,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자력으로 유지할 수 있으니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다녀 본다.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