育兒, 育我, 六我수필

育兒, 育我, 六我수필 마지막 이야기

by ANNA

세상에 나만이 존재하던 어느 날, 아기가 찾아오면서 나의 인생과 정체성을 단박에 뒤흔든다. 내 삶의 주연은 나인데, 어느 순간 조연으로 밀려나게 되어 온 신경을 아기에게 쓰고 있노라면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 등의 생각 따위를 할 겨를이 없다.


그렇게 아기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나는 초라해진다.


아기를 키운다는 것이 그렇다. 물론 아기는 얼굴부터 오동통한 손가락들, 통통한 배, 옹알거리는 입, 심지어 발가락 사이의 때까지 어느 하나 귀엽지 않은 것이 없다. 온몸으로 사랑스러움을 내뿜기에 대부분의 엄마들이 아기의 팬이 되고 기꺼이 주연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다. 아기에게 의식주를 제공해주고, 접종을 제때 해주며, 인지발달 및 정서발달을 돕고, 애정을 쏟는다. 아기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를 육, 아이 아.

우리는 육아를 하고 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외풍에 몸을 떨 듯 찬바람이 불어오는 날이 있다.

이 공허한 마음. 나는 뭐지?

아기를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 취미활동, 예쁜 옷과 화장품들, 어떤 경우에는 직장까지…….

내가 어떻게 취직했는데! 어떻게 그 경쟁률을 뚫고 면접을 보고 공부를 했는데! 신입 때 눈물을 쏟고 힘들어하면서도 그만두지 않았던 그 직장을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신입 때 흘렸던 눈물보다 더 농축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린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찾아오는 것은 당연하게도 육아가 힘든 날이다. 그 사랑스럽던 아기는 얼굴과 대비되는 사랑스럽지 않은 행동으로 날 지치게 하고, 같은 편인 줄 알았던 남편은 남의 편이 되어 날 지치게 하고, 남들은 다 쓴다는 부모님 찬스라는 걸 쓰지도 못할 때, 육체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아플 때…….


육아는 고통이 된다.







그리고는 화를 내고 있는 나의 모습, 나의 눈치를 보는 아기의 모습을 바라보다 ‘아차’한다. 아기에게 엄마는 ‘어른’일 텐데, 나는 ‘어른’도 ‘아이’도 아닌 무엇이다. 나는 몸만 어른인 상처투성이 아이인지도 모르는데, 나보다 더 아이를 최대한 상처 주지 않고 키워야 한다는 미션을 받은 셈이다.

그런데 육아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다. 통제할 수도, 회피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는 것이 바로 육아다. 내가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그 순간 우리는 한 단계 성장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심리치료의 이론 중 수용 전념 치료(ACT)에서는 인간에게 고통이 보편적이고 정상적이라고 가정한다. 지금 우리의 이 힘든 시기들, 아기를 낳음으로써 새로이 정립된 아기와 나와의 관계, 변해버린 남편과 나, 양가 부모님들과 나, 친구들과 나와의 관계…….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출산과 육아라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 나라는 인간도 자라난다.


그렇게 기를 육, 나 아.

나를 기른다.

달라져버린 관계 속에서 말이다.




이렇게 상황에 따라 관계에 따라 나라는 사람이 달라져 버리다니. 나를 잃어버린 느낌에 이것저것 찾아내어 뭐라도 배워보고, 뭐라도 읽어보지만 예전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 건 '나'라는 그래프 속에 '엄마'라는 지점이 하나 더 생겼기 때문이다.


‘나’는 단수인가 복수인가? 문법적으로는 단수겠지만 나라는 존재는 x축엔 <엄마의 딸>, <스스로 느끼는 나>, <아이의 엄마로서의 나>, 이렇게 3가지의 역할이 만들어졌다. y축엔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가 생성되어 그래프를 어지럽힌다.


과거의 날씬하던 나를 그리워하며 추억에 젖다가도 우는 아기에게로 달려가고, 모든 걸 놓고 싶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사랑스러운 아기를 보며 행복감을 느낀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몰랐을 엄마의 고단함을 공감하다가도 다다다 쏘아붙이며 사춘기의 나처럼 되고 만다. 그러고는 또 저녁엔 이것저것 공부를 해본다. 그렇게 나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결국 여섯 육, 나 아

비단 여섯 개의 자아뿐이랴, 나라는 인간은 다양한 자아를 가진 존재라서 '누군가의 엄마'라는 역할로만 살 수는 없다.


그렇기에 육아는 끝나지 않아도 육아 수필에는 마지막 장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제는 내 인생에 육아 이야기가 아닌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써 볼 차례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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