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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김 Mar 10. 2024

좋은 직장인데 왜 힘들죠

조직에 속한 개발자의 딜레마

직급이 있는 회사에 다녀 본 적이 없다.

물론, 팀장은 있었다. 하지만 그건 직급이라기보다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조직장은 있었지만, 그게 직급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일반적인 회사에서 말하는,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같은 직급은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앞으로 직급이 있는 회사에 다니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갑갑해서 못 다닐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면 직장 생활 나름 편하게 한 걸지도.


그런 면에서 나름 괜찮은 회사에 다녔다. 수평 문화를 지향하는 회사였고, 신기술에 열려있는 회사였으며, 기술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장비도 잘 지원해 주는 회사였으니까. 남들이 부러워하는 그런 회사였지만, 당연히 별천지는 아니었다. 회사가 그리 작지 않다 보니, 피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큰 조직에는 흔히 발생하는 그런 문제들 말이다.



수평 문화는 너무 쉽게 박살 난다

회사가 수평 문화를 지향하는 건 좋은 일이다. 조직장 이상의 직위를 가진 사람들이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실무진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듣고 수용할수록 더 현실에 맞는 결정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실무진이 자기 일에 더 책임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그런데 아무리 수평 문화를 지향해도 조직이 커지면 조직장이 현장의 목소리를 다 듣기가 힘들어진다. 실무진과 경영진 사이에는 괴리감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경영진이 특권 의식을 가질 소지가 높아진다. 그렇게 되면 말이 수평 문화지, 사실 높으신 분이 따로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이 높으신 분은 슬슬 이상한 짓을 하기 시작한다.


먼저 실무진의 의견과 전혀 다른 결정을 내린다. 언젠가 문제가 터질 거라고 경고하는 실무진의 의견은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고, 회사에도 직원에게도 도대체 도움이 안 되는 결정이 위에서 내려온다. 그나마 수평 문화가 잘 유지되고 있다면,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그 결정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합의점을 찾아갈 수 있다. 하지만 경영진이 그 의견을 설득하려 하지 않고, 묵살하려 한다면? 수평 문화는 쉽게 박살 나고, 입 다물고 일해야 하는 수직적인 문화가 생겨나게 된다.


간혹 서비스 망가지고, 개발진만 죽을 듯이 갈려나가야 하는 괴상한 스펙이 위에서 결정되어 내려오는 일도 있었다. 그것도 말도 안 되는 일정이 아무런 협의 없이 꽂히기도 했다. 소위 '개발자 출신' 경영진이었는데도 그런 일은 벌어졌다. 뭐, 현장에서 닳고 닳도록 일하신 분들에게 이런 이야기 정도는 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닐 것이다. 개발이 지옥 되는 건 순식간이니까.


나중에 연재할 회차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이런 일이 벌어지면 참 많은 개발자들이 퇴사한다. 조직이 폭파되는 일을 겪으면서 참 개인적으로도 많은 일이 있었는데, 지금은 수평 문화에 관한 이야기만 해보려 한다. 회사에 속한 개발자는 위에서 이야기했듯, 경영진, 조직장의 행보에 따라 그 운명이 갈린다. 요즘에는 많은 회사가 수평 문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 그걸 잘 유지하는 건 다른 일이다. 사실 직급만 없지, 권력관계는 뚜렷한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조직장에 따라서 수평 문화는 너무나 쉽게 작살이 나기 때문에, 나는 수평 문화를 표방하는 기업이라 해도 사실 좀 회의적이다. 회사 내규로 무슨 장치를 만들어 놓은 게 아닌 이상, 수평 문화는 언제든 망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언제 하고, 회사 일은 언제 하지

3화 "개발이 행복하지 않았냐고요?"에서 언급하기도 했지만, <해커와 화가>라는 에세이는 참 낭만적이다. 적어도 그 당시의 폴 그레이엄은 개발자라는 직업을 정말 예술가로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현업에서 일하는 개발자는 알고 있을 것이다. 회사일로 하는 개발이 그렇게 낭만적일 수만은 없다는 것을.


고객들이 서비스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없을 수 없다.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버그를 해결해야 하며,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계속 개발자가 손을 봐야 한다. 서비스에 따라서는 안정성을 확보하는 일이 무척 힘들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 처하면, 멋진 대시보드를 만들 거나, 신기술을 적용해서 신기한 기능을 선보이는 낭만적인 일은 하기가 어렵다. 폴 그레이엄이 말했던 "화가"의 창의성은 발휘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렇게 업무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지면, 처음에 생각했던 개발자라는 직업의 매력이 확 떨어진다. 창작 활동을 할 수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신기술을 익히는 일도 뒤로 밀리게 되고, 지지부진한 회사 업무만 월급 받으면서 수행하게 된다. (간혹 재미없는 업무는 남에게 미루고, 신나는 일만 하면서 쿨한 척(...)하는 개발자도 있는데, 진짜 그러지 말자...)


업무가 그리 많지 않은 상황이거나, 서비스가 좀 안정화되었다면 개발자들은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창의성을 꽃피울 수 있다. 개발자가 스스로 일정을 조절할 수 있고, 업무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면 얼마든지 예술 활동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상황이 항상 유지되는 건 아니다. 특히 연차가 쌓이면, 그런 문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는데, 그게 쉽지만은 않다. 창의성을 방해하는 것들은 생각보다 훨씬 많다.


