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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대디 Oct 20. 2020

엄마는 육아 중

요즘 육아를 배우다

띵동, 띵동

“여보... 어머니 오셨나 봐.”


안방에 누워있는 아내의 목소리가 애처롭다. 둘째를 임신한 아내는 꼼짝달싹 못하고 누워있다. 요 근래 무리를 한 탓일까. 아내는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 결혼 전 허리 디스크 시술을 받은 적이 있었기에 나와 아내는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좀 쉬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불행히도 아내의 상태는 점점 안 좋아졌다. 밤중에는 혼자서 화장실도 못 갈 정도로 심각해진 것이다. 아픈 아내와 눈만 뜨면 엄마에게 안아달라는 15개월 아들, 집에서 재택근무하고 있는 나. 어쩔 수 없이 양가 부모님께 도움을 청했다. 감사하게도 양가 부모님은 불편한 내색 없이 하루도 빠짐없이 교대로 와주셨다.


그날은 나의 부모님이 오실 차례였다. 언제나처럼 환하게 손자의 이름을 부르며 들어오시는 엄마와 아빠. 부모님은 누워있는 아내에게 가벼운 인사와 안부를 묻고 각자의 책임이 있는 자리로 돌아간다. 나는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 방으로, 아빠는 손자를 안고 놀이방으로, 엄마는 식사 준비를 하러 부엌으로.


식사 준비를 마친 엄마가 설레는 목소리로 놀이방에 들어가셨다. 방문 넘어 손자와 함께 놀아주는 엄마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손자를 보는 엄마의 얼굴엔 피곤함이 없다. 엄마는 손자의 눈빛과 몸짓 하나하나에서 어린 시절 내 모습을 보고 계시는 것 같았다. 손자의 눈짓, 몸짓마다 엄마의 입가엔 같은 말이 맴돈다.


“정말 똑같아... 다시 아들 키우는 것 같아...”


고기가 물 만난 듯 익숙하게 손자와 놀아주는 엄마와 달리 아빠는 아직 손자와 놀아주는 것이 어색하다. 누구보다 사랑하는 마음은 크지만, 놀이 기술이 그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손자가 책을 읽어달라고 하면, 아빠는 책을 읽다 말고 책에 나온 동물들로 노래를 지어 부르신다. 손자는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 할아버지를 떠나 미련없이 할머니에게 안긴다.


엄마 : “아니, 여보. 애랑 상호작용을 해줘야지... 자기가 놀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아니라 애가 놀고 싶은 게
           뭔지 관찰해야지!”

         “애가 자동차를 가지고 놀면 같이 자동차로 놀아야지, 왜 인형을 가지고 와...”

아빠 : “그냥 놀아주면 되는 거지, 뭘 그렇게 유난이야~”

엄마 : “오은영 박사가 그렇게 하지 말라잖아!”


알고 보니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육아 공부를 하고 계셨다. 채널A에서 방영 중인 오은영 박사님의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시면서 손자랑 어떻게 놀아줄까, 어떻게 반응해줄까를 열심히 공부하셨던 것이다. 티격태격하는 부모님의 목소리를 방문 넘어로 엿들으며 피식 웃고 있던 나는 조금 뒤 웃음을 멈추고 말았다.


“옛날에 아들한테 몰라서 못해준 거 손자한테라도 잘해줘야지.”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를 통해 엄마는 지난날들을 꼼꼼히도 돌아보셨나 보다. 고달픈 시집살이, 그로 인해 뒤로 밀려났던 어린 아들들에 대한 미안함을 떠올리셨을까. 아쉬웠던 과거에 대한 돌아봄은 지금 내 아들을 돌봄으로 치유받고 계신 것처럼 보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내가 아픈 덕분에(?) 그 시절 놓쳤던 엄마의 애타는 손길을 내 아들이 오롯이 받고 있다.


30년을 훌쩍 넘은 지금, 엄마는 아직도 육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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