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자의 거주지 정하기 4.5
어느새 9월 말이다. 가을이 곁으로 성큼 다가오니 시원하기도 하고 마음 한 구석이 서늘하기도 하다. 지금은 막 어두워진 저녁 7시 반, 서울에서 볼일을 보고 부산역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이다. 멍하니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어두운 부산 거리의 불빛을 보다 보니 갑자기 잊고 있던 그때가 떠오른다. 온도와 색감이 2년 전 그때와 비슷한 것일까. 갑자기 생각이 난 김에 지극히 개인적인 그 기간의 감정을 풀어보려 한다.
그러니까, 일단 부산에서 살아보기로 결정하긴 했다. 부산에서 무인카페를 하나 차리고 살아볼 계획이었다. 하지만, 거주지를 찾는 일보다, 가게자리를 찾는 일이 더 까다로웠다. 주변 거주지, 유동인구, 카페의 개수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데 그럼에도 월세는 저렴해야 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임시거처로 6개월 만기로 오피스텔을 계약했다. 그 사이에 가게도 구하고, 어느 정도 운영해서 안정시킨 후 살 곳을 천천히 찾아보면 딱 맞을 것 같았다.
애초에 부산에는 2주짜리 여행으로 왔으니, 짐이 하나도 없었다. 급한 대로 얇은 매트리스 하나만 배달시킨 채 입주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부터 몸이 심상치 않았다. 코로나가 기세가 등등하던 때라, 오랜 여행으로 지친 몸에 바이러스가 침투했던 것이다. 그렇게 정말 아무것도 없는 오피스텔. 그 위에 작은 배처럼 덩그러니 떠 있는 슈퍼싱글 사이즈 매트리스 위에서의 표류가 시작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엄마집으로 돌아가 짐을 싸서 돌아오려 했는데, 그냥 힘없이 누워버렸다. 집에 연락을 해도 되는데,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배달시켜 밥을 챙겨 먹고 약을 먹고는 그냥 잤다. 밤인지 낮인지 상관없이 그냥 자거나 멍하니 핸드폰을 봤다. 해운대의 상업지에 세워진 오피스텔은 빽빽하다. 사방이 건물이라 해가 잘 들지 않았다. 여기에 부산 바닷가의 습기가 더해져서 축축한 공기에 몸이 조금씩 눅눅해지고 붓는 것 같았다. 먹고 자기만 하니 안 그래도 건실한 몸뚱이가 붓기와 기름기로 차올랐다. 내 코로나 증상은 찢어지는 듯한 목의 통증이었다. 침을 삼킬 때마다의 통증만이 생생하고, 나머지는 다 뿌옇고 불확실했다. 내가 얼마나 누워서 앓았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2주인가, 3주 정도 그렇게 앓고 어느 날 털고 일어났다.
그러니까 다들 한 번씩 겪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인데 그 시기와 장소가 절묘했다.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임시의 방에서 혼자 조용히 앓고 일어났다.
여행자도 아니고 거주자도 아닌 어중간한 나의 상태를 절실히 느꼈다. 더 이상의 방황은 그만하면 되었다 싶었다. 해운대에 와서 처음으로 바닷가에 산책을 나갔다. 바다를 지척에 두고 그동안 5평 남짓한 축축하고 어두운 공간에서 갇혀만 있었던 것이다. 해운대 밤바다가 아름답게 물들고 또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나는 바다를 참 좋아하는구나 다시금 느꼈다. 이렇게 바닥을 치고 일어났으니, 새로운 마음으로 부산에서 시작할 마음이 차올랐다. 하나 달라진 점은, 이제 혼자는 너무 쓸쓸하다 느껴버린 것. 그렇게 동생을 부산으로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