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대로 생각할까, 생각하는 대로 말할까?
드니 빌뇌브의 영화 <컨택트>가 넷플릭스에 들어왔더군요.
SF 팬으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엄청난 SF 명작,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원작이거든요. 영화를 다시 봐도 좋지만, 원작 또한 여러 번 읽어도 매번 놀라운 작품입니다. 오늘은 이 작품을 가볍게 소개하며 시작해 보겠습니다.
영화와 달리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는 빛이 수면에서 굴절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빛은 왜 굴절하는 걸까요? 굴절하지 않고 직진하는 편이 더 단순한 경로인데 말이죠. 물리학적으로 풀어보면 빛은 굴절하는 편이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최소 시간의 원리”죠. 여기서 수식을 늘어놓지는 않겠습니다만,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빛은 어떻게 직진하는 것보다 굴절하는 것이 더 빠르다는 걸 알고 있는 걸까요? 빛이 경험을 축적해서 “최소 시간으로 가자!”하고 결정할 수 있는 존재도 아닌데 말입니다.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면, 일반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우리는 보통 “원인이 결과를 만든다”는 방식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빛은 마치 “결과는 정해져 있고, 결과를 향해 가는 경로 역시 정해져 있다”라고 말하는 듯하죠. <네 인생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외계인은 이런 방식으로 사고합니다. 그리고 이 외계인들의 언어에는 이런 사고방식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죠. 언어학자인 주인공은 이 외계인의 언어를 배웁니다. 그러자 그녀는 신기하게도 그 외계인과 같은 방식으로 사고하게 됩니다.
사고방식이 변한 주인공이 어떤 일을 겪게 되는지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말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는 외계인의 언어가 주인공의 사고방식을 바꿨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봅시다.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 이 말은 사피어-워프 가설이라고 알려져 있죠. 이 가설에 따르면, 우리는 사용하는 언어의 틀 안에서 사고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恨)”, “눈치”라는 우리말은 번역하기 까다로운 말이라고 합니다. ‘한이 서리다’ 같은 문장을 단순히 원통하거나 슬프다는 말로는 번역할 수 없을 겁니다. 눈치를 보는 문화가 아니라면, ‘눈치’라는 말에 담긴 분위기나 압박감을 깨닫기 어렵겠죠. 반대로 우리말로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도 있습니다.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라는 책에는 번역하기 어려운 각 나라의 단어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러시아어로 разлюбить(Razliubit)의 뜻은 “사랑의 단꿈에서 깨어났을 때의 달콤 쌉싸래한 기분”이라고 합니다. 우리로서는 어떤 뉘앙스인지 알기 어려운 단어죠. 하지만 러시아어를 쓰는 사람들에게는 разлюбить 의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을 겁니다.
이처럼 사피어-워프 가설에 의하면, 언어는 문법체계와 단어로 굳어진 그릇처럼 보입니다. 사고는 마치 언어라는 그릇에 담긴 물과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는 그릇의 형태에 맞춰서 사고한다는 거죠.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스티븐 핑커의 <언어본능>이라는 책에서는 위의 사피어-워프 가설을 반박합니다. 만약 사고가 정말 언어에서 생겨난다면, 어떻게 아기들이 언어를 배울 수 있겠냐고 하죠. 심지어 아기들은 언어를 배우기 이전에도 간단한 연산을 할 줄 안다고 합니다. 생후 5개월 된 아이를 대상으로 인형의 개수를 가지고 실험을 한 결과도 보여주면서요. 즉, 언어를 배우기 전에도 인간은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겁니다.
핑커는 물리학자들을 예로 들면서 그들의 사고는 언어라기보다는 기하학적이라는 말을 합니다. 특히 가장 유명한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은 광선을 타고 여행하면서 시계를 돌아보는 모습이나, 추락하는 엘리베이터에서 동전을 떨어뜨리는 모습을 상상했다고 합니다. 어떤 수식이나 언어 형태로 정리하기 전에 이런 시각적인 이미지가 선행되었다는 것이죠. 아인슈타인뿐만 아니라 벤젠의 육각형 모양이나, DNA의 나선 구조 등도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고, 언어로 정리된 건 그 이후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고에서 언어가 생겨난 걸까요? 아니면 언어가 사고를 규정하는 걸까요?
저는 언어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위의 문제에 답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제 추론을 얘기해 보자면, 태어날 때부터 인간은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언어를 배우면서 사고가 확장되기도 하고 규격화되기도 하는 게 아닐까요? 예를 들어, 어린이들은 이미 간단한 계산을 할 줄 알지만 숫자와 사칙연산을 배우면서 수학적인 개념을 더욱 발전시킬 겁니다. 책을 읽으면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할 수도 있고요. 반대로 ‘눈치’라는 단어를 배우면서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배우기도 할 겁니다. 법이나 규율 같은 것도 익혀야 할 테고요.
