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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김 Mar 03. 2024

열정의 주니어는 실리콘밸리를 견학했다

지금의 샌프란시스코는 어쩌면 그때부터 서서히

사실 실리콘밸리에 다녀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다.

개발자를 그만둔 이유 치고는 지나치게 거창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았고, 정의로운 척, 철학적인 척하는 것처럼 보일 듯해서였다. 그런데도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그저 내 마음이 편해지길 바라서이다. 실리콘밸리를 다녀온 건 몇 년 전이지만, 그때 남은 인상과 생각들이 지금까지도 마음에 불편하게 남아있어서 이제야 글로 꺼내본다.


나는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를 다녀와서, 과연 개발자 유토피아, 그러니까 빅 테크 기업에 입사하려는 꿈이 과연 도덕적인가, 하는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정말 쓸데없는 철학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여행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 껄적지근한 기분이 계속 마음속에 남아서, 나는 실리콘밸리에 가려는 꿈을 서서히 접었고, 그게 내가 개발자를 그만둔 이유에 한몫했다.



빅 테크 기업과 노숙자들

벌써 7년 전 일이다.

내가 열정의 주니어였을 때였다. 앞선 화에서 말했듯, 나는 '개발자 갓생'을 살려고 노력했으며, 언젠가 훌륭한 개발자, 돈 많이 버는 개발자가 되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개발자라는 멋진 직업에 취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실리콘밸리에서 억대 연봉을 받는 개발자를 동경하며, 나도 언젠가는 해외에서 활약하는 멋진 개발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실리콘밸리를 견학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났다. 당연하게도 나는 실제 실리콘밸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소문대로 정말 별천지인지, 그런 궁금증을 안고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 여행에는 행운이 많이 따라주었는지 이곳저곳을 탐방할 기회를 많이 얻었다. 여러 테크 기업을 방문할 약속들이 미리 잡혀있었다. 그러니 젊은 개발자 가슴이 얼마나 뛰었겠는가. 아직도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숙소로 향할 때 보았던 그 새파란 하늘을 잊을 수가 없다. 태양이 더 가까이 있는 것처럼 따가웠던 진한 햇빛과 기온까지도 기억한다. 다만 숙소에 짐을 놓고, USIM을 사러 다녀오는 길에 본 수많은 노숙자들이 마음에 걸렸다.


"내 핸드폰 끊겼다고! 영원히! (Permanently!)"


거리에서 그렇게 외치는 노숙자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당시의 실리콘밸리는 그야말로 화려했다. 코로나 이전이었어도, 빅 테크 기업은 돈을 쓸어 담고 있었고 스타트업 투자도 활발하던 시기였다. 지금처럼 대량 해고 바람이 불 거라고는 상상도 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그런데 IT 기술의 첨단에 선 도시에서, 신기술이 쏟아져 나오는 그곳에서, 핸드폰이 끊긴 사람이 있다니. IT와 영원히 단절된 사람이 있다니.


샌프란시스코의 거리 곳곳에는 노숙자가 많았다. 원래도 미국에는 노숙자가 많은 모양이지만, 샌프란시스코의 상황은 조금 특별했다. 당시에 내가 찾아본 바로는, 빅 테크 기업과 스타트업을 위시한 자본이 몰리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집값이 오르고 물가가 올라서, 테크 기업 종사자가 아니면 샌프란시스코에 살 수가 없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억대 연봉을 받는 IT 업계 종사자 때문에, 누군가는 도시에서 쫓겨나야 하다니.


여행 자체는 순조로웠다. 한국인 구글러를 만났고, 페이스북에서 밥을 먹어 봤으며, 에어비앤비의 너무나 예쁜 사무실을 구경했고, 우버 사무실에도 들어가 봤다. 스타트업도 몇 군데 구경했을 정도로 정말 운이 좋은 여행이었다. 나는 기념으로 티셔츠도 사고, 맥북에 붙일 스티커도 모았다.


하지만 직접 실리콘밸리를 견학하겠다는 목적에 맞게 그곳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기도 했다. 선 베드에서 코딩하는 엔지니어를 보고 난 직후에 며칠을 굶은 노숙자를 보는 게 아이러니했고, 우버에서 일어난 성추행 사건에 대해 피해자 탓을 하는 직원도 보았다. 그리고 젊은 나이에 꽤 좋은 경력을 가지고 있던 구글 엔지니어는 개발을 완전히 그만둘 생각이라며, 제빵을 배운다는 말을 해주었다.