먼저, 요즘 같은 불황에 개발 인원이 줄어들면, 남은 업무를 감당하느라 창의성 같은 건 배부른 소리가 된다. 신기술을 빠르게 적용하기는커녕, 당장 터져나가는 이슈를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바빠진다. 그리고 위에서 말했듯, 윗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일개 직원인 개발자는 언제든지 지옥을 맛볼 수 있다. 회사 내규로 "업무 시간 중 6시간만 업무 하시고, 2시간은 하고 싶은 거 하세요. 어기면 해고합니다."라고 정해놓지 않는 이상, 회사 상황에 따라 개발자는 늘 창의성을 위협받는다. 어쩌면 월급 받고 일하는 모든 사람의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르겠다.



회사 다니는 게 그렇지 뭐

아름다운 문화와 자율성, 창의성 등을 꿈꾸던 개발자는 서서히 그렇게 월급쟁이가 된다. 서비스를 운영해야 회사가 돈을 버는데, 누군가는 운영 업무를 해야 하지 않은가. 그나마 문제점을 크게 개선한다던지, 새로운 기술로 기존보다 더 좋은 방식을 적용한다던지 하면 좀 낫다. 하지만 이게 모든 사람에게 오는 기회는 아니다. 지루한 일은 늘 발생하게 마련이고, 재미있는 일은 하고 싶은 사람도 많을뿐더러 결국 누군가는 업무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지루한 일을 떠맡게 된다.


그러다 보면 당연히 묵묵히 서비스를 책임지고 업무를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부당한 윗사람도 꿋꿋이 참고, 회사의 말도 안 되는 논리를 견디며, 그저 월급에 만족하며 회사를 다니게 된다. 운이 좋으면 굉장한 복지를 기대할 수도 있다. 뭐, 연봉과 복지가 무척 만족스럽다면, 사실 좋은 삶이긴 하다. 그렇게 삶을 꾸려가며, 아이들을 키우고 생활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고충이 있고, 힘들긴 해도 가치 있는 삶이니까.


하지만 나는 회사에 길들여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닌 모양이었다. 어째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높으신 분을 견뎌야 하며, 어째서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업무를 하루 종일 해야 하는 걸까? 아무 재미도 없는 일을 평생에 걸쳐하는 게 맞는 걸까? 처음부터 그런 낭만은 없다는 걸 알았다면, 나는 개발자로 먹고살겠다고 결심했을까? 무언가를 만드는 경험에서 오는 즐거움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 걸까? 그런 질문이 나를 괴롭혔다. 놀랍게도 나는 연봉과 복지만으로는 인생을 채울 수 없는, 상당한 낭만주의자인 모양이었다.


게다가 수평 문화의 실상을 몸으로 체감할수록 회의감이 짙어졌다. 어차피 윗사람 마음대로 좌지우지될 처지였다면, 뭐 하러 회사는 수평 문화 같은 달콤한 소리를 한 걸까? 연차가 많아질수록 기만당한 기분이 들었다. 온갖 쿨한 척 다했던 사람의 뒷모습을 보았을 때처럼, 기분이 불쾌했다. 회사의 한 경영진이 IT 회사의 쿨한 모습 - 수평 문화와 퀵 보드를 타고 다니며 재미를 추구하는 문화 - 을 보여주며, 방송에 나오는 걸 봤을 때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런 기만적인 모습을 참고 다녀야 하고, 더러워도 다녀야 하고, 어떻게 피해서 이직한다고 해도 또다시 부당한 일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고 있는 삶을 계속해서 살아야 하는 걸까? 그게 월급 쟁이니까? 아니, 애초에 모든 월급쟁이가 더러운 기분을 느끼며 사는 걸까?


나는 스스로가 말 잘 듣는 순종적인 모범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을 보면서도 회의감이 짙어졌고, 이게 내가 평생을 바쳐서 해야 하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깊어졌다. 20대의 내가 개발자가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는 이런 걸 생각하고 선택한 게 아니었는데. 나는 적극적으로 기존 조직 문화를 타파하고, 자유로움과 창의성을 추구하는 개발자 문화를 동경했다. 하지만 내가 겪은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수평적이고 창의적이라고 믿는 회사의 얼굴들이 열정적인 인재들을 기만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게 나에게 개발을 그만두도록 등을 떠밀었다.


이번 화에서는 개발자를 둘러싼 문화에 대해서, 외부적인 환경에 대해서 길게 이야기했다. 개발자를 둘러싼 환경이 좀 더 나아지면, 어떻게든 나아질 수 있는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회사를 다니고 있는 동료들을 위해, 그런 환경이 조금 더 나아지기를 바라지만, 사실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에 나는 회의적으로 본다. 다음 화에서는 개발자 내부에서 느낄 수 있는 회의감을 다루어 보려고 한다. 개발이 사람을 어떻게 초조하게 만들고 지치게 만드는지, 왜 개발자들은 종종 가면 증후군을 겪는지 이야기해보고 싶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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