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탄산수 Feb 13. 2024

[D+342] 사직서 앞에서도 쫄지않는 법

퇴사가 이렇게나 어려운 거였어?

2주 전 '375만원 버리고 퇴사합니다'라는 글로 나의 퇴사소식을 전했다. (자극적인 제목 덕분인지 이 글은 다음 메인에 걸려 조회수 1.6만회를 기록했다) 이제 진짜 3일만 더 출근하면 5년 넘게 다니던 회사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 오전에는 퇴직금을 받기 위해 IRP 계좌를 개설하러 갔다가 표정이 밝아보인다며 은행원에게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계좌를 개설하는 순간에도 의자에 앉아 '이게 맞는 걸까' 고민하고 있던 나는 그녀의 말에 멋쩍게 웃기만 했다. 사퇴사 일자가 확정된 순간부터 나는 마음편한 날이 없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그냥 계속 다닐까' 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들었기 때문이다. 사직서도 제출한 마당에 어제는 새벽 2시에 깨서 퇴사를 번복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신중한 성격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나 지독할 줄은 몰랐다. 처음보는 내 모습에 스스로가 질려버릴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모든 것이 '불안감'이라는 본능으로 여기며 매 고비를 잘 넘겼고 오늘 사직서를 최종 제출했다. 그렇게 진짜 퇴사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설 연휴에는 전 직장 동료에게 안부 문자가 왔다. 그녀는 지난 여름, 대기업으로 이직해 회사를 다니고 있다. 나의 퇴사를 알리니 그녀는 이직을 하는지, 내 콘텐츠를 만드는지 물었다. '이직'에만 꽂혀있던 나는 대답을 얼버무리며 그녀에게 새로운 환경, 시스템에서 일하는 것이 어떤지 되물었다. 그녀는 새로운 환경에서 일을 배우는 것은 무척 재밌지만 결국은 내 채널을 키우는 것이 답인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본인도 자리가 좀 잡히면 개인 채널을 키울 거란 말을 덧붙였다.

그녀의 말대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현실과 타협하며 내 것도 키워가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나도 그것이 가장 안정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일이라는 트랙에서 돈 밖에 얻지 못한다면 그 길은 가면 안 되는 길이 아닐까? 나는 회사 일을 하면서도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것이 '내 길'을 찾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복잡한 내 마음을 남편에게 '일하면서 행복하고 싶다'고 한문장으로 표현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쓴소리가 날아왔다. '행복한 일이 어딨어 다 돈 벌려고 하는거지' 극현실주의자다운 반응이었다. 남편의 말에 풀이 죽었고 내가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이라 지금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는 건가? 자책도 했다. 마음의 정리가 다 된 지금, 그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걸 왜 이렇게 마음에 담아두었을까 싶다. 지금은 내 마음을 온전히 이해받으려 했던 나의 욕심이었다는 걸 안다. 인생에서 정답을 정하는 건 오직 나다. 그리고 그 결정은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배웠다.


나는 그럼 왜 자연스럽게 '이직'을 결정한 걸까. 내 것을 하는 것보다 쉬운 길이라 그랬던 걸까? 생각해보면 애초에 나는 '독립'을 위해 퇴사를 결정한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환경'을 바꿔보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다른 환경에 가서, 좀 더 결이 맞는 사람들과 일하게 된다면 조금은 덜 불행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내린 결정이었다. 누군가는 회사가 다 거기서 거기라고 말할테지만, 거기서 거기는 큰 차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나의 꿈은 지금보다 결이 잘 맞는 환경으로 가는 것이다. 결이 맞는 사람 한 명이라도 좋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잘하고, 어떤 환경에서 일을 하는 것이 좋은 사람인지 또 한번 알아가고 싶다. 꿈을 위해 현실을 타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지금처럼 말이다.


설에 내려가니 아빠가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당장 내 것을 하면 남들보기는 초라할 수 있지만 언젠가 더 여유롭게 살 수 있다고, 그런데 남의 돈을 벌면 허울은 좋지만 홀로서기는 영영 불가하다고 말이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나도 언젠가는 회사를 떠나 독립해야 될때가 올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맷집이 부족하다. 더 많은 경험을 통해 물렁물렁한 마음에 군살이 배긴 후에 도전하면 조금 덜 아프지 않을까? 퇴사를 앞두고 내가 잔뜩 쫄아있었구나 새삼 느낀다. 어차피 인생은 길고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폭이 넓다. 그러니 일자리 하나가 당장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해서 기 죽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스스로에게 당부 또 당부한다. 자신감이 바닥칠 때마다 이 글을 찾아읽어야겠다. 나의 미래는 좌충우돌 천방지축일지라도 반드시 빛을 볼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