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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산수 Nov 30. 2023

[D+267] 엄마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아요

워킹맘의 퇴사는 생각보다 어렵고 생각보다 나는 강했다

퇴사? 너 그거 현실도피야

육아휴직 후 11월 1일자로 회사에 복귀했지만 3일 출근 후 연차를 소진해야 한다고 하여 13일의 휴가에 다시 들어갔다. 그렇게 11월의 마지막인 오늘, 나는 딱 8일째 근무중이다. 같은 말로 워킹맘 8일차라고 할 수 있다. 이전 글에서 나는 직무도 맞지 않고, 환경도 맞지 않는 회사를 퇴사하겠다며 큰소리쳤다. 오랫동안 고민했기에 내 마음의 더 이상의 변화는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런데 13일의 휴가가 다시 주어지면서 나는 다시 한번 고민의 구덩이 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물꼬는 남편이었다.

'글쓴다고? 정확한 계획을 얘기해봐. 지금 얘기하는 게 너무 막연해. 너 그거 지금 현실 회피하는 거야' 

듣자마자 짜증이 확 솟구쳤다. 어찌어찌해서 겨우 마련한 결론을 남편이 뒤엎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와다다다 불만을 쏟아냈다. 왜 고민할 때는 안 들어주고, 다 정하니까 이러냐고. 말하면서도 이러는 내가 애기 같았다. 예전에 어디서 주워 들은 얘기로는 누군가의 말을 듣자마자 버럭 화가 나면 그사람이 맞는 말을 해서 그런 경우가 많다고 하던데, 남편 말을 들으며 그말이 떠올렸지만 애써 지웠다. 그리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밤마다 남편을 부여잡고 회사 환경이 더 성장할 수 없는 환경이라고 토로했는데 엄마가 됐으니까 그냥 참고 다니라고 말하는 것 같이 느껴져 너무 야속했다. 남편 말이 퇴사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이 글의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계획이 왜 없어! 빵집 알바하면서라도 내가 원하는 글을 쓰겠다고!' 내가 큰 소리치고는 내가 머쓱해지는 답이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도 몰랐다. 내가 계획이 없다는 사실을. 빵집 알바하면서 글쓰는 일, 그거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인가? 그것만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연이은 이직 실패

그러다가 현재 내 상황을 아는 친구가 나랑 잘 어울릴 것 같다며 한 스타트업의 채용 공고를 보내줬다. 오예! 내가 눈여겨보던 회사였다. 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난 그날부터 들뜬 마음으로 자소서를 쓰기 시작했다. 내 경력이 온전히 도움이 되는 직무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우겨넣어 자기소개서를 제출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지만 역시나 불합격이었다. 사실 내 무의식은 쓰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지난 달 지원한 회사도 떨어지고 이번에도 떨어지니 그제서야 좀 정신이 들었다. '서류에서 떨어진 적은 단 한번도 없었는데, 나 벌써 매력적이지 않아진 걸까?' 의기소침해졌다. 그리고 그날, 대학생 이후 다운받아본 적 없던 아르바이트 앱을 2개 다운받아 논술학원 알바 자리를 찾아보았다. 슬프게도 내가 사는 지역에는 단 한건의 논술학원 알바도 뽑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난 어떻게 해야하지? 맞다. 글 쓰는 일이라면 출판사지. 이번엔 구인구직 사이트를 열어 출판사 편집자 공고를 뒤졌다. 모집 조건은 대부분 경력 3년 이상이었다. 그제서야 내가 계획이 전혀 없다는 남편의 말을 절감했다. 

당장 둥지를 틀 곳이 없었지만 그래도 먼 미래까지 바라봤을 때 내가 성장할 수 없는(정확히 말하면, 성장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생각은 다음으로 이어졌다. 애 엄마가 실질적으로 공백이 있는 상태에서 재취업이 잘 될까. 그것만 확인하면 퇴사로 확고히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먹고 사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 따끔한 인생 선배의 충고

그래서 인생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연락드리는 내 인생 멘토이자 전문 코칭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은 따끔하게 지적했다. 애 엄마라서 이직을 못 하는 세상은 이제 아니라 했다. 하지만 어떤 회사를 가든 새로운 문제는 생기기 마련이고, 부모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나의 꿈 대신 현실과 타협하면서 사는 부모들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라고. 그게 꿈을 이루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고 그 힘든 일을 해내는 게 부모라고도 덧붙이셨다. '누구는 꿈이 없을까요?' 선생님의 질문이 나를 후벼팠다. '00씨. 먹고 사는 문제가 그만큼 어려운 거예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힘든 현실에서 내가 그냥 도망치려 했구나 깨달으면서 한껏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회사에서 버티며 그 다음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겠다고 마음먹었다.

회사에서 다시 버티기로 결심하니 기회도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안 될지도 모르지만 아주 안 될 것도 없는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나는 이제 그 기회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나 아직 많이 부족한데 누군가의 도움없이 이게 될까 고민하다가 똑똑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그들을 보면서 나를 발전시키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설령 이곳에서 내 뜻대로 이루지 못한다고 해도 퇴사않고 매일 기획서를 쓰기 위해 8시간 책상에 앉아있는, 이 시간을 견디는 나를 만나고 있기에 후회는 절대 없다. 아니 이 경험을 사직서로 놓쳤다면 어땠을까 아찔하다.

고민의 과정에서 나는 임신할 때 읽었던 '역행자'라는 책을 자꾸 떠올렸다. 나를 최대한 편하게 만들고 싶어하는 내 뜻을 거역하기, 누군가 이 글을 읽는다면 나처럼 내 말에 거역해보기 그리고 인생 선배이자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보기, 어쩌면 그것이 조금은 더 현명한 길일지 모른다는 말을 꼭 전해주고 싶다. 나는 내 말을 안 들어서(^^) 또 한 발짝 성장할 수 있었다. (맞겠지..?)



내 미래를 한치 앞도 알 수 없어서 다음 글의 제목이 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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