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디자인된 공간에서 살아간다.
눈으로 보이는 모든 것이 디자인이지만,
살아갈수록 서비스가 기분이 되고,
기분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행동이 된다.
사람들은 늘 더 나은 삶을 꿈꿔왔다.
불편함을 고치려는 그 마음이
디자인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문명이 시작된 이래,
인간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해 왔다.
고대 로마의 수도시설은 물을 나누는 디자인,
중세의 광장은 사람을 모으는 디자인,
르네상스의 건축은 삶을 아름답게 질서 잡는 디자인이었다.
그 중심에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가 있었다.
그는 16가지 직업을 가진 천재로 알려졌지만,
그중 첫 번째가 바로 도시계획가이자 디자이너였다.
그는 이미 15세기에, 오염된 도시를 정화하기 위한
위생 도시 설계도를 그렸고,
홍수를 막기 위해 운하와 다층 구조의 도시를 구상했다.
그의 스케치는 예술이 아니라,
사람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디자인의 시작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도로의 경사, 창문의 위치, 물이 흐르는 배수 구조,
심지어 거리의 가로등과 손잡이까지도
그 오랜 불편함의 역사 속에서 태어났다.
19세기 산업혁명 시기,
기계가 인간의 손을 대신하면서 디자인은 빠르게 변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사람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 한 디자이너들이 있었다.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는 말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인간의 손에서 나온다.”
그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과 노동이 깃든 디자인을 추구했다.
그의 철학은 훗날 인간 중심 디자인(Human-Centered Design)으로 이어졌다.
20세기 초, 바우하우스(Bauhaus)는
예술과 기술, 삶과 공간을 하나로 엮으며 선언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
이 말은 단지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디자인의 중심에 두겠다는 사용자 중심의 선언이었다.
그리고 20세기 후반, 빅터 파파넥(Victor Papanek) 은 그 철학을 더 넓혔다.
“디자인은 단지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는 디자인을 산업이 아닌 책임(Responsibility)으로 바라봤다.
즉, 디자인은 더 많이 생산하는 기술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윤리적 도구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디자인의 역사는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불편함을 이해하고 사람을 중심에 두려는 시도의 연속이었다.
다빈치의 도시는 삶의 질서를 설계한 디자인,
모리스의 공예는 노동의 존엄을 지킨 디자인,
바우하우스는 사람의 경험을 고려한 디자인,
파파넥은 사회의 책임을 다하는 디자인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그 바통을 이어받은 디자이너는 다름 아닌 시민이다.
한 아이의 시선이 병원의 구조를 바꾸고,
한 노인의 걸음이 공원의 동선을 바꾸며,
한 시민의 제안이 행정의 언어를 바꾼다.
그 순간, 우리는 모두 디자이너가 된다.
디자인은 멀리 있지 않다.
전문가의 도면 위가 아니라,
시민의 마음속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
《도시는 그렇게 디자인된다》는
그 마음이 만들어낸 도시의 이야기다.
불편함이 이해로 바뀌고,
이해가 제안으로,
제안이 공간으로 피어나는 순간들.
도시는 완성된 형태가 아니다.
그곳엔 여전히 고쳐야 할,
그리고 더 따뜻하게 바꿔야 할 부분이 많다.
이 책은 그 빈칸을 채워온
시민들의 디자인 노트다.
by 컬러코드 박영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