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삼각김밥 뜯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많던데
당신은 한 나라의 왕입니다.
역병과 흉년이 들고 나라가 엉망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신탁을 구했습니다. 신탁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 죄를 저지른 자를 나라에서 추방하라”고요.
아마 당신은 그게 누구인지 알고 있을 겁니다. 맞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당신은 알게 됩니다. 당신이 도적인 줄 알고 살해한 남자는 당신을 버린 아버지였고, 당신이 나라를 차지하고 얻은 아내는 당신의 어머니였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오이디푸스입니다.
당신의 아내는 충격으로 자살했고, 죄를 감당할 수 없는 당신도 직접 자신의 눈을 찔러 멀게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추방하라고 명령합니다.
바로 그때.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오이디푸스, 내가 너의 아버지다.”
이게 과연 어떻게 된 일일까요.
안녕하세요.
마지막 브런치 포스트를 올린 뒤, 거의 1년이 되었습니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아직까지 굶어 죽지 않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늘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해 있으면서도 하루하루를 넘기는 저를 보면 그저 신기할 뿐입니다.
사실 그동안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브런치를 다시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꾸역꾸역 읽고 글을 짜내는 동안, 불현듯 찾아오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네, 어려운 말로는 에피파니(Epiphany)라고 부르는 순간들이 아직 많이 부족한 제게도 찾아왔습니다.
다소 두서없이 책을 읽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그것들이 제 안에 쌓여서 어느 순간 폭발을 일으킬 때가 있습니다.
가벼운 에세이, 소설을 읽었던 날들을 지나 점차 고전을 접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사회, 과학, 문학, 철학 등 다양한 책들을 접했습니다.
그것들은 자연스럽게 뇌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저의 창작으로 이어지기도 했고요.
사전에 의하면, 에피파니는 직관, 통찰이라는 뜻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한순간에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일입니다.
제가 쌓은 지식들이 서로 연결되어 어느 순간 이전보다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되는 것도 일종의 에피파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뿐만이 아니라 사물이나 현상의 이면을 보게 되거나, 생각도 못한 발견을 하는 순간도 에피파니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위의 오이디푸스 이야기는 여러분에게 아주 잠깐이나마 스쳐가는 에피파니를 경험하게 해 드리려고 제가 조금 바꾼 이야기입니다.
이미 오이디푸스에 대한 이야기를 잘 알고 계신 분이라면, 더 흥미롭게 느끼셨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오이디푸스는 알려진 바와 같이 비극으로 끝납니다.
“인간과 운명”에 관한 생각을 던지는 아주 깊은 비극적인 결말이 오이디푸스 이야기지요.
하지만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아주 조금만 바꿔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오이디푸스 이야기는 분명 훌륭한 이야기지만, 살짝 바꾼 결말만으로도 이 이야기는 더 흥미진진해집니다.
오이디푸스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고 이 글을 읽은 당신은 “어?”하고 이후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되죠.
<삼각김밥 에피파니>는 이렇게 부담 없는 짧은 순간에 당신에게 아주 작은 영감과 지적 유희를 주는 콘텐츠입니다.
어쩌면 당신이 제가 만든 새로운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읽은 건,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런 생각이 드셨다면, 부디 너그럽게 삼각김밥만큼의 값어치에서는 최선을 다한 거라고 봐주세요.
하지만 당신이 제 오이디푸스 이야기의 뒷부분을 궁금해하신다면, 생각보다 큰 의미가 숨겨져 있다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릅니다.
만약 당신이 작가라면 기존에 있던 이야기를 이런 방향으로 뒤집을 수 있다는 걸 느낄지도 모릅니다.
만약 당신이 과학을 좋아하신다면 평행 우주나 시간 여행 같은 방향으로 상상하실 수도 있겠죠.
만약 당신이 철학과 문학에 조예가 있다면 “인간과 운명”이라는 기존의 해석을 완전히 뒤집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는 부족한 독서를 하면서 종종 이런 영감을 받았고, 이런 경험을 세상에 전달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가진 지식의 자산이 풍부한 편은 아닙니다만, 어쩐지 저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아깝게 느껴지더군요.
물론 드릴 수 있는 건, 삼각김밥만큼의 신기함과 새로움, 짧은 놀이에 지나지 않겠지만요.
이쯤에서 제가 드릴 수 있는 게 어떤 건지 말씀드리는 것도 좋겠네요.
저는 이공계로 대학을 나왔고,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9년 정도 일했습니다.
완벽한 이과생으로 살았지만,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저는 문학에 끌리고 아무 표정도 없는 과학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가 궁금하더군요.
사회, 문화, 예술, 철학에 관한 책도 가리지 않고 읽는 편이고요.
뭐, 그래봤자 문과생에게 비빌 수 있는 학문적 깊이가 있는 건 아닙니다.
지금은 회사를 다니지 않고 있습니다.
1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집에서 책 읽고 글 쓰는 게 전부인 반백수이기도 합니다.
글을 쓴 경력이라고 해봐야 웹소설 1질을 출간했고, 진지한 SF 작가 지망생일 뿐입니다.
SF를 쓰면서 이과적 지식과 문과적 지식을 합쳐 이리저리 갖고 노는 경험이 제게 많은 에피파니를 주긴 했습니다만….
뭐, 그게 전부이지 특별히 제가 어떤 경력이 있는 건 아닙니다.
제 소개를 드렸으니, 이제 이 삼각김밥을 드실지 말지는 여러분이 결정하실 차례입니다.
삼각김밥은 그리 영양학적으로 좋은 음식은 아니지만, 제가 드리는 삼각김밥은 건강에 그리 해롭지는 않을 겁니다.
상상력을 잠시 깨우고, 생각을 조금 비트는 정도는 건강에 영향을 주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치매 예방에 좋지 않을까요?
무엇보다도 삼각김밥은 바쁜 직장인, 가난한 학생, 결식아동 등에게는 매우 소중한 음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정말 맛있고 좋은 음식들이 많지만, 누군가는 편의점에서 폐기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참치마요 삼각김밥을 가장 좋아하는데요.
아쉽게도 건강상 이제 삼각김밥을 먹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참치마요 맛을 가끔 상상하며 제 허기와 입맛을 달래주던 때를 떠올리곤 합니다.
저는 먹지 못해도 삼각김밥이나 라면은 부디 가격이 오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런 바람을 담아서 <삼각김밥 에피파니>를 연재해 보고자 합니다.
부담 없이 오셔서 아주 작은 지적 즐거움을 즐기고 가시길 바랍니다.
가능하시다면, 백수나 다름없는 제게 후원해 주셔도 좋고요 :)
후원도 좋지만 댓글도 제게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다음 주 예고를 살며시 하고 물러가겠습니다.
즐거운 한 주 보내시고 본격적인 연재로 뵙겠습니다.
“유다, ‘계약’을 파기하고, 이 땅의 소금이 되기를 거부한 자.”
<소금 조각> 실비 제르맹, 13p.
최근에 본 소설 중에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소설의 한 구절을 가져와 봤습니다.
다음 주는 이 문장으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맛있는 삼각김밥을 만들어 볼 테니, 다시 들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