물론 좋은 면도 많이 보았고, 고맙게도 친절하게 안내해 주신 현지 한국인 분들께도 정말 감사했지만, 무언가 쎄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적어도 애자일이니, 효율성이니, 자유로운 개발 문화니 좋은 말로 점철된 이미지와는 좀 달랐다. 사람 사는 곳답게 그곳도 갈등도 있고, 나쁜 일도 있는 것 같았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나 같은 여행자가 모든 면모를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실리콘 밸리는 이런 곳이구나, 다 좋은 건 아니구나, 그 좋다는 구글에 들어가서도 그만두는 사람이 있을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그때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들, 무언가 쎄한 느낌들을 솔직하게 적어보려 했으나, 나는 내가 본 것들을 확신할 수 없었다. 그 대단한 실리콘 밸리에 실망했다니, 내가 잘못 생각한 건가? 하는 자기 의심을 지울 수 없었고, 고작 여행자의 시선으로 어떤 결론을 내리는 것은 좀 성급하다고 생각했다.



회의감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노숙자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빅 테크 기업이 만들어낸 노숙자들, 도시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을 보고서도 나는 실리콘 밸리에서 일하고 싶은가? 내가 억대 연봉을 받는 개발자가 되면, 누군가는 집값이 올라서 쫓겨나야 하는데? 그게 내가 추구하는 일인가? 그런 의문이 계속해서 들었다. 개발을 하는 게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물론, 한국에서 일하는 내가 당장 그렇게 대단한 책임감을 느꼈던 건 아니다. 마음속에 '이건 아닌데', '구글에 다니면서 개발을 그만둔다는 게 말이 되나' 하는 의구심은 계속 있었지만, 나는 그래도 해외에서 일하는 멋진 개발자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당연히 빅 테크 기업에 들어가려고 공부를 계속했고, 직접 지원하기도 했으며, 당연하게도 떨어졌다. 정확하게 미리 이야기하건대, 죄책감 같은 대단한 사명 때문에 안 간 것이 아니라, 실력이 없어서 못 간 것이다. 웃기려고 하는 말이긴 한데, 사실 그곳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내가 샌프란시스코나 실리콘 밸리에 죄책감 같은 걸 느낄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지금의 실리콘 밸리나 샌프란시스코 이야기를 들으면, 그때 그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이후에 빅 테크 기업은 엄청난 인원 감축을 했다. '이런 기법을 사용해서 일하면 효율적이에요! 더 생산적이고 멋진 개발자가 될 수 있죠!', '이렇게 코딩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하는 노력을 비웃듯이, 기업은 수많은 직원들을 한 번에 날려 버렸다. 뛰어난 사람만 채용한다며, 직원에게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기업들까지도 자비 없이 몇 천, 몇 만 명을 해고해 버렸다.


샌프란시스코의 노숙자들을 보면서 느꼈던 안타까움, 죄책감 등은 현실화되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심화된 것도 모자라, 코로나까지 덮치니 도시는 초토화되었고, 지금은 부자들이 떠나며 더욱더 빠르게 슬럼화되고 있다고 한다. 관련된 뉴스를 찾아보면, 너무도 처참한 소식에 내가 방문했던 그 도시가 이렇게까지 망가질 수 있나 싶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하늘이 파랗고 햇살이 뜨거웠던, 바닷가 옆 아름다운 도시였는데.


작년 즈음에 읽었던 <언캐니 밸리>라는 책에서는 실리콘 밸리의 실상을 다룬다. 백인 남성 위주의 문화, 극단적인 효율성, 자유를 표방한 방종 등 다양한 문제점이 책에 나와 있었다. 나 같은 여행객이 다룬 이야기가 아니라, 직접 실리콘 밸리에서 일한 작가의 말이니 훨씬 신뢰성 있을 것이다.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이상화된 실리콘 밸리의 뒷모습은 어떤지 알고 싶다면 읽어 봐도 좋을 것 같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회의감의 정체를 조금이나마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가 되긴 했지만, 실리콘 밸리가 나에게 끼친 영향은 이렇다. 나는 실리콘 밸리에서 회의감을 간직한 채 돌아와서, 한국에서 개발을 계속했고, 마음 한 구석에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더 이상 개발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을 때, 이때의 경험도 내 결정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인지 확실할 수 없었고, 엄청나게 이상화된 이미지에 비해 한순간에 추락한 모습을 보자 실망감도 컸다. 무엇보다도 그때 만난 개발을 그만둔 구글러의 모습이 가끔 내 머릿속을 떠돌았다. 그 구글러는 구글뿐만이 아니라, 다른 화려한 경력도 갖고 있었다(자세한 이야기는 그분의 허락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생략한다). 게다가 그 젊은 나이에 개발을 완전히 그만둔다니.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화부터는 조금 더 직접적인 이유에 대해 다루려고 한다. 실리콘밸리에서의 경험이 내 마음속에 은은하게 회의감을 덧칠하고 있었다면, 내가 회사에서 겪은 일들은 분명하게 선을 그어 주었다. 개발자를 꿈꾸는 많은 분들이 생각하는, 정말 좋은 직장인데도 내가 지쳐갔던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참 많은 일이 생각나는데, 하나씩 풀어나가면서 내 마음도 조금씩 가벼워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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