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과 워킹맘에 대한 단상

育兒, 育我, 六我수필 서른네 번째 이야기

by ANNA


복직을 한 지 3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복직 후에는 글을 쓰기가 쉽지 않다. '생각'없는 로봇이 되어 낮에는 일로봇, 밤에는 육아로봇으로 지내고 있으니까. 글을 쓰기 위해서는 사고라는 과정이 들어간다. 용광로에 넣어 펄펄 끓이는 과정, 그렇게 새로운 것을 생성해내는 과정. 워킹맘이라는 건 그 과정이 없는 존재다.


그렇게 복직 전에 내가 쓴 글과 마음을 담아본다.




어느새 길게만 느껴지던 육아휴직의 끝이 다가왔다. 예전에는 1년 3개월이라는 시간을 쉴 수 있는 것 자체가 운이 좋은 거라고, 그렇게 휴직이 보장되는 것만으로도 좋은 거라고 말했지만 막상 돌이 갓 지난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회사에 다니려니 마음이 쓰인다. 생각보다 돌이 지난 아기도 아기다. 아니, 오히려 누워 있을 때처럼 마냥 이쁘지는 않은, 이쁜 얼굴로 고집부리는 떼쟁이 아기라서 육아 난이도는 점점 올라간다. 안아줘 병에 걸린 아기를 두고 워킹맘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가 들 수 있을까. 그냥 엄마라는 삶도 힘든데 엄마라는 삶에 노동자의 삶까지 더해지려니(심지어 이 글을 적는 2022년의 근로자의 날은 일요일이다 살려줘 제발) 마음의 짐이 배가 된다.






그러나 내 주위에는 이미 워킹맘들이 곳곳에 포진되어 일도 육아도 살림도 아기와 여행도 열심히 하고 있다. 내가 처녀 시절에도 그녀들은 워킹맘이었다. 그래서 나는 워킹맘도 할 만한 거구나,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물론 그녀들의 지워지지 않는 다크서클과 누구보다 단기간 몰입도 높은 일처리와 빠른 퇴근(그녀들의 삶에 야근은 매우 거석한 일이다. 그래서 업무 시간에 놀지 않고 미친 듯이 일을 끝낸다), 업무 틈틈이 아이와 어린이집에서 걸려오는 전화들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 다크서클을 안일하게 생각해버렸다. 그녀들은 늘 곁에 커피를 두고 말했다. 물론 커피는 탕약 수준이다.


"그냥 하는 거야."


"닥치면 다 하게 되더라고요"


"일 나오는 게 더 낫더라"


"휴직 때 빨리 복직하고 싶었어"


나도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예상외로 내게 갑작스레 부여된 엄마의 역할이 적성에 맞았나 보다. 물론 힘들 때도 많고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을 때도 많지만 적당히 타협해 가면서 일하는 것처럼 적당히 타협해 가면서 전업주부를 하는 것도 생각보다 할만했고 재미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주양육자가 내가 아닌 어린이집이나 아기의 할머니가 될 거라는 생각에 내게 부여된 엄마라는 역할을 보이지 않는 어떤 손이 거두어 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아기가 내 품 안에 있는 모습이 그동안 나를 엄마라는 역할에 적응시키고 안정되게 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일하러 나가게 되면, 그렇게 아기에게 신경 쓰는 시간이 줄어들면, 아기에 대한 대부분의 결정이 내가 아니게 될 것만 같아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봐. 그 불안감이 복직을 더 우울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사실 지나치게 아기에게 신경 쓰는 것은 좋지 않다. 소위 말하는 헬리콥터 맘, 잔디깎이 맘이 내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그럼에도 내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아기가 실은 내가 없어도 어린이집에서도 할머니 집에서도 잘 해내겠지, 싶어서 그게 날 슬프게 한다.


아기는 아기의 인생을 살뿐이고, 내가 엄마라는 사실은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변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나는 이제 엄마로 살던 나에서 직장인인 나로 돌아가려는 과도기에 서 있다. 다시 회사에 적응하려니 이제는 어떻게 일을 했는지 기억나지가 않아서 일하는 꿈까지 꿨다.


복직했는데 기존 업무와 달라져 안 되는 꿈!

막히는데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꿈!


전업주부일 때는 육아하는 꿈을 꾼 적이 없는데 복직을 생각했을 뿐인데 일하는 꿈을 꾸다니. 아마 육아는 사랑이 베이스인 직업이고 직장인은 생존이 베이스라서 그런가 보다.


한 달 후, 워킹맘 생존신고를 할 수 있길 바란다.




이제 과거에서 미래로 넘어왔다. 무사히 생존 중이다. 업무는 몸이 기억해서 일주일 만에 완벽적응, 복직 직전 연수받고 장거리 출퇴근(왕복 80km)도 무사고로 적응, 아기와 나의 힘들었던 시기는 두 어달.

아기도 어린이집에 완벽적응.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그리고 일하러 가는 시간

그 시간이 나만의 시간이라는 걸,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생긴다는 걸,

언어로 누군가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아기와 나, 인터넷 세상이 전부였던 고립된 섬에서 헤엄쳐 나온 기분이다.


이 맛에 워킹맘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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