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모든 생명체를 유지하는 숭고한 시스템이다. 인간은 수치심을 아는 존재이기에, 아무 데서나 쌀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이 머무는 모든 공간에는 ‘화장실’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오늘은 이 화장실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화장실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공간이다. 역설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쉽게 무너지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 인간들은 그 존엄성을 지켜보겠다고 자동으로 분사되는 방향제, 누르면 새소리가 나는 장치, 일어서면 자동으로 물이 내려가는 시스템 등을 만드는 눈물 나는 노력을 했다.
그 모든 노력을 해도 막을 수 없는 건 막을 수 없다. 고로, 우리는 우리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전 사용자가 남긴 흔적을 오열하는 마음으로 뒤처리를 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사람들로 꽉꽉 들어찬 공연 직후의 화장실이라던가, 황금연휴의 백화점, 명절의 휴게소 같은 경우엔 나에게 배정된 칸을 버리고 다른 칸으로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그 변기를 쓰려면 어떻게든 처리를 할 수밖에 없다. 쓰는 것과 직결되지 않는 오염이라도 처리 할 수 밖에 없다. 내가 범인으로 지목당하는 것은 싫으니까……. 다시 마주칠 일 없는 다음 사용자에게서 나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남자분들은 소변기가 따로 있기에 이런 경험이 많지 않을 수도 있겠다. 부럽다. 진심으로 부럽다. 내가 남자를 부러워한 적은 딱 3번인데, 전 사용자의 뒤처리를 할 때, 그리고 급한 상황에서 여자 화장실에 비해 미친 듯이 빠른 남자 화장실의 회전율을 목도했을 때,마지막은 차은우를 봤을 때다.
어쨌든,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닫힌 변기 뚜껑 안에는 지옥과 천국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코로나 이전이라면 닫힌 변기 뚜껑은 거의 90퍼센트의 확률로 지옥과 연결되지만, 코로나 이후, 변기 뚜껑을 닫고 물을 내리는 게 ‘국룰’로 자리 잡았다. 이 것 때문에 요즘 공공 화장실에 가면 흠칫 놀랄 때가 많다. 이제는 지옥을 목도할 가능성이 50%로 내려갔지만, 그래도 무서운 건 무서운 것이다. 지옥으로 연결되는 변기 뚜껑을 열어 버린 기억은 몹시 하찮지만 일생의 트라우마로 남을 정도로 강렬한 것이기에.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문장을 만든 사람은 얼마나 우아한 사람인가. 그 지옥 같은 화장실을 목도하면 분노에 차기 마련이거늘, 질책하지 않고, 훈계하지 않고 ‘아름다운 사람’과 '아름다운 머문 곳'이라는 표현으로 원하는 바를 아름답게 전달했다. 고수 중의 고수가 아닐 수가 없다. 이 문장 때문에 화장실을 깨끗하게 쓰는 습관이 든 사람도 무시 못할 정도로 많을 것이다. (그중의 하나가 나.)
요즘엔 저런 문구 대신에 변기에 물티슈, 페이퍼 타월을 넣지 말라는 문구가 많은데, 나는 저 문구도 다시 볼 수 있길 원한다. 사람들 머리에 다시 한번 새겨 줄 필요가 있다. 화장실을 깨끗하게 쓰는 것, 나와 타인의 존엄성을 지키는 가장 쉬운 일 중 하나입니다. 우리 모두 화장실을 깨끗하게 쓰고 내린 물도 다시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