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자족,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기

by 오늘의 바다 보다

파이어족으로 가는 마지막 열쇠는 이미 가진 것에 만족하는 자족이다. 사실 오래 일하면 연봉이란 오르기 마련. 그렇게 계속해서 다음 달의 월급, 내년의 연봉을 의식하면 회사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의 경우에는 5년 정도만 더 일하면 희망퇴사의 조건에 해당되어 2억 이상의 특별 퇴직금을 더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나에게도 정말 큰돈이긴 하지만, 더 이상 미래의 예상 소득을 계산해 보기를 그만두고 퇴사를 실행했다. 그럼 언제까지 일해야 하는가, 얼마나 더 일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니 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퇴사를 위한 나만의 목표 금액을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이왕이면 많으면 좋다는 막연한 생각이라면, 평생 일해도 채워지지 않는다. 갈증이 채워졌음을 제때 인식하면 억지로 하는 노동에서 남보다 조금 빨리 자유로워질 수 있다.


둥근 지구의 꼭대기에 앉아 더 높은 곳만 쳐다본다. 눈앞의 즐거움은 안 보이고 자꾸 남의 떡만 크게 보인다. 몸은 여기에 있는데 생각은 저기에 가 논다. 내 손에 쥔 것, 지금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를 잊은 지가 참 오래되었다. 더 가지고 다 가지기 위해 아등바등하다가 가진 것을 다 잃는다. 기쁨은 먼데 딴 데 있지 않다. 즐거움은 코앞 발밑에 있다. 그것을 찾아라.

- 다산 정약용


내 손에 쥐고 있는 것과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내 코앞 발밑의 즐거움 먼저 즐기라는 정약용의 말은 현대의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옛날과 달리, 이제는 배를 굶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기본적인 의식주의 충족을 넘어서, 이제 더 크고 더 좋고 더 깨끗한 것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단계. 이제 현대의 사람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가난을 놓치지 않고 느낀다. 물론, 더 많이 가지고자 하는 욕망은 때론 좋은 원동력이 된다. 다만, 반복되는 노동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면, 끝없는 비교를 멈추고 지금까지 모아둔 자산에 적당히 만족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됐다, 백만장자까지는 필요 없다는 적당한 단념이 실제로 퇴사를 실행하게 한다.



자족은 이 세상에 더 이상 바라고 요구하는 것이 없게 한다. 손 벌려 구하지 않으니 아쉽지 않다. 누구에게도 어느 곳에서도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아쉬울 것 없는 입장으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간다.


황제도 욕망이 없는 사람과는 적수가 될 수 없다.

Even an emperor is no match for a man with no wants.

- 라마나 마하르시 Ramana Mataish(인도 명상가)


만약 두 사람 사이에 욕망이란 것이 생겨난다면, 반드시 그 중 하나는 갑의 위치에 나머지는 을의 위치에 서게 된다. 나는 욕망 줄이기를 통해 비굴하지 않은 자세로 살아갈 자유를 얻었다. 오랜 기간 연습해 온 소비 줄이기는 회사를 더 이상 다니지 않아도 되는 간편한 상태를 만들어 주었고, 마침내 회사에서 나오자 더 이상 누구의 지시도 받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나의 표정으로 친절도를 가늠하는 손님도, 인사평가를 하는 상사도 더 이상 없다. 아쉬움이라는 것이, 사람의 심리를 흔드는 무기라 치면, 그것을 휘두르지도 않고, 그것에 휘둘리지도 않은 채 조용히 혼자 살아가는 것이다.


박수 칠 때 회사에서 떠났더니,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이 전혀 없다. 그리고 버겁지 않고 감당가능한 크기의 자산을 뒤에 받치고 살아가는 절약의 삶은 씁쓸하지도 않다. 사고 싶은 물건을 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에 대한 욕구 자체가 줄었기 때문에 억지스럽지도 않다. 대신에 넘치게 늘어난 시간이, 매일의 삶을 윤택하게 한다. 비단 늘어지는 낮잠과 한잔의 낮술뿐 아니라, 한적하게 즐기는 모든 일상이 조금 더 달콤하게 느껴진다. 시도 때도 없이 드러누우며 습관처럼 ‘으아- 좋다’를 걸쭉하게 외치는 내가 조금 늙은이 같이 느껴지지만, 정년 은퇴자의 삶을 조기학습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도 눈앞의 즐거움들을 놓치지 않고 하나씩 펼쳐봐야지. 무엇을 더 배워볼까, 어디에 더 가볼까. 오- 달콤한 자족! 내가 즐길 수 있는 달콤한 과실은 아직 많고도 많다.



<남은 달콤함 것들의 명세>

작은 달달함 하나. 이벤트에 응모해 받은 기프티콘으로 카페 가기.

작은 달달함 하나. 새로 생긴 도서관에서 누워서 만화책 보기.

작은 달달함 하나. 매일의 하늘을 오래 바라보고 바람의 감촉 느끼기.

좀 큰 달달함 하나. 바닷가 작은 아파트를 얻어 무료로 나눔 받은 가구들로 꾸미기.

좀 큰 달달함 하나. 휴직 중인 친구와 따뜻한 나라로 단기 어학연수 떠나기.

좀 큰 달달함 하나. 소정의 지원금을 받으며, 국가 지원 재봉 수업 듣기.

좀 큰 달달함 하나. 대학원 혹은 방송통신대학에서 관심 있던 학문(부동산, 심리학 등) 배우기.


나의 여정은 더디지만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 내년의 나에게 가장 친한 벗으로서 응원을 보내본다. 침착하게, 조금은 더 생기 있게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해보렴. 혜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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