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지 않는,
이 여행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여행을 주제로 한 책을 여러 권 읽었다. 돈과 시간을 들여 가는 것이니만큼 이 여행이 나에게 의미 있는 어떤 것을 남겼으면 좋겠다는 바람, 아니 더 솔직하게는 돈과 시간을 투자하기에 의미가 남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그래서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박완서의 <모독>, 알베르 카뮈의 <여행 일기>, 유지혜의 <쉬운 천국> 들을 읽었다. 모든 책들이 저마다의 가르침과 생각할 거리를 주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나는 교과서처럼 열심히 읽었다.
그 책에서 발견한 어떤 구절은 특별하게 각인되었다. 저자는 유명한 화가나 작가 등의 삶이나 말을 인용하여 자신의 생각과 이야기를 풀어 나갔는데, 그가 소개한 것들 중 영국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1770~1850)의 시 <서곡>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우리의 삶에는 시간의 점이 있다.
이 선명하게 두드러지는 점에는
재생의 힘이 있어
이 힘으로 우리를 파고들어
우리가 높이 있을 때는 더 높이 오를 수 있게 하고
우리가 쓰러졌을 때는 다시 일으켜 세운다.
윌리엄 워즈워스는 자연 속 어떤 장면들은 우리에게 평생 동안 기억되고, 기억에 떠오를 때마다 힘을 주며 힘들 때면 우리를 일으켜 세운다고 했다. 그리고 그 경험을 ‘시간의 점(spots of time)’이라고 불렀다. 내가 단순히 ‘기억에 오래 남는다’, 혹은 ‘잊을 수 없다’ 등으로만 표현해 왔던 것을, 누군가는 ‘시간의 점’이라고 불렀다.
가만히 지난날 나의 ‘시간의 점’을 떠올려 봤다. 오랫동안 기억되면서 떠오를 때마다 나에게 힘을 주는 순간. 높이 있을 땐 더 높이 오르도록 하고, 힘들 땐 다시 일으켜 세워 주는 순간. 그러자 엄마, 아빠, 언니, 동생과 함께 한겨울 소양에서 했던 캠핑, 바닷가에 자리 잡고 남자친구와 함께 순대와 맥주를 먹었던 진도의 오후, 그리고 사방이 유리창인 포르투갈의 숙소 안에서 파란 나뭇잎들에 둘러싸여 책을 읽었던 아침이 떠올랐다. 그 장면들은 의식적으로 기억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자꾸 떠오르고, 떠오를 때마다 애틋하게 행복한 감정을 가져다주곤 했다.
이렇듯 어떤 장면들은 무심히 흘러가 버리지 않고 하나의 시간의 점이 되는데,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아마 어떤 순간이 그것을 겪는 누군가의 감정과 정서와 끈끈하게 결합되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 힘을 주는 시간의 점들도 저마다 내 감정과 연결되어 있는데,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주는 행복감과 편안함, 꾸밈없이 다니며 원하는 대로 행동할 때의 자유로움, 자연으로부터 느끼는 넉넉함 같은 것이 그렇다.
여행을 하는 동안에도 분명 내게 시간의 점이 생길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아마 또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은 채로 때로는 애틋하게, 때로는 행복하게, 때로는 그립게, 때로는 힘이 솟게 만들 그런 시간의 점이 생긴다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그곳은 브루클린의 한 지하철역이었다.
그날은 비가 오던 날이었다. 뉴욕은 내가 있는 동안 거의 매일 화창하고 쾌적한 날씨를 보여 주었는데, 그날은 저녁을 먹는데 갑자기 천둥이 치더니 비가 무서운 기세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때 내가 앉아 있던 곳은 야외 좌석이었다. 다행히 천막 안의 자리라서 비를 맞진 않았지만 우산이 없었던 나는 집에 어떻게 가나, 불안해하며 빗줄기가 가늘어지는 타이밍을 보고 있었다. 게다가 그땐 애석하게도 핸드폰의 데이터가 되지 않는 날이었기 때문에 집으로 가는 방법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빗방울이 조금 사그라들었을 때 계산을 마치고서 나왔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비가 오는 거리를 종종걸음 치며 돌아다니다가 가까스로 지하철역을 하나 발견해 곧장 들어가, 와이파이를 연결해 집으로 가는 열차를 찾아 탈 수 있었다.
그때 난 브루클린에서 지내고 있던 중이었다. 열차는 나를 브루클린의 역에 데려다주었다. 열차에서 내릴 때 즈음, 난 당연히 뉴욕의 평범하고 지저분한, 어두컴컴한 실내의 역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늘 그런 역을 거쳐 다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것은 비에 젖어 촉촉해진 나무와 한적한 야외의 승강장, 나무로 된 지붕, 작고 아담한 역 내부에서 새어 나오는 주황색 불빛이었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거세게 쏟아지던 비는 이미 그친 뒤였다. 대신 빗물이 적시고 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공기와 촉촉하게 젖은 풀 내음, 퇴근 시간 조용하고 분주하게 발걸음을 움직이는 몇 명의 사람들만이 승강장에 있을 뿐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다른 세계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가 터널을 통과하자 갑자기 신들의 세계에 들어가듯, 내가 열차 안에 들어가 있는 사이 세상이 바뀐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오묘한 감정이었다. 왠지 그 승강장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열차는 내가 거기 한참을 서 있다가 떠날 때까지도 출발하지 않고 있었다. 운전석의 조종사가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열차에 타는 사람들을 살피고 있었을 뿐이었다. 아마 그 열차는 왔던 방향으로 다시 향하는 열차였던 것 같다.
바깥으로 나왔을 때, 잠시 뒤돌아서서 그 독특하고 작은 역의 출입문을 돌아다봤다. 일반적인 지하철 문 같지 않게 초록색이었다. 그 안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주황빛의 조명이 밝혀져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자꾸만 뒤돌아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집으로 향하는 10분 동안, 어두운 초록색의 나무들과 거짓말처럼 갠 하늘, 구름 사이사이를 연하고 진하게 칠한 노란 빛깔, 그 빛에 슬그머니 따라 물든 건물, 그리고 저마다의 속도로 걸어가는 사람들 사이를 걸었다.
그 저녁은 그저 평범하게 저무는 어떤 날 중 하나일 뿐이었지만 난 그게 시간의 점으로 남을 것이란 걸 직감했다. 영원토록 머물고 싶은, 시간이 흘러도 빛깔 하나 잊고 싶지 않은, 냄새마저 간직하고 싶은 시간의 점. 여기서 얻은 힘으로 또 살아가겠구나,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