<알쓸별잡>에서 김상욱 교수님이 1920년대를 동경하시는 걸 봤습니다. 그 시기에 물리학은 물론 미술,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에 그 당시 사람들이 주고받은 영향을 체험해보고 싶다고 하시면서요. 저는 언어가 없었다면 그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어쨌든 언어로 표현해야 하니까요. 당시의 충격적인 그림이나 음악도 물론 영향을 주었겠지만, 기본적으로 아이디어를 교환할 때는 언어를 사용했겠죠.
언어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만 영향을 주는 게 아닙니다. 문자로 기록된 언어는 후대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기록한다는 것은 문명을 이룩하는 아주 중요한 사건입니다. 언어가 있기에 우리는 지난 세기의 사람들의 경험과 지혜를 넘겨받아 오늘날에 그것을 기반으로 사고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사고를 촉발하려면 기존에 만들어진 언어가 자극을 줘야 하는 거죠.
또한 언어라는 그릇은 늘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단어도 변하고 문법도 변합니다. 새로운 단어가 생기고 쓰지 않는 단어는 사라집니다. 언어 또한 사고의 영향을 받아 계속해서 모습을 바꾸는 거죠. 저는 바뀐 언어가 다시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영향을 주며 계속해서 인간의 사고방식을 바꾸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브리 음악감독으로 유명한 히사이시 조와 뇌과학자 요로 다케시의 대담집 <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시각은 시간을 인식하지 못하고, 청각은 공간을 인식하지 못한다고요. 시각과 청각의 전혀 다른 세계를 뇌에서 이어주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언어가 생겨났다는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인간은 언어를 가짐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하나의 세계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생겨난 언어가 한 사람, 또 다른 한 사람에게로 전파되며 점차 문명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면 신기합니다. 사람들이 자연을 보고 상상한 신화는 이야기로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이어서 철학이 발달하고 사회가 발전합니다. 수와 논리 역시 누군가에게 언어로 전파되었을 것이고, 어느 순간부터 추상적인 수학과 과학의 개념들도 문자로 쓰였겠지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수학의 기호들도 그렇게 문자로 남겨져 전해졌을 겁니다.
우리의 감각에서 시작된 사고가 언어가 되고, 그 언어는 또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 오늘에 이른 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새로운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행을 가거나, 미술, 음악, 영화 등을 보며 감각을 일깨우는 방법도 무척 필요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언어활동을 해야만 합니다. 단순히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누군가가 이미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연구를 했다는 걸 알면 사고할 것들이 훨씬 더 많아집니다. 그러고 나서야 왜 지구가 도는지, 사과는 왜 지구를 향해 떨어지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같은 문장은 박제의 뻣뻣함과 천재의 탄식이 어우러진 기묘한 아이러니를 느끼게 합니다. SF 소설은 우리를 가보지 못한 곳에 데려가고, 보지 못한 것을 보여줍니다. 언어는 이런 방식으로 다른 이의 경험과 상상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새로운 사고를 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말하면 아래 <컨택트>의 한 장면에 대한 답이 되겠지요. 아래는 영화 속의 언어학자와 물리학자의 대화입니다. 물리학자가 언어학자가 쓴 책을 읽으면서 하는 말이지요.
"Language is the foundation of civilization. It is the glue that holds a people together. It is the first weapon drawn in a conflict."
"Even if it's wrong." "It's wrong?"
"Well, the cornerstone of civilization isn't language, it's science."
"언어는 문명의 초석이자 사람을 묶어주는 끈이며, 모든 분쟁의 첫 무기다."
"비록 틀렸지만." "틀렸다고요?"
"문명의 초석은 언어가 아닌 과학입니다."
번역 출처 - 넷플릭스 자막
문명의 초석은 언어일까요, 과학일까요?
제가 내린 결론과 여러분의 답은 다를 수도 있을 겁니다.
오늘의 에피파니는 여러분의 사고는 다른 사람과 이어질 때, 더 강력해질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문명이 발전해 온 방식이 그러했듯이, 당신의 언어도 누군가의 우주를 바꿀 수 있을 겁니다.
이미지를 보고 어떤 것이 떠오르셨나요?
여러 가지를 생각나게 하는 이미지라서 아마 제가 생각한 것과 여러분이 떠올리시는 것이 다를 겁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공(空)하고, 공한 것 또한 세상의 만물과 같나니.
어디서 들어본 말 같지 않습니까?
다음 주는 위의 문장으로 시작해 보려 합니다.
그럼, 무언가 심오한 에피파니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