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중독자 모임의 첫인사 풍의 오프닝으로 글을 시작해 보자. 앞서 말한 대로 나는 인형 뽑기 중독자이다. 어릴 때 문방구를 드나들며 스테이플러에 집혀 있는 뽑기 종이를 뽑는 낙으로 살아가던 나. 동그란 플라스틱에 담긴 장난감이 나오는 뽑기 기계를 거쳐 한국의 자랑스러운 시스템, 가챠 게임에 빠져 용돈을 들이붓고, 지금은 인형 뽑기로 재산을 탕진하고 있다.
그것들이 그렇게나 가지고 싶었냐고?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중독자의 삶을 이해할 수 없는 건전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큰 박수를 보낸다. 당신은 앞으로도 그렇게 살면 된다.
일단, 나와 같은 중독자들은 그것을 손에 넣었을 때 분비되는 도파민에 중독된 종자들이라 그 결과물은 사실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내 뽑기 운은 썩 좋은 편이 아니다. 문방구 종이 뽑기를 하면 물리도록 마산 땅콩 캐러멜을 먹어야 했고, 제일복권을 하면 손수건을 뽑는다.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제일 안 좋은 것에 당첨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또 태우는 것은, 어느 운수 좋은 날에 원하던 물건을 손에 넣고 경험한 도파민 대 폭발의 순간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운이 좋아 좋은 상품에 척척 당첨되는 사람이었다면 여러분과 나는 이렇게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어딘가의 불법 도박장에서 검거되어 옥살이를 하고 있지 않을까…….
신은 나에게 도파민 중독자의 뇌와 똥손을 함께 주시어 최소한의 인간 구실은 하고 살도록 해 주셨다. 감사합니다.
거기다, 나는 가진 게 돈뿐이라 (1화 참조) 가진 돈 안에서 즐겁게 탕진하고 적당히 좌절하며 잘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1화에서 잔고의 위기감을 느끼고 글 쓰기 시작한 건 벌써 까먹었다. 원래 소설뿐 아니라 인생도 설정 오류 투성이니까 흐린 눈으로 넘어가시면 되겠습니다.)
이 글을 쓰던 중에 깨달았는데, 주식도 내가 거쳐온 뽑기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면 문방구 뽑기와 가장 닮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주식들 중에 하나를 골라 돈을 넣는 것이니까. 그래서 내가 주식을 끊지 못하나 보다.
지금까지 걸어온 중독의 길 중 가장 혹독한 것은 단연코 주식과 인형 뽑기이다. 이 둘은 운에다 실력까지 적용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다른 건 운 탓만 할 수 있는데 이것들은 내 탓까지 해야 하는지라 실패했을 때 멘탈에 상당히 좋지 않다.
주식이야 뭐, 큰돈을 걸고 하는 일이니 예상이 적중했을 때는 도파민이 2배로 터진다. 잃으면 슬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만, 벌어도 슬픈 경우가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내가 나가고 나서 더 오르는 경우…….
사람이 간사한 게, 잃은 돈 보다 일찍 나와 더 벌지 못한 돈이 몇 배는 더 서럽다. 껄무새라는 말을 만든 사람은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고통의 시간과 돈을 때려 박았을까. 살걸, 팔걸, 사지 말걸, 팔지 말걸……. 주식은 대부분의 경우가 이 네 가지 대사 중 하나로 귀결되는 놈이다. 아주 악독한 놈이 아닐 수가 없다. 오죽하면 정신과 의사가 내가 주식하는 것을 모르고도 주식하지 말라는 조언을 했을까. (선생님 죄송합니다. 그래도 약은 잘 챙겨 먹고 있습니다.)
이제 두 번째로 악독한 인형 뽑기의 이야기를 해보자. 최근에 일본에 갔을 때, 짱구에 나오는 유리 모녀의 샌드백, 토끼 인형을 뽑아달라는 딸아이의 리퀘스트가 있었다.
이까짓 거 하는 마음에 가볍게 달려들었는데, 아뿔싸. 지옥의 난이도를 가진 집게였다. 확률 따윈 터지지 않았고, 인형을 끌어서 가져오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원래라면 테스트로 한 판 하고는 바로 버릴 기계였다. 그런 기계를 가지고 엄마로서의 위엄을 지켜보겠다고 어려운 싸움에 도전한 결과, 5000엔을 넘게 써서 겨우 뽑을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도파민 파티였다. 서로 얼싸안고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인형을 뽑고 나니 어깨가 한없이 솟아올랐다. 사냥에 성공한 사자 마냥 거만해졌다. 온 세상의 권력이 내 손안에 있는 것 같았다.
주먹을 부르는 생김새의 인형이다. 사실 몇 번 때렸다.
신나게 분비되던 도파민은 그 뒤에 방문한 북오프(중고 서점)를 들른 순간 사그라들고 말았다. 그 인형, 어느 고수가 얼마를 쓰고 뽑았는지 2000엔에 팔고 있더라…….
괜찮다. 내가 얻은 건 2000엔짜리 인형이 아니라 5000엔짜리 도파민이다. 나는 불가능해 보이는 싸움에서 승리한 영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