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는 아름답지만, 인간은 질서를 부수기도 한다
화음은 더하기일까 곱하기일까
- <내일 음악이 사라진다면> 양성원, 김민형, 126p.
세상에는 더하기나 곱하기, 또는 다른 사칙 연산으로도 정의되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수학에서도 사칙 연산은 가장 기초적인 연산일 뿐, 다른 연산들도 얼마든지 있지요. 화음은 더하기일까요, 곱하기일까요? 여기서 이 답을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답에 관해서는 이 문장을 인용한 책에 더 자세히 나와 있으니까요.
오늘은 이 문장이 이야기하는 음악과 수학의 관계에서 영감을 얻어보려 합니다.
이 문장이 수록된 <내일 음악이 사라진다면>도 첼리스트와 수학자의 대담을 엮은 책인데요. 첼리스트와 수학자라니 정말 더하기인지 곱하기인지, 아니면 빼기인지 알 수 없는 조합입니다. 다행히 저는 이 책을 무척 흥미롭게 읽어서 그다지 마이너스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음악과 수학이라는 조합은 역사적으로 봤을 때, 그리 낯선 조합도 아니니까요. 오히려 음악과 수학은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음악과 수학에 관한 아주 유명하고 오래된 이야기가 있지요. “만물은 수로 이루어져 있다”라고 말한 피타고라스의 일화입니다. 그가 대장간에서 망치 두들기는 소리를 듣다가, 어떤 소리는 조화로운데 어떤 소리는 그렇지 않다는 걸 느꼈다는 겁니다. 그렇게 피타고라스가 음정의 정수비를 발견하고, 오늘날 순정률이라고 부르는 음계의 기초를 닦았다고 합니다. 물론 대장간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수의 비율이 음정과 관계가 있다는 건 분명합니다.
음정은 주파수를 이용해 쉽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악기마다 음색은 다르지만 같은 주파수를 가진 음은 같은 음이라고 정의할 수 있죠. 주파수의 차이를 이용하여 도(C)와 레(D)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더 복잡하게 들어가자면, 반음(C♯ 과 D♭)을 구분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때도 수학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요. 이에 관해서는 "평균율과 순정률"에 관한 이 링크를 참고해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렇게 수학적으로 음을 정의할 수는 있지만, 최근에 나온 책을 읽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음악 표현은 단순한 정수비에서 약간 벗어났을 때 오히려 더 인상적인 효과를 내며, 그 진가를 발휘한다. 현대의 음향 분석 기술은 음악의 표현력이 음의 변형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예를 들어 경험이 많은 가수나 바이올리니스트의 경우 음을 약간 낮추거나 높여서 소리를 낸다. 이들은 무수한 방법으로 음을 만들어 연주하면서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전달할 수 있다. 음높이의 변화가 전혀 없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완벽한’ 음으로 노래하거나 연주하면, 청자들은 기계적인 소리로 인식하게 된다.
- <수학이 사랑한 음악> 니키타 브라긴스키 48p.
피아노 같은 건반악기는 어쩔 수 없이 조율된 음만을 표현하지만, 바이올린이나 기타 같은 현악기는 현의 길이를 조절해 더 다양한 음을 낼 수 있습니다. 노래 역시 사람이 조절하여 색다른 음을 낼 수 있고요. 그런데 위의 이야기에 따르면 정확하지 않은 음정이 오히려 감정을 잘 전달할 수 있다는 겁니다. 신기한 일이죠. 수를 숭배했던 피타고라스가 알면 불쾌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군요.
서양 음악은 바흐를 거치며 체계적으로 화성학, 대위법들이 정리되고 발전했습니다. 특히 대칭을 절묘하게 활용한 바흐의 음악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역시 후대의 낭만파 음악을 듣다 보면, 위에서 인용한 문장처럼 철저하게 수학적 원리를 적용한 음악만으로는 역시 부족한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기에는 대칭과 정수비처럼 간단한 수학으로는 부족했던 거죠.
