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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산수 May 09. 2024

[D+428] 220만원짜리 무모한 도전!

못하는 것에 도전하는 짜릿함

나 수영 못 하는 거 아니었어?  

어린 시절 기억을 바탕으로 못 하는 쪽에 가깝다고 지레 결론 내려버린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수영', 그리고 하나는 '그림' 그리기다. 어렸을 때부터 뭐든 열심히 해야 하는 아이였던 나는, 힘 주고 살아가는 것이 버릇이 돼서 그런지 힘 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수영을 못했다. 초등학교에서 종종 수영장으로 현장 학습을 갔었는데 갈 때마다 나만 물속에서 뜨지못해 허둥지둥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작년 여름, 아기가 통잠을 자기 시작하면서 운동할 여유가 생겨 얼떨결에 수영을 다시 배우게 됐다. 익숙한 러닝을 하고 싶었지만 관절에 무리가 가면 안 될 것 같아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었다. 내가 여전히 수영을 못 한다는 사실을 또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지 않을까 걱정을 한 가득 안고 수영장에 입성했다.


수업은 5명으로 이뤄진 소그룹반으로 60대 아주머니 한분, 70대 할아버지 한분, 내 또래로 보이는 30대 남자, 남아 초등학생 2명 그리고 나였다. 흡사 대가족을 연상케 하는 수강생의 구성에 왠지 모르게 겁먹은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었다. 나 빼고는 최소 3개월 전부터 수영을 해온 분들이었기에 이분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다는 것이 부담되기도 했지만 오히려 비교 대상이 없어 좋기도 했다.

첫날에는 다리를 쭉 펴고 허벅지로 헤엄치는 법을 배웠다. 조금만 따라해도 '잘 하시는데요?' 라는 선생님의 격려가 이상하리만치 위로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운 좋게 칭찬에 후한 선생님을 만나 내 실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확인하지 못한 채 배영, 자유형, 평형 등을 차례로 배워나갔다. 내가 수영을 배우고 무엇보다 제일 좋았던 점은 이제 더이상 '수영'이라는 단어 앞에서 쫄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네가 그림을 그린다고...?

그리고 1년 뒤 지금, 두 번째 도장깨기에 들어간다. 바로 '그림'이다. 엄마가 자기는 손으로 만드는 건 다 잘 하는데 그림 그리기는 소질이 없다며, 큰 딸(나)이 그걸 닮은 것 같다고 자주 얘기했고 덕분에 난 그림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는 동네 미술 학원에 다녔는데 내가 너무 못 그려서 그런건지, 선생님이 학부모에게 더 완성도 있는 그림을 보여주고 싶어 그랬는지, 나 대신 그림을 그리는 선생님의 뒷통수를 바라보던 황당무게한 경험도 있다. 그후 나는 전화하며 정육면체를 낙서하는 것 외에는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다. 네이버 그라폴리오에서 일러스트를 보는 것을 무척 좋아하긴 했지만 무의식도 이건 넘을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그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갑자기 그림 책을 만들고 싶어졌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지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그림책을 만들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내일배움카드로 들어야 할 수업을 고르던 중 우연히 그림책 강좌를 발견하면서 '이 길이 내 길은 아닐까?'하는 근거없는 확신을 했다. 귀신에 홀린 듯 수강 신청을 했고, 더 깊이 배울 수 있는 강의가 없을까 찾다가 한겨레문화센터에서 하는 6개월짜리 그림책 수업을 발견했다. 220만원이라는 비싼 수업료, 나의 소중한 시간을 여기에 써도 될 것인가 며칠을 고민하다 '이 길이 아님 뭐 어때, 어떤 경험이든 가치있을 거야' 라고 단순하게 생각을 바꾸고 등록해버렸다.

왜 하필 그림책이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 딴에는 맥락이 아주 없는 결정은 아니었다. 임신 중 서점과 도서관을 다니면서부터 그림책 읽기에 빠지기 시작했는데, 몇장의 글과 그림으로 삶의 철학을 녹여낼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콘텐츠라고 생각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이걸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못 했는데 그림책 강의를 딱 발견했을 때 문득 '내가 좋아하는 시 쓰기 작업과 다르지 않겠다, 오히려 시를 더 멋지게 담아낼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 스쳤다.

문예창작을 전공한 나는 위로를 건네는 시를 쓰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에게 닿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에 라디오라는 매체를 선택했었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그림책이 또 다른 나의 선택지가 된 것이다. 나의 메시지를 부드럽게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이 생겼다.


문제는 내가 그림을 잘 못 그린다는 점,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림을 잘 못 그린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이 문제다. 먼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손으로 하는 모든 것(ex. 요리, 가위 자르기, 포장하기, 신발끈 묶기, 손톱깎기...)에 젬병인 나는 그림을 잘 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해보고 싶다. 수영처럼 생각했던 것보다 나은 실력을 마주하게 될 수도 있고, 예상보다도 형편없는 실력을 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괜찮다. '잘 못하는 나를 마주하는 것' 이것이 나의 목표 중 하나이니 말이다.

30년 넘게 살면서 못 하는 것은 요리조리 피하고, 잘 하는 것만 더 파고 노력하며 살아와 그런지 나는 무엇이든 항상 최고가 되는 목표를 세웠다. 그런데 그림 앞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꼴찌만 면하자는 생각이다.

이렇게 패기를 부려보지만서도 예상보다 훨씬 더 비루한 실력으로 전공자들 앞에서 쪽팔린 일이 생길까봐 노심초사다. 당장 다음 주 개강인데, 하루에도 몇십번씩 '그림책 작가에게 필요한 역량', '그림책 그림 실력' 등을 검색하고 그림책 작가가 쓴 책도 읽으면서 내가 적합한 사람인지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취준생 입사 면접 이후로 크게 이불킥할 일이 없었던 나의 삶에 재밌는 에피소드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린 나의 딸..(수강 취소해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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