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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산수 Mar 07. 2024

[D+355] 신은 나의 재주를 알아봐주지 않을까

혼자서는 오래 못할 거 같아요...

간호사를 때려치고 싶은 동생이 대뜸 신점을 보러 가지 않겠냐 물었다. '돈 내고 좋은 얘기 들으러 가는 거 아냐?' '이상한 얘기하면 괜히 멘탈이 흔들릴 것 같은데?'와 같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던 나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 동생을 따라나섰다. 퇴사하고 매일 카페로 출근해 내가 만든 채널을 키우면서 '이렇게 해서 내가 될까'라는 불안감에 압도 당해있었던 나는 '계속 하세요 성공할 겁니다'라는 말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칼바람을 맞으며 신논현역 인근에 위치한 점집으로 향했다. 우리를 맞이한 남자분은 박카스를 건네며 무당이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문을 열자 왼쪽 한켠에 초들이 잔뜩 켜져 있고 벽에는 사방으로 할머니 한복들이 잔뜩 걸려있었다. 동생 옆에 꼭 붙어있던 나는 평범한 인상의 중년 무당 아저씨를 보고 마음이 좀 놓였는데, 그옆에 굽 높은 꽃신은 계속 봐도 적응되지 않아서 그 방에 있는 내내 흘끔흘끔 쳐다보게 되었다.

숨을 고르고 이야기 하고 싶어 동생에게 첫 타자를 넘겼다. 20분 쯤 지났을까, 더 궁금한 것이 없다는 동생의 말과 함께 내 차례가 되었다. 생년월일, 이름을 말하고 결혼 여부를 물은 뒤 남편의 생년월일, 이름을 얘기했다. 뒤이어 출산 얘기가 나왔고 아이의 생년월일, 이름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러더니 무당 아저씨는 대뜸 아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딸인데 아들 역할을 할 것이다, 굉장히 독립적이고 욕심이 많고 이기적인 구석도 있다, 애 잘 키우면 부모가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 와 같은 이야기였다. 허당에, 에너지도 크지 않은 내가 유별난 딸을 잘 케어할 수 있을까 자신감이 부족했던 나는 알아서 잘 할거라는 말에 안도감이 들어 기분이 내심 좋았다. 

이제 내 이야기 좀 해주시는 건가 했더니 곧이어 무당 아저씨는 묻지도 않은 남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셨다. '돈 복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마흔 이후에 경제적으로 잘 풀릴 것이다' 등 가장이 듣기 좋을만한 얘기들이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일을 계속 하고 싶은데 할 수 있을지 물었다. 무당 아저씨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애기가 떨어지지 않으려 해서 안 된다 말했다. 이 무당이 할머니 신을 모셔서 단호박인 걸까? 생각이 들던 찰나, 무당 아저씨가 갑자기 방울을 잡더니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넌 일 안 하면 우울증이 들어오는 게 보이네, 너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안정감을 느끼면서 살겠어'라고 하면서 다시 일하기를 권했다.

상황적으로 때려맞춘 듯한 이야기에 실망감이 몰려오던 찰나 옆에서 보다 못한 동생이 '(언니) 혹시 글 쓰면 잘 될까요?'하고 물었다. 무당 아저씨는 '글 써도 되는데 오래 걸릴 거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스타일이라 여행 에세이처럼 한 분야의 기록을 취미로만 꾸준히 하는 건 어떠냐?'라고 말을 덧붙였다. 눈이 희번덕해지면서 '무조건 글 써라 성공한다'라는 말을 듣게 될 줄 알았는데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 판단이 들어간 멘트에 나는 짐짓 실망했다그뒤로도 미적지근한 말을 듣고 이도 저도 아닌 기분으로 점집을 나왔다. 


아이와 남편이 잘 된다는 말을 듣고 나왔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씁쓸했다. '신은 나의 재주를 알아봐주지 않을까' 기대했던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이렇게 실망한 내 자신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나에 대한 확신을 남에게 돈 주며 들으려고 한 내 모습이 웃픈 포인트 1, 기대한 말마저 듣지 못하고 잔뜩 실망해버린 내 모습이 2차 웃픈 포인트였다. 동생은 꽤나 잘맞은 점궤에 후련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왜 이렇게 기운이 없는지 물었다. '언니 자리 있다잖아 일 다시 하면 되지',  '누가 일자리 없을까봐 그러냐 동생아' 속도 모르고 동생은 위로를 건네기 바빴다. 


집에 와서 무당 아저씨 말을 계속 곱씹었다. '글 쓰는 건 네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테니 취미로 해봐라' 그 말은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었지만 나는 꽤나 그말에 꽂혀 있었다. 내가 남들보다 스트레스에 취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 아니냐고 치부하기에는 내가 글만 쓸 자신이 없었으니 그 말이 와닿은 것일 것이다. 

퇴사 직전까지는 자기계발서나 유튜브 등 타인의 영웅담을 보며 '나도 할 수 있다'라는 패기가 가득했다. 나도 그들처럼 내 채널로 홀로서기에 성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난 (남들보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편이라 안 돼', '난 쫄보라 위험을 담보하는 큰 도전은 못 할거야', '난 성과가 즉각즉각 나지 않으면 금방 지쳐버릴거야' 등 그 길로 들어서면 안 되는 이유를 먼저 찾는다. 

지친 마음이 아직 회복되지 않아서 그런 것일수도 있지만, 전처럼 내가 가진 성향을 무시한 채 무턱대고 덤벼들고 못 버틴다고 스스로 채찍질하는 것을 멈추고 싶어 그렇다. 나를 제대로 알고 효율적으로 나를 굴리는 법을 체득하고 싶다. 그러면 '이것도 못해?'와 같이 나를 비난하지 않고 한계를 인정하며 나와 좋은 사이로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은 신세 한탄 글이니 여기서 좀 더 유약한 소리를 해보자면, 오래 전부터 혼자만 해오던 생각인데 나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잘못 장착된 부품 같다. 영혼의 에너지는 200%인데 몸이 70%밖에 소화하지 못해서 과부하가 걸리는 불량품 말이다. 지금까지는 영혼의 에너지에 맞춰 몸을 혹사시키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과부하가 오지 않도록 몸의 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내 몸이 200%를 소화하는 하드웨어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은 영혼의 에너지에 휩쓸리지 않고 천천히 속도 조절을 하며 나에게 묻고 있다. '무엇을 하며 살고 싶니?' 하루 아침에 나오는 답이 아니다. 매일 성실하게 고민하며 움직이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일 것이다. 일 하며 자아실현도 꿈꾸는 철 없는 엄마는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무당 아저씨처럼 내 안의 방울을 흔들어본다.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 돈 버는 내 모습, 전보다 절실하게 내 채널을 키우는 모습 두 가지가 어렴풋이 보인다. 나는 현실과 어떻게 타협하고, 또 어떻게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고 살아갈까? 딸랑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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