그러다가 결국 20세기에 들어오자 큰 사건이 일어납니다. 기존의 화성 진행을 무너뜨리고, 쇤베르크가 12음 기법을 만든 것이죠. 그래도 쇤베르크는 12 음렬이라는 걸 사용해서 수학적으로 음렬을 구성했습니다. 그런데 쇤베르크보다 조금 앞서서 혁신적인 음악이 하나 발표되었습니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그것입니다. <봄의 제전>은 발레 음악으로 1913년에 파리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이 음악은 초연되자마자 폭동에 가까운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건 음악이 아니라 소음이다!”라며 관객들이 항의했으니까요. 아래 영상을 보시면 그 분위기를 느껴보실 수 있을 겁니다.
https://youtu.be/nuW1zdcbMKs?si=Wj9pEZ8rMfVSMLmJ
<봄의 제전>은 특히 불협화음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기존의 질서로 믿어왔던 것들이 깨져버린 것이죠. 당시에는 엄청난 야유를 받았지만, 지금은 음악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조화로움을 깨트린 음악 역시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고, 이전의 음악보다도 더 강렬한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준 작품이니까요.
그렇다면 스트라빈스키가 수학적 질서를 완전히 깨부수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스트라빈스키가 남긴 말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Musical form is close to mathematics — not perhaps to mathematics itself, but certainly to something like mathematical thinking and relationship.”
"음악 형식은 수학에 가깝습니다. 수학 자체에 가깝지는 않지만, 확실히 수학적 사고와 관계 같은 것에 가깝습니다." - 구글 번역
스트라빈스키는 기존의 음악과 다른 새로운 음악을 만들었지만, 음악 안에 수학적 구조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았습니다. 신기한 일입니다. 조화로움을 깨뜨린 그가 음악과 수학이 관계가 있다는 걸 진지하게 믿었으니까요.
피타고라스에서 바흐, 스트라빈스키에 이르기까지 음악과 수학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것 같습니다. 단편적으로 생각해 보면, 어쩌면 우리는 수학적 질서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걸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동시에 엄밀한 음정에서 벗어난 음에서 감흥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우리의 미학적 감성은 본능적으로 질서를 찾는 걸까요?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새로운 예술은 언제나 기존의 형식을 전복하면서 발전하곤 했으니까요. 만약 우리가 질서를 찾는 걸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그 생각을 전복시켜서 무질서도 예술이 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잭슨 폴록이라는 화가는 물감을 흩뿌리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아래에 첨부한 이미지는 그의 작업장에서 나온 것입니다. 저작권 때문에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올 수는 없었지만, 이 이미지로도 그의 방식이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잭슨 폴록의 그림은 유명한 작품이 많으니 한 번 찾아서 감상해 보셔도 좋을 겁니다.
이렇게 물감을 흩뿌려 ‘우연성’을 강조한 그림에서조차 과학자들은 질서를 찾아냈습니다.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에서는 본격적으로 잭슨 폴록의 그림을 다루고 있는데요. 그의 작품이 프랙탈 구조를 따르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합니다. 이걸 보면, 기존의 질서를 벗어나서 찾은 아름다움 마저도 결국 수학적 패턴이 따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인간은 수학적 질서를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존재로 진화한 건 아닐까요?
그렇다면 미래의 예술은 어떻게 발전할까요?
우리는 또다시 수학적 패턴을 깨부수고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할 겁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 역시 어떤 수학적 패턴을 따르게 될까요? 그렇다면 왜 인간은 수학적 질서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들어진 걸까요? 정말 그렇다면 왜 기존의 아름다움을 벗어던지고 계속해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걸까요?
질서와 아름다움, 수학과 예술의 관계에서 우리는 오묘한 선후관계를 느끼게 됩니다. 마치 닭과 달걀의 관계처럼 수학과 예술의 관계는 서로 앞서거나 뒤서지만,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는 없는 것처럼 보이죠. 오늘의 에피파니는 수학적 구조와 예술의 관계에 대한 당신의 감흥입니다. 만약 당신이 창작자라면 당신의 작품을 만들 때 수학적 구조에 대해서 고민해 볼 수도 있을 겁니다. 또는 이미 나와있는 질서를 깨뜨려 보는 걸 생각해 볼 수도 있겠네요. 모쪼록 오늘의 이야기에서도 작은 영감과 가벼운 지적 즐거움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는 드니 빌뇌브의 영화 <컨텍트>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아래는 간단히 발췌한 영화 대사입니다.
"Language is the foundation of civilization. It is the glue that holds a people together. It is the first weapon drawn in a conflict."
"Even if it's wrong." "It's wrong?"
"Well, the cornerstone of civilization isn't language, it's science."
"언어는 문명의 초석이자 사람을 묶어주는 끈이며, 모든 분쟁의 첫 무기다."
"비록 틀렸지만." "틀렸다고요?"
"문명의 초석은 언어가 아닌 과학입니다."
번역 출처 - 넷플릭스 자막
아마 눈치채셨겠지만, 다음번에는 “언어”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그러면 다음 주도 흥미로운 에피파니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