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남의 시선을 받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었던지라 남들 앞에 서는 직업을 동경했기 때문이다, 라는 건 ‘대외적 장래희망’이고, 사실 나는 ‘마법 소녀’가 되고 싶었다.
샤랄라~ 뿅!
변신 도구는 무엇이든 괜찮다. 들고 다니기 창피한 커다란 마술봉이라도 좋고, 조그마한 립스틱, 콤팩트, 목걸이 같은 것도 좋을 것이다. 이 도시에 사악한 외계 세력이 마수를 뻗으면 나는 보석이 영롱하게 빛나는 변신 도구를 사용해 빛에 휩싸여 변신한다.
옷은 반드시 프릴과 레이스가 가득 달린 짧은 치마여야 한다. 신발은 30분만 걸어도 갖다 버리고 싶을 정도로 높은 하이힐 이어야 한다.
변신은 모습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초월한 능력을 부여해 준다. 나는 누구보다 예쁜 모습으로 나비처럼 날아가 벌처럼 악을 무찌른다.
아, 내 정체에 대해선 반드시 남들이 몰라야 한다. 나만 아는 비밀이라니 이보다 짜릿한 게 또 있을까.
나는 이 도시의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러한 미지의 힘에 간택당하는 그날을 비밀리에 기다려왔다. (웃지 마시라, 당신도 어릴 때 분명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마법 소녀지만, 당신의 경우에는 3단 변신 로봇을 조종하는 조종사일지도 모르지.)
어쨌든, 그러는 사이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가 학원 때문에 좋아하는 마법 소녀 애니메이션을 제 때 챙겨 보지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러다 도서관에서 가끔 보이는 남자아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외모에 관심이 생겨 만화보다는 연예인이나 잡지를 더 챙겨 보게 되면서, 내 의식은 2D의 애니메이션에서 4D의 현실로 뛰쳐나왔다. 망상과 공상에 빠져 살던 소녀의 머릿속에 조금씩 현실이라는 것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스커트를 휘날리며 지붕과 지붕 사이를 뛰어다니며 악을 쫓는 꿈을 가진 소녀는 적성과 성적 사이를 뛰어다니며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 직업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렇게 살아가는 중에 마법 소녀는 잠재의식이라는 빙산의 바닥에 눌어붙어 차가운 바닷속에 가라앉고 말았다.
살아 보니 미지의 외계 세력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나이에 맞춰 찾아오는 칼같이 찾아오는 과업들이었다. 진학, 연애, 취업, 재산 증식, 결혼, 임신, 육아, 재취업. 노후 대책…….
이 과업들과 치열하게 싸우는 사이에 나를 부르는 인칭 대명사는 학생에서 아가씨로, 그다음은 어머니로 바뀌게 되었다. 이제는 변신의 힘을 빌려도 무릎과 손목이 아파서 싸울 수 없고, 이 도시보다는 내 새끼를 먼저 지켜야 하기에 마법 소녀로 스카우트당해도 단칼에 거절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뱃살 때문에 옷이 터질 것 같아서 불가능 한 점도 있다.)
불혹을 앞두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알록달록한 큐빅이 박힌 마법 소녀 장난감을 보면 가슴이 뛰고, 프릴과 레이스가 잔뜩 달린 스커트 자락을 휘날리는 소녀들의 전투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내 딸을 보면 요즘 아이들이 듣고 보는 것들은 우리 때 보다 현실이 더 스며들어 있어 아이들의 머리에 빨리 현실이 들어차는 듯하다. 물론, 내가 물려준 시니컬한 성격 탓도 있겠지만.
딸은 어린이 집을 졸업하기도 전에 산타가 없음을 알았다. 마법 소녀물에 열광하는 시기도 유치원 졸업과 동시에 끝이 나 버렸다. 내가 마법 소녀 애니메이션을 보고, 마법 소녀 장난감을 보고 있자면, 딸은 “엄마는 이런 게 아직도 좋아?”라고 질문을 한다.
나는 내심 ‘이런 것’이 되어 버린 내 취향에 상처를 받았지만 어른스럽게 아무렇지 않은 채하였다. 그리고 아이의 질문에 “어른이라면 누구나 다 마법 소녀 하나쯤은 가슴에 품고 사는 거야.”라고 대답했다.
딸은 무척이나 심드렁하게 그렇구나,라고 대답하고 휴대폰으로 제가 좋아하는 영상으로 눈을 돌렸다. 아이는 마법 소녀에 관심이 없지만, 그 이후로 마법 소녀 관련한 새 영상이나 길거리에서 마법 소녀 관련 상품을 발견하면 꼬박꼬박 나에게 알려준다. 엄마가 가슴속에 품고 있는 마법 소녀를 위해서.
실제의 자신과 다른, 더 멋진 자신이 자신의 안에 공존한다는 것. 그 멋진 자신을 변신 도구로 현실로 끌어 오는 것이 마법 소녀물의 근간이다. 돌이켜 보니 나는 이상의 자신과 현실의 자신의 괴리를 알게 된 나이부터 마법 소녀에 자신을 이입해서 응원해 왔던 것 같다.
마법 소녀에 대한 갈망은 실제의 자신과 이상의 자신이 합치될 수 있는 변신 도구와 같은 그 무언가에 대한 갈망이 아니었을까. 마법 소녀를 졸업 한 뒤에도 나는 변신 도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들을 계속 찾아냈다. 그것은 화장이었을 때도 있고, 소설이었던 때도 있었다. 몇 년째 매주 사는 5천 원 치의 로또나, 지금 쓰고 있는 글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아직도 이상의 자신을 그리고 있고, 그 이상을 현실로 끌어 올 수 있는 힘을 원하고 있다.
내 딸의 마음속엔 마법 소녀는 확실히 없는 듯 하지만, 그 세대에 맞는 무언가를 품고 있음이 분명하다. 나로서는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아이가 살아가는 동안 시시각각 그 모습을 바꾸어 그녀의 인생과 함께 할 것이다. 나의 마법 소녀처럼.