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43] 남편이 저랑 살기 힘들답니다...
우리집 빌런이 나였네...
아이 응급실에서 수업을 떠올리다
어제 새벽부터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에 다녀왔다. 고열에 시달리던 아이가 침대에서 나오다 이마까지 꽈당하면서 컨디션은 갈수록 더 악화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머리에 이상이 없을지 걱정됐지만 병원에 가도 상황을 지켜보라는 말밖에 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내내 주시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아이가 평소와 다르게 내 무릎에서 자려 하길래 이건 이상 신호다 싶어 남편을 다급하게 불렀다. 남편은 놀라 눈이 반쯤 돌아간 나에게 짐을 챙기라 얘기하고는 옷을 갈아 입혔다. 냉장고 문을 열고 우유를 집으며 '아이가 혹시 잘못되면 어떡하지? 난 역시 엄마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라는 자책의 생각이 찰나의 순간에도 뚜렷하게 스쳤다.
다행히 아이는 뇌에 이상없이 열 때문에 쳐진 것으로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자연스럽게 내 머릿 속 화두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림책 수업까지 1시간 반 남았는데, 갈 수 있을까?' '아픈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그림책 수업가는 엄마는 좀 이상한 엄마인가?' 다행히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어린이집 활동을 해야 더 빨리 낫는다고, 오늘은 되도록 데리고 오라고 전화해주신 덕분에 난 죄책감을 덜고 수업 갈 명분을 얻었다. 아이가 아픈 와중에 악착같이 스케줄을 챙기는 날 보며 남편은 무슨 생각할까 걱정됐는지 '이거 220만원 짜리 강의야. 취미 생활로 하자고 신청한 거 아니니까' 조수석에 앉아 떠들며 초조하게 네비게이션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난 여러 명의 눈치를 본 끝에 2시간 30분의 수업을 지켰다.
이 집의 빌런이 나였어?
사실 내가 요즘 남편의 눈치를 보는 이유가 있다. 지난 주 남편이 나와 살기가 무척 힘들다고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아이 재우고 혼맥하며 야구보는 것을 즐기는 양반이 새삼스레 맥주 한 잔 하자고 했을 때 이상함을 감지했어야 하는건데, 눈치가 없었다. '오랜만에 우리도 진지한 대화를 하는 건가?' 아이를 재우고 설레는 마음으로 테이블에 앉았는데 남편 표정이 꽤나 진지했다.
사실 우리에게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갈등이 하나 있었다. 바로 '어버이날 사건'이다. 아이를 낳고 나서 시어머니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가지게 된 사건 이후로 난 시댁에 내려가는 것을 극도로 꺼리게 되었다. 그러던 중 5월 대체공휴일을 앞두고 어머니가 남편에게 전화를 하셨다. 3일 연속 연휴이니 집에 내려올 수 없겠냐는 것이었다.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발작 버튼이 눌려 절대 가지 않겠다 말했고, 남편은 양가 부모님들이 보고 싶어 하신다며 본인 혼자 아이를 데리고 시댁과 친정에 하루씩 다녀오겠다 이야기하며 일단락 되었다. 나만 쏙 빠진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더는 얘기를 이어가고 싶지 않아 그렇게 하라고 했다.
내려가는 날이 다가올 수록 내 마음은 더 불편해졌다. '아이가 엄마 때문에 고생하는 건 아닐까?', 또 '내가 안 내려가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괜한 걱정하시면 어떡하지?' 여러 걱정이 생겼지만 그중 마음을 바꿔먹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남편과 나의 사이가 더 안좋아질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이와 남편의 손을 잡고 먼저 우리집으로 향했다.
손주를 보며 이뻐 어쩔 줄 몰라하는 아빠의 눈을 보고, '내가 내 감정만 앞섰었구나' 부끄러워지면서 이런 시간을 갖게해준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문제는 시댁으로 넘어간 둘째 날이었다. 나를 본체도 않고 아이만 데리고 들어가버리는 어머님의 모습에 속상했던 나는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아무런 말도 않고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다. 그럼 손녀가 왔는데 어머님이 나를 보며 '00이 왔니^^?'하고 먼저 살갑게 웃어줘야 됐던 걸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머님을 미워할만한 핑계거리를 하나 찾으려고 했던 게 분명하다. 물론 이 하루 사이에도 아들만 챙기는 어머님에 불편한 일이 몇몇 있었지만 예의없이 행동한 부분은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다.
