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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산수 May 03. 2024

[D+421] 나도 엄마가 있었다

엄마가 있는 남편이 부러워 심통을 좀 부렸습니다

엄마와의 카톡

전에 사용하던 노트북을 꺼낼 일이 있어 오랜만에 컴퓨터를 켰다. 그러다 우연히 엄마와 나의 메시전 대화를 백업해둔 폴더를 발견했다. '이게 여기 있었구나' (대화 상대 없음)이라는 카톡방으로 바뀐 엄마와 나의 카톡방을 보며 열심히 백업 해두었던 기억이 났다. 평온한 감정에 갑자기 물을 들이붓고 싶지는 않아서 키지 않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내 손가락은 이미 폴더를 클릭한 상태였다. 쭉 훑어보니 내가 대학교 3학년으로 추청되는 시기에 엄마와 나눈 대화들이었다. 엄마는 나를 '따님~~'이라고 자주 대화를 걸며 저녁은 뭘 먹었는지, 언제 집에 내려오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궁금해했다. 나는 배터리가 없어서 자주 답장이 늦었고 말투에서는 어린장이 폴폴 풍겼다. '왜 이렇게 애 같냐' 혼잣말을 하다가 문득 엄마가 있다는 건 이런 거였지 새삼 실감이 나서 눈물이 고였다. 무엇보다 25년간 느꼈던 엄마의 따뜻했던 품을 어느새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사실이 가장 슬펐다.


시어머니에게서 본 엄마의 모습

결혼을 하고 내가 엄마가 되는 것으로 엄마의 허전한 자리를 조금은 채웠다고 생각했는데 완벽한 착각이었다. 특히나 우리 엄마도 외할머니를 첫째인 나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 평생 그리워하며 살았는데, 그래서 우리에게 종종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엄마 없는 사람이야'라는 슬픈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곤 했는데, 나도 딱 그 모양새가 되었다엄마없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는 말, 그 말을 나는 딱 엄마만큼 이해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아이가 50일쯤 되었을 때 시어머니가 내가 구안와사가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와주러 집에 올라오신 적이 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결혼할 때부터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분이라 이번에도 엄마처럼 나를 챙겨주시겠지 내심 기대를 했었나 보다. 그런데 그 기대는 완벽하게 빗나갔다. 어머니는 신생아를 돌보는 것에는 소질이 없으셨고 나는 하루종일 울어대는 아기를 안고 어머니 3끼 밥을 신경써야 했다. 물론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누룽지나 컬리에서 시킨 밀키트, 배달음식들이었지만 말이다. 어머니는 밖에서 드라마를 보고 계시고 난 안방에서 우는 아이를 토닥이며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난 그때 이후 어머니를 보기 힘들어했는데, 그 이유가 힘들 때 어머니가 나를 도와주지 않아 서운한 마음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와의 카톡을 보고 알았다. 시어머니가 그토록 미웠던 이유는 엄마없는 설움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눈이 반짝반짝해져서 오늘 힘들었는지, 배고프지 않는지 꼬치꼬치 묻는 어머니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나(남)와 있을 때와 너무 다른 태도에 한번 놀라고, 엄마의 사랑이란 이렇게 다른 거였지 기억이 새록 나서 또 한번 놀랐다. 그래서 그때도 지금도 남편에게 잔뜩 심통을 부리고 있는 거였다. 얼마 전에도 어버이날을 맞아 아기를 보여드리러 시댁과 우리집에 가자는 남편의 제안에 급발진한 전적(?)이 있다. 아들에게만 집중된 그 애정의 눈빛, 그게 부러워서 가기 싫다.



엄마가 되어 더욱 그리운 나의 엄마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내게 엄마가 없다는 사실이 약점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는데, 내가 노력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마음에 무거운 돌 하나쯤은 가지고 산다는 말을 곱씹으며 씩씩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가끔 동생과는 그런 얘기로 위안하기도 한다. 엄마가 살아 계셨다면 딸(나)이 낳은 딸(내 딸)을 케어하느라 지금도 자기 인생은 뒷전이었을 것이라고, 그러니 오히려 그곳이 편안할 수도 있다고 말이다.

난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엄마'란 말이 낯설어지는 게 싫어서 혼자 있을 때면 시도 때도 없이 '엄마'를 불렀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서는 더욱 씩씩해지려고 노력한 탓에 엄마를 부르는 시간도, 엄마를 생각하는 시간도 부쩍 줄었던 것 같다. 그 어느 때보다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으면서 말이다.


언젠가 만날 수 있을까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죽음 이후에 세계를 궁금해했던 적이 있다. '언젠가 죽게 되면 그때는 엄마를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다 한 과학자가 사후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그 말이 지금까지 내게 가장 큰 위로가 되고 있다.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영속하는 것이 있을 수 있어요.
바로 우리 인간의 몸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원자들, 이런 것들이 물론 죽은 다음에는 이 형태로는 있지는 못 하지만 원자 자체는 영속 하거든요. 
원자는 우주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존재했고요.
앞으로도 우주가 사라지지 않는 한 존재할 겁니다.
원자가 되어 뿔뿔이 흩어져서 내가 정말로 좋아하던 어떤 나무가 될 수도 있고요. 

(전체 내용 : https://brunch.co.kr/@writingradio/20)


더이상 내가 생각하는 물리적인 엄마의 형태는 만나지 못할지라도 내 곁에 나무로, 꽃으로, 바람으로 함께하고 있을 엄마를 생각하면 든든해지는 기분이다. 마지막으로 납골당에 갈 때마다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것 같아 오늘은 이곳에 예행 연습차 적어보며 끝마치려 한다. 


'엄마 마지막 어버이날이 될 거라 직감했던 7년 전이 생각난다. 그때 돈이 없어서 조그만 선인장 화분과 편지를 선물로 건넸는데 마음이 너무 무거웠어. 마지막인 줄 알면서도 이것밖에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밀아야. 그래도 편지에는 엄마를 애정하는 내 마음을 모두 담으려 노력했는데 엄마가 내 마음을 알았는지 그 편지 가방 앞주머니에 넣고 다녔잖아.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에게 받은 사랑이 얼마나 무한할지 상상도 되지 않더라. 엄마는 우리한테 늘 힘든 상황에도 씩씩한 사람이었는데, 왜 엄마가 그런 모습이었는지 이제야 조금 이해가 돼. 한번은 엄마가 너무 힘들어보여서 엄마는 사는 재미가 뭐야?라고 내가 물은 적도 있었잖아. 그때 너네들이지~ 했던 그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나도 엄마 없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지만(ㅋㅋㅋㅋㅋㅋ) 엄마처럼 씩씩하게 잘 살다가 갈게! 다음번에 다음 모양으로 만나서 또 즐겁게 놀자! 사랑해!'



ps. 책 <나의 엄마>는 한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엄마를 부르는 순간들을 그림화한 그림책이다. '맘마'로 엄마를 부르기 시작한 아이는 '엄마(눈물이 담긴 디자인으로 글자가 표현됨)'로 마지막 엄마를 부른다. 눈물이 주륵 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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