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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마디 Oct 02. 2022

내 서랍 속 <화해>

나와의 화해

이사 다음날 부동산에 중개수수료 드리러 갔다가 소파에 앉아서 사장님과 두 시간 반을 얘기했다. 이사를 혼자 척척 해내고, 엄마 아빠에게도 이렇게 살갑게 잘하니 부모님이 복 받았다고 하시길래 으레껏 하는 말인가, 진심인가 싶어 내 얘기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사장님이 내비치는 부러움에 어딘가 슬픔이 묻어나는 것 같아 나도 말을 꺼냈다.


그게 아니라 사실 나 때문에 오랫동안 불행한 부모였다고, 이 이사처럼 긴 과정을 거쳤다고 고백을 했다.


사장님은 아들 둘을 둔 엄마지만 나처럼 딸이기도 해서 우린 딸의 마음을 잘 안다. 우리는 가까운 관계에서 겪게 되는 마음의 어려움을 털어놓고 위로와 격려의 말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사장님의 ‘엄마’로서의 말을 통해 나도 엄마의 입장을 더 객관적으로 그려보니까 엄마가 낸 용기가 얼마나 커다란지 실감났다.


얼마 후에는 집주인 아저씨까지 셋이서 시간을 맞춰 점심을 먹었다. 보쌈 정식을 시키고 모두 이제야 한 숨을 돌린다며 웃었다. 부동산 사장님은 부동산 중개업이 사람을 알게 되는 일인데 나를 한 사람으로서 알게 된 게 든든하고 감사하다며 이럴 때 참 보람을 느낀다고 하셨다. 집주인 아저씨도 그동안 부동산 사장님한테 나를 세입자로 소개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고 한다. 이 집으로의 이사를 꾸역꾸역 성사시키느라 정말 많은 도전을 해야 했는데 그 과정을 다 지켜본 두 어른. 잘 와야 할 텐데, 잘 해내겠지, 하며 그동안 나를 응원해 주신 마음이 느껴졌다.


여러 사람이 ‘제발 와라’ ‘제발 가라’ 바래 줘서 그런지, 살면서 이사를 정말 많이 다녀봤지만 내가 환영받는다고 느끼는 동네는 처음이다. 부동산에는 ‘내가 좋은 땅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좋은 땅이 사람을 선택한다’라는 말이 있다. 나도 '집'에 대한 로망과 기준을 정하고나니까 처음 이 집을 보러왔을 때 이 곳이 나를 확 끌어들인 듯 이 공간에서 나의 일상이 바로 그려졌다. 그리고 그 감을 믿고 이 집을 선택한 배짱도 생기고, 선택 후에는 ‘이사’라는 실전을 겪으며 각종 처세술에 대한 소양도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만남도 마찬가지.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가졌는지 아는데에서 새로운 만남이 열린다. 내가 가진 프로필을 읊어볼까. 경기도와 서울의 경계에 사는 삶, 이젠 빼박 30대 초반, 여자, 대학원, 그림, 조금 특이한 지역 배낭여행, 심지어 부모님의 딸이라는 것까지. 어느 하나 당연하게 주어진 게 없다. 다 내가 공들여 이룬 작업물이고 그것을 나라는 서랍에 차곡차곡 정리해놓았다. 누군가 필요한 게 있다면 나는 기꺼이 서랍을 열어 함께 뒤적여본다. 그리고 나란히 앉아 내 책을 무릎에 펼쳐놓고 우리는 선물 같은 대화를 나눈다.


화해의 교과서. 오은영 <화해>

엄마는 이 책의 가이드를 따라 하며 용기를 내고 자신과 화해하고 나에게 용서를 구했다. 나는 엄마의 매일 달라지는 용기를 느끼면서 엄마와 화해하고 그다음 나를 용서하고.나도 이 책을 읽고나서 엄마에게 자주 철지난 용서를 구한다.





그 사람을 원망하나요?

왜 너는 내게 그렇게 안 해줘? 서운한가요?

원망이 사실은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라는 걸 알아차려봅시다. 마음이 복잡할 때는,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이 어떤 감정으로 표출되는지 그 상관관계를 설명해주는 책을 보면 도움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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