남편은 이런 내 모습에 몹시 화가 났었고, 내가 사과하면서 사건이 일단락 된 듯 했는데 남편은 잊지 못하고 계속 스트레스를 받았나 보다. 남편은 맥주를 한모금 마시더니 사회생활 한다 생각하고 괜찮은 척 잘 있다 오면 될텐데 내게 왜 일을 크게 만든 거냐 물었다. 나도 그럴 생각은 없었다고, 그런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됐다고 얘기했다. 남편은 사회생활을 아주 잘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실제로 척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이해심이 넓기도 하다. 그와 정반대로 나는 사회 생활에 아주 취약하다. 척도 못하고 이해 되지 않는 것은 이해하려하지 않는다. 그러니 남편 입장에서는 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내가 타협하지 않는 인간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렇게 하루 이틀 넘기면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이 되나? 그때의 나는 그런 생각이었고, 남편은 말해도 해결될 수 없는 영역의 문제이기 때문에 타협하면서 지나갈 수밖에 없다고 얘기해줬다. 그러면서 나에게 높은 수준의 이해를 바라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도 했다.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으니 내가 납득되지 않은 일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려 하는 것이 어린아이 같은 행동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린 나는 어머니에 대한 감정을 어떻게 풀고 갈 수 있는 걸까. 사실 심플하다. 누군가의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사랑이고, 나는 어머니를 사랑할 준비가 안 된 것이다. 우리 아빠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가 많지만 내가 그 모든 것을 다 감당하는 이유는 그가 지나온 세월을 고스란히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머니의 살아온 과정을 듣고 이해해보려고 할 수도 없기에 난 일단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머니 역시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이 된 나를 이해(사랑)하기 위해서 많은 고군분투 중이실 거라고, 예를 들면 어버이날 가서 뚱하니 앉아있는 며느리에게 한 소리도 하지 않으신 것과 같은 일들 말이다.
타협해본 적이 없는 나
'어머니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사랑(이해)하겠다'는 이러한 결론이 누군가는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가끔 뵐 때마다 어머니를 상사라 생각하고 비위맞추고 지나가면 될 일을 굳이 뿌리까지 파헤칠 필요가 있는지 피곤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사실 이것이 나의 가장 큰 문제로 여겨지는 요즘이다. 인생이건, 인간관계건 타협하면서 적당히 살아가는 것이 필요한데, 내 몸에서 소화되지 않으면 곧장 뱉어버리는 사람. 아무래도 30년 넘게 살면서 내 좋을 대로 하고 살아온 습관이 몸에 배어있어 그런 것 같다.
타협하지 못하는 아내 때문에 힘들어하는 남편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나를 위해서도 지금부터 '타협'하는 법을 연습해보려 한다. 일단 첫 발걸음은 내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오직 돈을 벌기 위해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경제 콘텐츠 편집 일을 맡았다. 남편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더 오래하면서 수익도 낼 수 있으니 좋은 것 아니냐며 물어다준 일이다. 사실 할 때마다 이걸 왜 해야 하지(돈 벌려고 하지) 극강의 스트레스를 받지만, 내 나름 득도의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남편은 힘들게 회사 다니면서 돈 벌어오는데 아내인 나는 퇴사하고 그림책 만들고, 하고 싶은 콘텐츠도 만들면서 편집 일 하기 싫다고 투정부리는 것은 나여도 진짜 못 봐줄 것 같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를 위해서도 희생의 '타협'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1살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어느 정도 아이를 위해 할애하고 어느 정도 내 삶을 챙겨가야 하는건지 모르겠다. 정확한 사실은 지금 나는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기 위해 시간을 양보하지 못 하는 내가 우선인 엄마란 점이다. 이 사실이 괴로워서 요즘은 시간을 당겨 새벽 5시에 일어나는데도 역부족이다. 엄마인 나는 혼자일 때의 나처럼 마음대로 시간을 쓰지 못한다는 사실, 그 사실과 반드시 타협해야만 한다.
글을 쓰면서 내가 타협하지 않고 그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남편과 딸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척 부끄럽다. 어린 아내와 1살 딸을 동시에 키우느라 우리 남편이 참 고생이 많다. 남편에게 미안하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