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성적표

育兒, 育我, 六我수필 서른두 번째 이야기

by ANNA

엄마 성적표라 불리는 영유아 검진이 시작되고 나면 그 전까지도 느긋하게 있던 엄마들은 갑자기 걱정이 앞선다. 수치로 상위 몇 퍼센트인지 나타나는 아기의 키, 몸무게, 머리둘레. 아기의 언어, 사회성, 인지발달…….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아기의 발달과정을 두고 경쟁 아닌 경쟁을 하는 날 발견했다.

다른 아기들은 이 시기엔 이렇던데 왜 우리 아기는 아직 못하지? 뒤집기도 되집기도 기어 다니기도 모두 한 템포씩 늦었던 아기.


이제는 사회적 반응이나 눈맞춤, 모방 행동 여부까지 신경 쓰면서 하나하나 관찰하는 나. 내가 아무리 난리법석을 떨면서 짝짜꿍을 해도 무관심한 아가를 바라보며 다른 아가들은 짝짜꿍을 하던데, 싶어 무의식 중에 걱정을 하며 찌푸려지는 미간. 아직 제대로 된 말을 하지도 못하는 아기와 비교되게 동년배(!)의 아가들은 벌써 "까까"라느니 "물"이라느니 하는 정.확.하.게 자음과 모음으로 된 단어를 또.록.또.록 말하는 걸 보면 마음이 초조해졌다.


분만실에서 조그맣게 태어난 아기를 보며 사지 멀쩡하게 태어나 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던 과거의 나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이냐.

본투비 건강염려증인 나는 조금만 아파도 인터넷에 검색하고 병원에 가기 일쑤였는데 임신을 하니 그 건강염려증은 아기에게로 향했었다.


초기에는 유산 걱정, 기형아 걱정, 후기에는 사산 걱정, 분만 때는 태변 먹진 않을까 탯줄에 감기진 않을까, 태어나고 나서는 자다가 숨 막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들까지.


살아있는 걱정 인간이 되어 버렸다. 페루에서 온 걱정인형이 분명 있었는데 걔도 나의 걱정을 감당하긴 어려웠나 보다. 도망치고 없는 걸 보니 말이다.


그 무렵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아기는 조금 빠르지만 멀쩡하게 태어났고, 그래서일까 하나 둘 바라는 게 많아지는 나란 엄마.


태어나 준 걸로도 고마운 존재라던 내가 초심을 잃었다. 어쩌면 아기가 무언가 느리거나 못하면 그게 내 탓이 되어버릴까 봐, 그 책임을 지고 싶지 않기에 두려워서 아가가 제때제때 발달 과업을 달성하기를 바라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전전긍긍하면서 깨달은 것은, 느려도, 부족해도, 소위 말하는 '정상'에 속하지 않더라도 '정상'과 비교하지 않고 내 아기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사랑한다는 것이 참으로 힘든 일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사실 정상과 비정상을 누가 나눈 것일까? 정상인들이 정상인들의 기준으로 나눈 것이다. 비정상인들이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면 비정상인들이 정상인이 된다.


그러니까, 세상은 누군가들이 암묵적으로, 자신들의 잣대로 나눈 것일 뿐 한 번도 세상은 우리를 편견으로 대한 적이 없다.


그러니 다른 아이들과 나의 아기를 비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기는 자신만의 방식대로 자라는 거니까. <아이는 사생활>이라는 책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아인슈타인은 언어를 관장하는 측두엽이 보통 사람보다 작았다. 실제로도 언어발달이 느려서 3세가 되어서야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언어를 관장하는 측두엽 발달이 다른 사람보다 느렸던 것이다. 부모들은 아이마다 뇌 발달이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아이들마다 발달이 다르고 어떤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뛰어난 것은 그냥 그쪽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먼저 발달해서일 것이다.


'발달'이라는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데 그 항로는 다 다르다. 어떤 아이는 측두엽이 발달하고, 어떤 아이는 두정엽이 발달하는 것처럼 아이마다 뇌의 크기나 사용이 조금씩 다른 것이다.


이런 말들은 나를 위로해준다. 걱정으로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조금씩 녹여준다. 결국은 아직은 두 돌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의 아기를 키우면서도 나는 아기의 발달이 느린 것은 아닐지, 그렇게 되면 남들과 다르게 되는 것은 아닐지, 그런 것들로 상처를 받게 되겠지 하며 생기지도 않은 일들을 상상하고 걱정했던 것이다.


다양한 아이들의 뇌를 고려하지 않는 획일적인 엄마 성적표와 영유아 검진의 항목들. 설문지에 적힌 것은 평균적인 발달 사항에 속하는 항목 들일 것이고 하나의 숫자에 불과할 것이다. 느릴 수도, 빠를 수도 있다. 길거리에 핀 은행나무들이 모두 같은 날 노랗게 물드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리고 어떤 범주에서 벗어나 다를 수도 있다. 우리가 느리다고 걱정하는 것의 결과는 결국 '발달장애', 'ADHD', '자폐스펙트럼 장애'와 같은 정신질환 들일 것이다. 데보라 레버의 <우리 아이는 조금 다를 뿐입니다>라는 책에서는 그런 질환들을 가진 아이들은 그저 신경생리학적으로 다른 것뿐인데 그것이 창의성이나 호기심 등으로 평가되지 않고 '결핍'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그러니, 무작정 걱정하기보다는 '누구나 다를 수 있음'을 먼저 아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신경학적으로 전형적인 아동을 표본으로 하는 육아 철학 책은 보통 사람이 인정하는 수준이나 기준은 항상 정해져 있다는 개념을 강조하는 격이다.
<우리 아이는 조금 다를 뿐입니다 중에서>


이제 나는 다음번 엄마 성적표를 받아도 걱정에 매몰되지 않기로 다짐해본다.

엄마 성적표는 갈가리 찢어버리고, 내 눈으로 바라보는 아기 성장표를 만들어 보기로 다짐해본다.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아이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표현하고, 아이가 이루어내는 것 그것이 작은 것일지라도 하나하나를 감사하게 여기자는 다짐을 해 본다.




그래, 뭐.. 발달이 늦으면 어때? 못하면 어때? 느리면 어때? 늦는다고 누가 날 비난하면 어때? 내 탓이라고 욕하면 어때?

두려우면 어때? 사실 엄마들 다 두려울 걸?


그냥,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기만 하면 돼.


아 물론 그게 제일 어렵습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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