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탄산수 Feb 20. 2024

[D+349] 퇴사한 다음 날 출근한 이유

퇴사해도 일은 계속 된다~

퇴사

지난주 금요일,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5년 넘게 일한 회사를 나왔다. 이전 에피소드들에서 쓴 것처럼 직무에 대한 고민도 컸고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하는 팀 내 시스템에서 살아남을 자신도 없었다. 퇴사를 결정하기까지, 그리고 퇴사일을 받아놓고도 수천 번 마음이 팔락거렸다. '이직하고 그만둬야지 너 진짜 갈 데 없을지도 몰라', '4월까지 버티면 육아휴직 사후지급금 375만 원도 받을 수 있잖아 그것도 못 버티니?' 내 안에서 끊임없이 싸웠다. 그러나 나는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원래 인간은 본능적으로 안정적인 환경을 찾으려 한다고 주워들은 게 있어 그런지 내 마음이 불안해하는 결정이 더 나은 선택이라 믿기로 했다. 375만 원으로 내 시간을 산 거라 생각하면 그렇게 나쁜 결정도 아닌 것 같다.


마지막 퇴사 면담에서 대표님은 나에게 일하지 않을 수 있다면 아이와 온전히 시간을 보내는 것도 추천한다고 하셨다. 본인도 3교대 하는 아내를 대신해 아이를 키워서 고 3이 된 딸과 지금도 팔짱을 끼고 다닌다고, 그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단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귀중한 말씀이었다. 회사원일 때보다 단하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없는 시간을 쪼개 내 길도 찾아나가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지혜로운 길이 아닐까 싶다. 미래의 단하를 키우기 위해 시간을 유동적으로 쓰며 돈벌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다. 적금과 퇴직금이 바닥날 때까지 반드시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그럼에도 출근

퇴사하고 다음다음 날이었던 지난 주 일요일, 나진이와 한 달 전 예약해 둔 데스커라운지에 다녀왔다. 데스커라운지는 일하는 사람들이 와서 각자 일하고 또 우연한 계기로 연결되는 사무 공간이었다. 엊그제 퇴사한 사람이, 그것도 일요일에 출근한다는 것이 웃겼지만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과 관련된 고민이 담긴 선 후배의 편지를 읽으며 많은 위안을 얻어서 친구들에게도 공유하고 싶었다.


나무도 한계를 맞이하는 날이 있어요.
운 좋은 나무는 안목 있는 정원사를 만나
그동안 나를 키워줬던 상토에서 벗어나 분갈이를 하죠.
더 운이 좋은 나무는 나에게 적합한 자연에 심어지기도 하고요.
그렇게 옮겨진 나무들은 다음 환경에 적응하는 데
평소의 3-4배는 몸살 앓으며 애를 쓰기도 한답니다.

반대로 운이 나쁜 나무도 있어요. 게으른 주인을 만난거죠.
열심히 뿌리를 키워서 화분에 꽈악 찼지만,
때가 되었을 때 분갈이 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되겠죠.
상희님의 영혼은 참 운이 좋네요.
부지런한 상희라는 정원사를 만나서 분갈이 중이니까요.


절실하게 성장하고 싶었지만 더이상 혼자 힘으로는 성장할 수 없어 막막했던 내게 16년차 기획자 윤소정 대표의 편지는 큰 위로가 되었다.

나의 퇴사를 '분갈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되어 마음도 심플해졌다.


이외에도 정말 많은 선 후배의 편지를 읽으며,

끊임없이 내게 질문하고 '나만의 답'을 만들어가는 것이

현명한 선배들의 공통된 태도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지금 하는 일에 진심이라면, 또 진심인 일을 찾고 싶다면 데스커라운지에 다녀오길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편지 외에도 일하는 사람들의 스토리가 잘 전시되어 있고, 존경하는 선배들이 고민할 당시 직접 메모하며 읽었던 책들도 볼 수 있다.)


퇴사 이틀차, 회사에 소속돼 있지 않아서 매우 불안하다. 이 감정이 매우 불편하지만 이 불안함 덕분에

'나만의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안다.  화이팅..ㅎ






번외 : 좋았던 선배의 편지와 데스커 공간 사진 ✉️

선배 1

내가 나의 '성장하고자 하는 고민'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선택이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 길로 먼저 가 보느냐, 저 길로 먼저 가 보느냐, 지금 가느냐, 나중에 가느냐, 가다가 돌아올 것이냐, 이 길로 가다가 마음이 바뀌어 다른 길로 우회하느냐의 차이일 뿐.

선배 2

회사를 집어 삼키세요. 경우님은 회사보다 훨씬 더 큰 존재니까요.

선배 3

"어떻게 살 것인가" 막연한 질문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모두 물어봤어요.

그분이 어떤 특별한 답을 주냐구요? 아니요. 나에게 남아있는 건 '열심히 질문하며 답을 찾았던 나의 태도' 결국 나만의 답을 만들었던 나였습니다.



이전 05화 [D+342] 사직서 앞에서도 쫄지않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