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기 아들과 놀아주는 방법
"아빠! 쁘아! 빵! 빵!"
"아.. 놀이방 가자고?"
"응! 빵빵!"
고사리 손으로 내 손을 잡아끌며 아들은 놀이방에 가자고 한다. 귀여운 목소리와 반짝이는 눈빛에 나는 마지 못해 자리를 일어선다. 아들의 손을 잡은 구부정한 자세만큼이나 구부정한 마음을 애써 감춘다. 마지못해 끌려가면서 혼잣말처럼 아내에게 농담을 던진다.
"너는 놀이방... 아빠는 깜빵.. 살아 돌아올게~"
아들은 놀이방에서 여러가지 놀이를 한다. 아들은 요리를 만들어주고, 자동차를 운전하고, 동물들에게 사료를 주고, 기찻길을 만들고 기차를 운행한다. 그런 아들을 보며 언제 이렇게 컸나 싶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아들과 놀이방에서 노는 것이 쉽지 않다. 19개월 아들과 방에서 놀이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나에게 아내는 몇가지 놀이팁을 줬다.
첫번째. 아이의 눈을 따라가라. 아이의 관심사는 아이의 눈길이 머무는 곳에 있다. 아이의 다음 행동도 눈길과 연관되어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아이와 무엇을 하며 놀지, 어떤 행동과 말을 하면 아이가 좋아할지가 정해진다.
두번째. 아이가 놀이의 주인공이다. 잘 놀아주지못하는 어른들은 보통 아이가 노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이 놀려고 한다. 아이는 주연이고, 같이 놀아주는 어른은 조연이 되어야한다. 주객이 전도되면 안된다. 주도권을 어른이 쥐게 되면 아이는 그 어른과 놀고 싶어하지 않는다. 어른은 아이가 놀고 싶은 하는 것을 돕는 역할을 해야한다. 그렇지 못한 나는 여러번 아들에게 '떼찌'를 당했다.
세번째, 흐름을 끊지 마라. 내가 제일 못하는 부분이다. 놀이를 하다보면 정말 너무나 귀여운 아들의 표정이나 행동을 보게된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장면을 마주하게 되면, 그대로 놔두어야한다. 연극을 보는 관객처럼 그냥 속으로 감탄만 하면 된다. 그런데 나는 아들의 귀여운 모습을 보면 주체를 하지 못한다. 어떤 관객이 연극에 매료되어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가 배우를 껴안고 뽀뽀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그 정신나간 관객은 만족할지 모르지만 연극은 완전 망하게 된다. 나는 아들의 상상과 놀이의 무대를 여러번 망쳐놨다. 그저 아들이 사랑스러워 뽀뽀하고 안아주기 바빴다. 그럴때면 역시나 아들에게 '떼찌'를 당한다. 그리고 엄마랑 놀겠다며 나는 일하는 방으로 가라고 밀쳐낸다.
이런 저런 팁을 전해 들어도 아들과 놀이방에서 노는 건 어렵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은근히 여자랑 대화하는거랑 비슷하잖아?' 예전에 유행했던 여자와 대화하는 법이라는 인터넷 밈이 떠올랐다. 여자가 하는 말의 뒷말만 잘 따라해도 대화가 끊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뒷말 따라하기의 부작용으로 대화의 흐름을 생각하지 않고 뒷말만 고지 곧대로 따라하면 공포감을 유발 할 수도 있다는 밈이었다. 나는 아들과의 '놀이'가 '대화'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됐다.
먼저 아이(상대)에게 집중해야한다. 어떤 놀이(대화)를 할 지 잘 살피면서, 놀이(대화 주제)가 정해졌을 때는 놀이의 주체(말하는 사람)가 누구인지 명확히 인식하고, 잘 보조(경청)를 맞춰주어야한다. 그리고 놀이의 흐름(상대방의 말)을 끊지 말아야한다. 적당한 맞장구(대화의 호응)는 더 풍성한 놀이(대화)를 만든다. 놀이(대화)가 잘 되면 아이(상대)와 친밀한 관계가 형성된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우리 집에 놀러온 손님 중에서 대화를 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이와 잘 놀아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들어주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이와 잘 놀아주지 못했다. 상대방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능력과 경청의 능력이 곧 놀이와도 연결되는 것 같다.
글을 마치기 전에 나는 또다른 사실을 발견했다. 아들과 놀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아들과의 놀이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놀이는 역시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