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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산수 Mar 11. 2024

[D+369] 저더러 '이기적인 엄마'래요

이기적인 엄마의 자책 일기

요즘 '이기적이다'라는 말에 대해 매일 생각한다. 이기적이란 말의 정확한 뜻을 찾아보니 '자기 자신만의 이익을 꾀하는'이라는 뜻이란다. 살면서 간간히 동생들에게 '이기적이다'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기적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넘겨왔다. 그러나 퇴사를 하고 나서도 악착같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내 일을 한 뒤 늦게 하원시키는 나를 보며 내가 남들보다 이기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외에도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느껴졌던 순간이 몇몇 있었는데,


1) 아이 신발을 살까 말까 망설이던 차에 마음에 드는 내 옷을 발견해 격하게 구입하고 싶었을 때

(*이기적이란 말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던 순간이라 둘 다 사지 않기로 결심함)

2) 직장인 시절, 토요일 아침마다 아이를 아빠에게 안겨주고 악착같이 운동을 갈 때  

3) 아이 이유식은 힘들다고 포기했으면서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기 위해 장보러 갈 때


요즘은 등원 준비를 하면서 내가 이기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장 길게 한다. 회사를 다닐 때 6시에 일어나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잠에서 깬 아이를 마주했다. 그러나 퇴사 후에아이 방에서 나란히 잠들고 알람 없이 눈을  1시간이나 더 늦게 준비를 시작한다. 부랴부랴 씻고 나오면 아이가 일어났다고 신호를 보낸다.


그럼 나는 젖은 머리를 대충 수건으로 말아올리고 아이를 안아 올려 곧장 옷방으로 간다. 드라이기로 장난을 치며 머리를 말리고 분주하게 준비를 시작한다. 중간 중간 아이가 안아달라고 할 때는 화장품 파우치를 주면서 탐색하게 하거나 옷이 가득 담긴 서랍을 열어주는 것이 나만의 시간끌기 노하우(?)다. 아이가 새로운 것에 잠시 흥미를 가지는 동안 나는 마음 속으로 미션 임파서블 노래를 틀어놓고 화장하고 옷을 입는다. 눈썹을 디테일하게 그릴 수는 없어도 눈썹을 악착같이 그리려 하는 내 모습에, 애가 칭얼댐에도 '잠깐만' 하면서 블러셔를 퍽퍽 찍어바르는 내 모습에서 이기적인 면모를 본다. 그리고 자책하면서도 그 행동을 빠뜨리지 않고 매일 반복한다. 이게 이기적인 사람이 아닐까? 매일 밤 내일은 출근할 때처럼 6시에 일어나자고 다짐해보아도 다음 날 눈을 뜨면 7시 20분이다. 그렇게 난 오늘도 나는 '잠'을 택한 '이기적인 엄마'가 된다. 


요즘 들어 부쩍 나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 아이를 보면서 더욱 더 '이기적'이란 단어를 지울 수가 없다. 난 아이와 사이가 좋다고 느끼지만 하루종일 옆에 있어주는 엄마에 비하면 유대감은 턱없이 모자라겠지?  내가 엄청난 잘못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육아휴직 때처럼 1년간 일하지 않고 아이와 온전히 시간을 보낼까 하다가도 과감하게 그런 결정을 하지 못하는 자신을 또 자책한다. 나는 대체 일이 뭐라고, 이 놈의 일을 왜 그만두지 못하는 것일까?


간단히 말하자면 '돈' 때문이고, 복잡하게 말하자면 '다시 일하지 못할까봐 두려운 마음' 때문이다. 남편의 월급으로는 우리 세 식구가 먹고 살기가 충분치 않다. (최고점에 산 집 대출금, 그놈이 문제다.) 허리끈을 조이다 못해 부러지지 않으려면 부가 수익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인데, 알바를 할 바에는  일을 하는 것이 여러모로 옳은 결정이었다.


그런데 내가 일하겠다는 것에는 돈 외에 더 큰 마음이 포함되어 있다. 바로 '자아실현'이다. 이 강력한 마음은 나의 엄마로부터 왔다. 우리 엄마는 1964년생으로 공부는 물론 센스, 일머리가 뛰어나고 남들보다 습득력도 빠른, 못 하는 것이 없는 일명 인재였다. 그런데 가정 형편상 대학까지 갈 수가 없었고 여상을 나와 작은 기업에 다니다 아빠와 결혼하면서 사업을 뒷받침하는 역할로만 자리했다. 엄마는 단 한번도 나에게 크게 되라고 부담을 준 적이 없었지만 난 항상 지쳐있는 표정의 엄마를 보면서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내가 좋은 성적을 받거나, 상을 받으면 환하게 바뀌는 엄마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서 계속해서 잘 해야겠다고 나도 모르게 책임감을 가졌던 것 같다. 그때부터 이어온 마음이 엄마가 돌아가신 지금까지도 내게 이어지고 있다.


엄마의 창창한 미래가 나에게 쓰여졌으니 내가 그 몫을 해내야 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러한 생각이 건강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엄마 역시 내가 이런 책임감을 느끼길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아직까지 떨쳐내기는 어려운 생각이다.


그리고 낳은 내가 생기없는 엄마를 닮아갈까봐 그게 두렵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엄마는 콧방귀를 뀔지도 모른다. '이기적인'이라는 단어와 대척점에 있는 우리 엄마와 나는 성향부터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난 애초에 '욕심 많은' 인간이다. 그래서 희생적인 엄마처럼 되려고 노력해도 애초에 될 수가 없다. 그렇다.

나는 이제 나를 인정하기로 한다. '이기적인'이라는 표현은 좀 그렇고 '욕심많은' 사람이라고 해두면 어떨까. 누구나 욕심을 내는 분야가 다르겠지만, 나는 '매일'에 욕심을 내는 사람이다. 깨끗하게 잘 씻고 예쁘게 화장하고 새 옷을 입고 하루를 시작하고 싶고, 아침에는 맛있는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싶고, 활력이 돌기 위해 운동도 하고 싶다. 그리고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일자리도 찾아 일하고 밤에는 조금이나마 책 읽을 수 있는 시간도 갖고 싶다.

엄마가 되었음에도 이 모든 것들을 '욕심 내는' 나는 '욕심 많은' 사람이다. 그래도 욕심이 많아서 아이와 놀 때도 욕심내서 놀 수 있을만큼 놀고, 웃을 수 있을만큼 웃는다는 장점도 있다는 것,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이 글을 시작하면서 나는 진짜 '이기적인 사람인가?'에 대한 결론을 내보고 싶었는데, 결국 '이기적인'이란 단어 대신 '욕심 많은'이란 수식어를 얻게 되었다. 이기심과 욕심은 한 끗 차이인 것 같다. 욕심은 부려도 이기적이지는 않은 엄마가 되기로 결심하는 밤이다.


(ps. 글에 올릴 내 사진 한 장이 없다... 갤러리엔 온통 아이 사진뿐이다... 그럼  그렇게 이기적인 엄마는 아니지 않나?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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