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졔이 Aug 18. 2023

배가 불러서 그래

시작하는 글 (2)

따지고 보면 소원이 없는 삶은 좋은 것이다. 간절한 일이나 아쉬울 것 없이 이냥저냥 살고 있다는 뜻이니까.


그런데 나는 그게, 이상하게 자꾸만 이상했다. 왜냐하면 생일 소원이니까. 일 년에 한 번만 주어지는 순간이고 고민할 시간 충분치 않다. 순발력이나 준비성이 대단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촛불에 소원을 빌 때는 평소 강하게 품고 있던 희망이 재채기처럼 튀어나오게 마련이다.


복근 만들기나 외국어 습득에 관한 마르지 않는 의지, 내 집 마련 혹은 직주 근접 문제가 해소된 곳으로의 이직, 가족과 고양이의 무병장수… 복권 당첨… 하고 있는 게임의 픽업 뽑기에서 이번에야말로 기만질을 할 수 있게 해달라거나… 하다못해 지금처럼만 지낼 수 있게 해달라고 빌어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그걸 바라기만 했다면.


크게 바라지 않는 삶이라는 건 어쩌면, 주어진 몫몫에 둔하고 무감해졌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감사와 만족의 증표가 아니라, 더 나은 것을 기대하기를 포기해 버렸기 때문이라는 생각. 이루어지지 않을 테니 빌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서른다섯 살이다. 평균을 고려한다면 이때껏 살아온 만큼을 한 번 더 살아야 할 것이고 요행이 따른다면 두 번을 더 살아야 할 수도 있다.




이십 대의 나에게 읽는 법과 쓰는 법을 가르쳐 준 선생님이 있다. 그때 나는 욕심이 많고 철은 덜 든 사람이어서, 종종 선생님 앞에서까지 온갖 불평을 늘어놓았다. 여기서 되었다 싶으면 저기서 구멍이 생기고, 겨우 이쪽을 틀어막았다 싶으면 다른 쪽에서 문제가 터져요, 내가 분통을 터트리면 선생님은 그저 그러냐, 하셨다.


나는 제대로 된 꼴을 갖춘 글을 쓰고 싶었다. 읽고 쓰는 공부를 지속하고 싶었고 돈도 벌어야 했다. 쓰는 것으로 벌 수 없었으니 쓰는 시간과 버는 시간을 각각 확보해야 했다. 잠을 줄였다. 물론 본말은 늘 전도되기 쉬운 법이라 일하는 시간에 조는 적도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첫 번째 직장의 대표님은 내가 심한 변비 환자인 줄 알고 계셨는데, 실은 변기에 앉아 쪽잠을 자느라 그런 거였다. 제시간에 깨어나지 못해서 공부 모임을 빼먹는 날도 왕왕 있었다.


그 시절 품었던 대개의 불만은 이것과 저것 사이에 발생하는 문제에 관한 거였다. 글을 쓰면서 잠도 잘 수 있으면 돈을 벌지 못하고, 글을 쓰면서 돈을 벌면 잠을 잘 수 없고, 돈을 벌고 돌아와 잠을 자는 일에 관성이 붙기 시작하면 공부와는 영영 멀어지고 만다…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유지할 수 있지요, 나는 날마다 고시랑거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멍청한 질문이었다. 모처럼 몇십 년씩 '이런 생활'로 살아온 사람을 눈앞에 두고 있었으면서, 차라리 어떻게 하면 선생님처럼 살 수 있는지를 묻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어느 날엔 선생님은 플라스틱으로 된 슬라이딩 퍼즐 이야기를 했다. 퍼즐판에 빈칸이 있기 때문에 각각의 조각이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니겠느냐고. 그때 나는 욕심이 많고 철이 덜 들었을 뿐만 아니라 산만하기까지 해서, 어릴 적에 내가 바로 슬라이딩 퍼즐의 귀재였다는 둥 문방구에서 파는 걸 종류별로 사모았다는 둥 시답잖은 이야기를 한참 동안 늘어놓았다. 그러다가 더럭 궁금해졌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언제까지 조각들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맞추어 보는 일에 열의를 쏟아야 할까요?


여전히 멍청한 질문이었다. 그때 나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평범하게는 두 번, 요행이 따른다면 그때껏 살아온 만큼을 세 번 더 살아야 할 수도 있는.




선생님은 나를 팔랑개비라고 불렀다. 내게 그런 별명을 붙인 경위를 제대로 설명해주지도 않고. 선생님께 품고 있는 감사함과는 별개로 당시의 선생님 역시 인격적으로 그리 완성된 상태는 아니었다고 쓰고 싶다. 덜 자란 제자한테 심술을 부리는 성급하고 못된 선생님이었다고 적는 것으로 그때의 분풀이를 마치겠다.


그러나 하신 말씀에 틀린 부분은 없는 것 같다. 그때 나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한없이 한없이 가벼운 인간이었다. 그래서 원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여러 조건들을 뒤섞고 그것들의 자리를 바꾸어 놓을 수도 있었다. 아마도 선생님은 바랐을 것이다. 내가 마음에 나름대로의 심지나 줏대를 세우고, 손에 쥔 조건들이나마 차분히 정돈하여 살기를, 조건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이용하여 나는 법을 익히기를 바라셨는지 모른다.


선생님과 슬라이딩 퍼즐 이야기를 나눈 건 스물다섯 살 때의 일인데 나는 그게 꼭 지금 도착한 조언 같다. 사람이 말 한마디를 알아듣는 데 십 년에 가까운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는 법이다… 나름대로 근성은 있지만 성실하지는 못하다는 점에서 그때와 크게 달라진 바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마음에 빈칸이 있어야 소원을 빌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야.

이전 01화 일 년에 한 번인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